13년 만에 다시 한번 국립극단 무대에 오른 연극 <헤다 가블러>. 2012년 초연 당시 연출과 주연을 맡았던 박정희 연출과 이혜영 배우가 재회해 더욱 화제가 되었습니다.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헤다 가블러>의 이모저모를 정리했습니다.
<헤다 가블러>는 어떤 작품?

원작은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헤다 가블레르>로, 1891년 1월 독일 뮌헨의 레지덴츠 테아터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인형의 집>, <유령> 등으로 오늘날에도 널리 사랑받는 입센은 최초의 현대극을 집필한 주인공이자, 근대 사상과 여성 해방 등의 사회적 주제를 날카롭게 다룬 극작가로 알려져 있죠. <헤다 가블레르> 또한 19세기 말 계급주의가 무너져 가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수동적 여성상을 거부하는 주인공 ‘헤다’를 통해 가부장적 역할 규범을 해체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헤다는 유력한 귀족 집안 출신이지만, 아버지가 사망한 후 가세는 점차 기울어 갑니다. 그 속에서 여러 남성이 헤다에게 구애를 해오지만, 그는 성실한 학자 테스만과 결혼하기를 선택하는데요. 6개월 간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 지독한 권태에 시달리죠. 그러던 중 옛 연인 뢰브보르그가 학문적 성공을 거두며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나고, 집안의 대소사를 봐주는 브라크 검사도 그에게 접근해옵니다. 실존과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헤다는 이런 복잡한 관계 속에서 질투와 혼란을 경험하며 파멸로 질주합니다.
2025년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에서 주목할 점

이번에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이는 <헤다 가블러>는 보다 가까운 과거로 시대적 배경을 옮겨왔습니다. 이번에는 1970년대의 헤다를 만나볼 수 있죠. 이에 관해 박정희 연출은 “어떤 시대가 자유와 신세계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가장 알맞은지를 고민”했고, 그 결과 히피즘이 널리 퍼지던 197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설정하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극의 메시지 또한 확장해 가부장제가 부여한 역할을 거부하는 여성의 모습을 조명하는 것을 넘어 계급, 권력 등 다양한 사회 구조의 지배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서 실존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다루고자 한 것이죠.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LG아트센터에서도 현재 동명의 극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인데요. 해당 극에서는 이영애 배우가 주인공 ‘헤다’로 분했습니다. 서로 다른 제작진이 그려낸 <헤다 가블러>를 함께 보는 것도 희곡을 더 깊이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대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포도 넝쿨’의 의미
극 중 헤다는 여러 차례 ‘포도 넝쿨’을 언급합니다. 특히 뢰브보르그에 관해 이야기할 때 말이죠. 이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연상시키는데요. 그는 축제와 음악의 신으로서 창조를 상징하는 동시에 파괴의 신이기도 합니다. 언뜻 모순되어 보이지만, 사실 새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원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하기 때문이죠. 헤다는 자아를 찾기 위해 뢰브보르그를, 나아가 자신마저도 파괴하는데요. 이러한 그의 서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모티프가 바로 포도 넝쿨, 즉 디오니소스인 것입니다.
상연 일정과 장소는?
이혜영 배우 주연의 <헤다 가블러>는 5월 16일부터 6월 1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현재 전석 매진이나, 취소표 등이 발생할 경우 국립극단과 놀티켓 홈페이지에서 예매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