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외형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표현하며 존재에 대한 생경한 사유를 이끌어내는 호주 조각가 론 뮤익(Ron Mueck). 그의 예술 세계를 서울에 펼쳐낸 전시 <론 뮤익>을 함께 기획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큐레이터 키아라 아그라디(Chiara Agradi)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홍이지를 만났다. 두 큐레이터가 공유하는 현대미술의 힘, 예술의 가치에 대하여.

까르띠에 론 뮤익 국립현대미술관 Cartier Ron Mueck MMCA
생생한 표현을 통해 인물의 정신까지 떠올리게 하는 론 뮤익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보여주는 대형 조각 ‘침대에서’(2005).
공간마다 두개골 형상을 다르게 구성하는 론 뮤익의 작품 ‘매스’(2016~2017) 앞에 함께 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홍이지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큐레이터 키아라 아그라디.

현대 예술의 다양한 분야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지원해온 까르띠에 현대 미술재단. 1984년 설립 이후 40여 년간 동시대 독창적인 작가들을 조명하며 현대미술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세계 곳곳의 기관과 꾸준히 협력하며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을 제시해왔다. 그리고 2025년 봄, 재단은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호주 조각가 론 뮤익을 서울에 소개한다. 론 뮤익의 한국 첫 개인전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 회고전으로, 30여 년 동안 치열하게 작업해온 작가의 시기별 주요 작품 10점과 그의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스튜디오 사진 연작, 두 편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한자리에 모았다. 인간의 외형을 놀랍도록 정교하게 표현하며 존재에 대한 성찰, 삶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내는 론 뮤익의 예술 세계를 펼쳐낸 이번 전시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큐레이터 키아라 아그라디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홍이지의 공동 기획, 그리고 론 뮤익 스튜디오에 소속된 큐레이터 찰리 클라크(CharlieClarke)의 협력으로 탄생했다. 전시 오프닝 날,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폭넓은 시선과 예술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두 여성 큐레이터와 나눈 대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론 뮤익>전이 4월 11일부터 열린다. 이번 협업은 어떻게 성사되었나?

키아라 아그라디(이하 키아라) 이번 전시는 두 기관의 논의에서 비롯되었다. 2023년, 홍이지 큐레이터와 국립현대미술관 팀이 프랑스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열린 론 뮤익 전시를 관람한 적이 있다. 해당 전시는 호주 이외 지역에서 최초로 ‘매스’를 소개하는 전시이기도 했다. 이후 국립현대 미술관으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았다. 가깝게 느껴지는 기관인 만큼 기쁜 마음으로 론 뮤익의 작품을 서울에서 함께 선보이게 되었다.
홍이지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조각 전시에 관심이 많았고, 유럽이나 미주 이외 지역 출신 작가를 다루고 싶은 생각도 있어 조사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때마침 론 뮤익의 작품을 만났고, 그가 한국에서 사랑받는 작가이기도 하니 재단 측과 이번 전시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작가들을 아낌없이 지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2017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전 <하이라이트>를 큐레이팅한 경험이 있어 재단과 협업하는 과정에도 어느 정도 익숙했다. 그 덕분에 전시 준비가 한결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키아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이 함께하는 이번 협업을 통해 론 뮤익의 세계를 보다 다채로운 시선으로 조명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론 뮤익을 조명해온 여러 전시와 다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론 뮤익>전이 지닌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키아라 이번 전시는 론 뮤익의 작품 세계를 포괄적으로 소개하는 한국 최초의 개인전이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인 ‘침대에서’와 ‘나뭇가지를 든 여인’ 등 작가를 대표하는 조각 작품 10점을 만날 수 있다. 1990년대에 탄생한 초기작부터 최근작에 이르는 그의 예술적 여정을 따라가볼 기회가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1백 개의 대형 두개골 형상으로 이뤄진 ‘매스’는 전시 공간마다 형태를 새롭게 구성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지난해 협력 큐레이터 찰리와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미술관의 건축적 특성이 론 뮤익의 조각 작품에 어떤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 홍이지 학예
연구사 등과 함께 고민했다. 특히 제5전시실의 높은 천고에 맞춰 작가가 직접 구상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홍이지 제5전시실에 층고가 약 15m에 이르는 좁은 공간이 있는데, 지하이고 창문이 천장 가까이에 나 있어 땅 밑에 자리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전시 공간으로서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 이곳에 ‘매스’의 두개골 형상을 층층이 쌓아 올리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렇게까지 높이 쌓아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오랜 고민과 많은 시뮬레이션을 거쳐 지금의 형태를 안정적으로 구현할 방법을 찾아갔다.

전시 공간뿐 아니라 서울이라는 지역의 특성이 전시에 미치는 영향도 있나?

키아라 그렇다. 전시 공간이 위치한 지역에 따라 관람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시를 준비할 때, 그 도시의 문화적 배경과 그곳에 사는 관객의 기대를 섬세하게 살피는 걸 중시한다. 그게 전시가 제대로 ‘소화’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서울의 관람객은 이번 전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나?

키아라 이번이 두 번째 서울 방문이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웃음) 내가 느낀 서울은 ‘디테일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지닌 곳이다.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도시라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도시의 특성이 고전적 기법에 기반하면서도 최신 기술을 적극 활용하며 조각 장르를 거듭 새롭게 해온 론 뮤익의 방식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의견이다.(웃음)
홍이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웃음)
키아라 그래서 이번 전시에 대한 서울 사람들의 반응이 더욱 궁금해진다. 특히 모든 것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디지털 중심 사회에 익숙한 젊은 관람객. 그들이라면 론 뮤익 작업의 현대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정통 조각에 녹아든 작가의 헌신에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론 뮤익은 대부분의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혼자 보내면서 작업에 몰두하고, 수개월 또는 수년의 기간을 거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그의 작품은 감상하는 데도 시간과 집중이 요구되는데, 요즘 시대에 어떤 사물에 시간을 들여 감상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론 뮤익의 조각과 마주하는 경험이 이러한 점을 성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홍이지 전시실에 들어선 이들이 작품에 곧바로 빠져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각 작품을 설명하는 월 라벨(wall label)을 붙이지 않는 등 여러모로 ‘비워낸’ 전시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론 뮤익>전을 관람하러 온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작품 앞에 꽤 오래 머물더라.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감상에 몰입하는 거다. 이전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와 사뭇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전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론 뮤익, ‘쇼핑하는 여인’, 혼합 재료, 113×46×30cm, 타데우스 로팍 컬렉션, 런던 · 파리 · 잘츠부르크 · 밀라 · 서울
론 뮤익, ‘유령’, 혼합 재료, 202×65×99cm, 1998 /2014. 야게오 재단 컬렉션
‘젊은 연인’(2013)을 자세히 살펴보면 남자가 등 뒤로 여자의 팔을 잡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이 실재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점도 관람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것 같다. 론 뮤익은 인간의 자세와 몸짓, 표정 등을 실감 나게 묘사하면서도 그 크기를 비현실적으로 확장하거나 축소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이 지닌 효과는 무엇이라고 보나?

홍이지 작품의 정면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호기심을 자극해 옆면이나 뒷면도 보게 한다는 점이 조각 작품의 매력이지 않나. 특히 론 뮤익의 작업은 규모 차이가 크기 때문에, 관람객 스스로 계속 움직이게 만든다. ‘배를 탄 남자’를 감상할 때 남자의 시선이 닿는 곳을 따라 몸을 돌리거나, 과장된 크기로 표현한 작가의 자화상 ‘마스크 II’를 구석구석 살피며 문득 생경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말이다.

론 뮤익이 표현한 인간의 형상을 다각적으로 감상하는 경험이 저마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홍이지 론 뮤익은 인간의 외면이나 상황을 묘사하지만, 이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관람객은 그의 작품을 보면서 본인의 삶을 투영할 수 있다. 작품을 닮은 지인을 떠올리거나, 과거 어느 시점의 나를 생각하며 ‘메타 인지’를 경험할 수도 있을 거다. 이런 식으로 작품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상호작용하는 경험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우리 주변에는 전광판의 빛과 소리, 스마트 기기, 뉴스를 비롯한 외부적 요소가 너무 많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심상 공간을 잃어버리기 쉽지 않나. 이런 환경에서 론 뮤익의 작품이 저마다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비록 표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삶의 깊이다”라는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삶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이번 전시를 만들어가며 새롭게 느낀 점이 있다면?

키아라 이번 전시는 한 명의 작가, 두 개의 기관, 세 명의 큐레이터가 함께한 ‘집단적 작업’이다. 예술의 곁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협업한 덕분에 전시의 깊이가 더해지고, 작품 해석의 폭이 넓어졌다고 느낀다.
홍이지 내 생각도 비슷하다. 이번 전시를 준비할 때 작가가 직접 오지 못했지만, 우리는 “론 뮤익이라면 이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까?”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그를 계속 호명했다. 그렇게 여러 명의 서로 다른 관점을 한데 모은 결과, 전시에 여러 레이어가 생겼다. 전시를 매개로 하나 된 이야기는 관람객을 만나며 널리 전달될 테고, 그러다 보면 이 이야기가 나 혹은 너가 아닌 ‘우리’의 것이 될 거라고 본다.
키아라 전시의 의미를 완성하는 건 결국 관람객이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깊이 이해하고, 그게 관람객에게 닿을 수 있도록 전시나 프로젝트 등을 통해 다리를 놓아주는 것. 그게 큐레이터 역할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큐레이터로서 작가와 관람객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려면 작가와의 긴밀한 소통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키아라 맞다. 2021년부터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재단과 작가의 관계다. 단순한 협력을 넘어 서로를 진정으로 성장시키는 관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지난 40여 년간 다양한 예술가의 창의성을 온전히 존중하고, 그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자유롭게 전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함께해왔다. 신뢰를 탄탄히 쌓으면서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사실이 재단의 철학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미술 기관은 작가 덕분에 존재하고, 그렇기에 그들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나뭇가지를 든 여인’(2009)을 뒤에서 바라본 모습.
론 뮤익, ‘치킨 / 맨’, 혼합 재료, 86×140×80cm,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갤러리 테 푸나 오 와이훼투 컬렉션,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

세계적인 미술 재단과 국립 미술관에 각각 재직하는 큐레이터로서 최근에 자주 떠올리는 질문은 무엇인가?

키아라 ‘나는 무엇을 어떻게 인식하고,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 본인의 관점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성찰하는 게 큐레이터가 갖춰야 할 자질이라고 본다. 유연한 태도로 다양한 배경을 지닌 작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각예술은 물론 공연, 철학, 과학까지 아우르며 동시대 예술에 다방면으로 접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홍이지 전시 자체뿐 아니라, 전시 공간의 진입 장벽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흔히 미술관은 외부와 단절된, 무균의 상태로 보존된 성역 같은 곳으로 여겨지지 않나. 그래서인지 미술관 특유의 매너가 있다고 느끼거나, 엘리트를 비롯한 소수의 사람만 그 공간을 향유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국내 정치 이슈로 국립현대미술관 주변 지역이 시끌시끌해지는 상황을 겪으면서 미술관에 오는 사회 구성원의 입장을 더 헤아려보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국립’ 기관이니, 그 누가 찾아오더라도 자신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지점이 전시마다 반드시 필요하다. 큐레이터로서 뾰족한 관점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목소리를 다뤄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바깥의 대상과 이야기를 얼마큼 담아낼 것인가? 미술관을 찾아온 이들을 바깥으로부터 얼마나 보호하고 위로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요즘 내 화두다.
키아라 공감한다. 전시 공간이 외부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지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예술을 향유하는데 익숙한 건 아니기 때문에,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기관들이 예술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여줘야 한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지난해 설립 40주년을 맞이하며 파리 중심부에 새로운 공간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이 또한 예술에 보다 쉽게 접근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 같다.

키아라 그렇다. 올해 말, 저명한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도시와의 조화를 고려해 설계한 건물로 이전할 예정이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팔레 루아얄 광장에 위치하고, 루브르박물관도 근처에 있으니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컬렉션, 전시와 프로그램 등을 보다 다양한 국적의 관람객에게 선보이며 재단의 행보를 더 넓게 확장하고 싶다. 까르띠에 현대 미술재단은 국제 교류를 항상 중시해온 만큼, 이번 이전이 의미 있는 기점이 될 것 같다. 이를 계기로 세계와의 연결이 강화되며 새로운 도전의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믿는 현대미술의 미덕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홍이지 거대한 질문이다.(웃음) 잠시 고민해봐야겠다.
키아라 현대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미술가는 자신의 메시지를 고유한 표현을 통해 전달하는 사람이지 않나. 여기에 ‘현대’라는 단어를 붙였다는 건 그들의 메시지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명하거나, 현실에 대해 사유할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는 걸 뜻한다고 본다. 작가와 기관, 전시, 관람객 사이의 적극적인 소통은 현대사회의 중대하고 시급한 사안에 대한 의미 있는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예술을 통해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는 ‘공공의 장’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거라고 믿는다. 홍이지 학예연구사의 생각은 어떤가?
홍이지 내가 현대미술가와 일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그들이 틀에 갇히지 않은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해파리의 궤적을 좇아 바다를 횡단하거나, 오래된 아카이브 북의 주인을 수년째 추적하는 작가도 있지 않나. 이상한 생각을 마음껏 해도 괜찮고, 그게 얼마나 멋진 결과물로 탄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람들이 결국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들처럼 엉뚱하고도 고집 센 존재들이 우리 삶에 숨 쉴 틈을 내주는 것 같다. 그렇지 않나?
키아라 맞다.(웃음) 그게 일종의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예술의 가치를 발견하는 건 결코 보편적 경험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같은 큐레이터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누리면서 저마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가꿔갈 수 있기를 바란다.

고티에 드블롱드, <스틸 라이프: 작업하는 론 뮤익>, HD 영화, 48분, 2013. ⓒ고티에 드블롱드
론 뮤익, ‘마스크 II’, 혼합 재료, 77×118×85cm, 2002. 개인 소장.

<론 뮤익> 개인전

공동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기간 4월 11일~7월 13일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5, 6전시실(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