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공공 사진 미술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사진 매체에 특화된 국내 최초 공공미술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지난 28일 문을 열었습니다. 그동안 사립으로 운영되던 국내 사진 전문 미술관 및 박물관들과 달리, 모든 시민에게 열린 공간으로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설립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약 10여 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탄생한 공간인 만큼, 건축에 담긴 섬세한 의도와 공공 사진 미술관으로서의 역할까지 차근히 들여다봤습니다.

빛으로 그리는 그림, 사진의 원리를 입은 건축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제공, ©윤준환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제공, ©윤준환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외관 디자인으로 개관 전부터 이목을 끌었던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2019년 공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오스트리아 건축가 믈라덴 야드리치(Mladen Jadric)와 한국의 건축가 윤근주(일구구공도시건축 대표)의 협업으로 탄생했습니다. 두 건축가는 사진의 최소 단위인 ‘픽셀’을 모티프 삼아, 건물 외벽을 불규칙한 직사각형 모듈이 층층이 쌓인 형태로 디자인했는데요. 이 외벽은 반사와 투과가 가능한 소재로 마감되어, 시간과 빛의 변화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특성을 지닙니다. 마치 사진이 빛을 포착하고 흘러가는 시간을 기록하듯 건물 자체가 사진의 작동 방식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셈이죠.

입구의 설계 방식 역시 인상적입니다. 카메라 셔터가 열리고 닫히는 원리에 착안해, 바닥에 붙은 매스를 회전시켜 생긴 곡면을 통해 출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로 건물의 벽과 바닥이 수직으로 만나지 않고, 곡선을 타고 올라가는 독특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죠. 이렇듯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특성을 건축적 언어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공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화이트 큐브와 블랙 박스의 공존

벽면에 경사와 굴곡을 더한 2층 전시장 내부.
개관기념전 <광채>가 열리고 있는 3층 전시장 전경.

공간 내부는 화이트 큐브와 블랙 박스를 결합해 구성했습니다. 2층에 마련된 전시장 내에는 경사와 굴곡을 지닌 벽과 볼록하게 솟은 언덕을 배치해 정형화된 화이트 큐브 공간에서 탈피하고자 했고, 3층 전시장은 정방형의 단순한 구조지만 하얀 벽과 검정 마감재가 강렬한 흑백 대비를 이뤄 고전적인 흑백 사진부터 동시대 미디어 작업까지 폭넓은 작품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죠. 2층 공간에서는 동시대 작가의 실험적인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를, 3층 공간에서는 평면 작업이 주를 이루는 사진 작업을 중심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층마다 서로 다른 전시 환경을 마련해 사진 매체의 다양한 성격을 담아내고자 한 것이죠.

미술관 건립 과정을 조명한 개관기념전 <스토리지 스토리>

주용성, ‘녹천 이유 대감 터주가리, 창동노트’, 2025
원성원, ‘완성되지 않은 건축, 지어지는 중인 자연’, 2025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공간의 첫 장을 여는 전시로 미술관의 건립 과정 자체를 주제 삼은 개관기념전 <스토리지 스토리>를 선보입니다. 서동신, 원성원, 정지현, 주용성, 정멜멜, 오주영 여섯 명의 동시대 작가들이 참여해, 건립 과정에서 생겨난 건축 자재나 창동 지역의 과거와 현재, 방대한 소장자료가 갖는 의미 등을 저마다의 시각으로 조명합니다. ‘재료’, ‘기록’, ‘정보’라는 사진 매체의 속성을 작업의 출발점 삼아, 단순히 미술관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에 담긴 이야기와 맥락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흥미로운 시도입니다.

한국 사진사를 보존하는 대규모 아카이브로서의 공간

이형록, ‘구성’, 1956. Lee Hyungrok, Composition.

박영숙, ‘NEW MASK’, 1963/2021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빠르게 소실되고 있는 한국 사진사의 흔적을 보존하는 아카이브로서의 역할에도 주목합니다. 이를 위해 지난 10년간 1920년부터 1980년까지 활동한 국내 사진작가 2천여 명의 기록을 토대로 2만여 점에 달하는 작품 이미지를 차곡차곡 수집해왔고, 개관과 동시에 소장품을 최초로 공개하는 전시 <광채 光彩: 시작의 순간들>을 열며 한국 예술 사진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낸 작가 5인의 작품을 조명합니다.

전시 프로그램 외에도 향후 출판과 교육, 토크 세션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 성과를 무료로 공개할 전망입니다. 미술관 내에는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교육실과 암실, 국내 사진문화의 변천사를 기록한 각종 사진집과 연구 서적을 소개하는 포토 라이브러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진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죠. 다가오는 연휴, 사진 예술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새로운 공공 공간의 시작을 직접 경험해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