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진가 폴 미소는 1971년 첫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현장을 찾아가 카메라를 들었다. 함께 어우러져 자유를 만끽하고, 더 나은 내일을 그리는 경험을 50여 년간 선사해온 음악 축제의 면면이 전하는 ‘지속 가능한 삶’에 관한 메시지.


1970년 농부 마이클 이비스(Michael Eavis)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어 이듬해 ‘글래스톤베리페어’라는 이름을 얻은 음악 축제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 작업을 한 계기는 무엇이고, 그때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사진 속 장면들은 매해 6월 영국 서머싯주에서 열리는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첫 번째 현장이다. 이 축제와 관련한 영화를 준비 중이던 감독 닉 로그(Nic Roeg)가 내게 사진 촬영을 의뢰한 게 작업의 시작점이었다. 컬러 필름을 챙긴 뒤 빗속을 달려 페스티벌이 열리는 워시 팜(Worthy Farm)으로 향했고, 보안 검색이나 입장료 없이 농장 문을 통과했다. 약 1만2천 명이 참석한 현장에 열흘간 머물렀는데, 그사이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축복받은 듯한 기분이 드는 동시에 글래스톤베리가 내게 중요한 곳이 될 거라고 직감했다. 그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후, 당시 촬영한 사진들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는 작업을 거쳐 책으로 엮었다. 축제가 열린 지역이 아서왕 전설에 등장하는 ‘애벌론’으로 여겨진다는 점에 착안해 <In the Vale of Avalon>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페스티벌을 찾아온 사람들이 여유를 만끽하거나, 장대비를 그대로 맞거나, 나체로 돌아다니는 모습 등이 프레임에 담겨 있다. 그들이 뿜어내는 날것같은 자유로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느끼나?
당시 글래스톤베리의 히피 같은 모습은 1960년대에 다방면으로 확산된 자유주의 덕분이었다. 대가를 치르며 얻어낸 것이기에, 자유가 곧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속에 그럼에도 이를 기념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현장이 자아내는 긍정적인 기운은 주변에 널리 전파될 정도로 강렬했다. 그 기운을 만끽하기 위해 1971년 이후 거의 매번 글래스톤베리를 찾아가고 있다. 페스티벌의 발전 과정과 이곳을 찾아오는 관객의 세대 변화를 함께 겪어가면서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 축제가 열리는 마을을 ‘늙은 히피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라고 묘사하기도 하는데, 이곳은 어느덧 80대가 된 지금의 내게도 정신적 고향이자 연례 휴가지가 되어준다. 올해도 글래스톤베리를 찾아가 탭댄스를 추고, 낯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축제를 만끽하려고 한다. 무대 안팎의 ‘영웅’들을 사진에 담기 위해 카메라도 챙길 생각이다.
50여 년간 찾아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꼽는다면?
2015년의 어느 일요일 아침, 달라이 라마가 현장의 가장 높은 자리에 마련된 사리탑(stupa)에서 강연한 날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음악 페스티벌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한 적이 없던 터라 그 순간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운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영혼의 시를 온몸으로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외에도 ‘전설적인 장면’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이 수없이 많다. 2022년에 폴 매카트니가 무려 3시간 동안 공연을 펼칠 때 데이브 그롤과 브루스 스프링스턴을 무대 위로 소환한 일도 그중 하나다. 같은 해의 마지막 날, 켄드릭 라마가 펼친 공연은 ‘내일의 흑인음악’으로 느껴질 만큼 의미 있고 인상 깊었다.





글래스톤베리는 음악뿐만 아니라 춤, 연극, 서커스 등 다양한 현대예술을 아우르고 비주류 문화도 존중해왔다. 나아가 환경과 평화에 대한 목소리도 꾸준히 높이고 있다. 이 사실이 관객의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나?
글래스톤베리를 만든 이비스 가문은 페스티벌 수익의 대부분을 지구의 존속과 생명체의 번영을 위해 헌신해온 주요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이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글래스톤베리는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삶을 살자”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꾸준히 전해왔다. 이를 핵심 가치로 삼은 현장은 ‘깨어 있는 담론의 장’이 되었고, 그 규모는 점점 확장되었다. 50여 년 전, 약 1만 명이 참석했던 글래스톤베리는 이제 치열한 예매 경쟁을 뚫은 20만여 명이 모여드는 ‘임시 도시’로 자리매김했고, 그 자체로 큰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세계 곳곳의 뮤지션들이 찾아와 오래도록 그리워할 기억을 만들거나, 페스티벌을 즐긴 관객들이 저마다 자기 삶으로 돌아가 그 감동을 가족과 이웃에게도 전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대중적으로 각광받는 인물들이 ‘피라미드 스테이지’를 비롯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고 있다. 대중화로 인해 우려되는 지점은 없나?
물론 지나친 대중화와 상업화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지불할 만한 대가라고 본다. 한때 밤이 되면 일부 관객이 공포를 느낄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지곤 했지만, 페스티벌 규모가 커지면서 현장 관리 대책도 한층 강화되었다. 이러한 조치가 없었다면 이 축제는 진작에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른다. 특별한 경험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글래스톤베리의 가장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공동 설립자인 앤드루 커(Andrew Kerr)가 “이 축제의 목적은 환경 보존,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중, 영적인 각성이다”라고 말했다. 그 목적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앤드루가 이야기한 글래스톤베리의 비전은 당시 모두가 공유한 것이었다. 과거 중세 시대의 축제처럼 함께 즐기면서 어우러지고, 세계를 건강한 미래로 이끌어가겠다는 비전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물론 온전히 실현되었다고 확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껏 경험해온 글래스톤베리에서는 그 정신이 매번 강하게 발현되었다. 이처럼 ‘깨어 있는 지구인’의 대다수가 자신의 의식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세상의 위험과 폭력에 맞서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좋겠다. 이러한 실천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간절히 바란다.
당신이 믿는 음악 페스티벌의 미덕과 매력은 무엇인가?
음악은 영혼 깊숙이 스며드는 힘을 지닌 예술이자 사랑과 희망의 언어이고, 그 언어는 페스티벌의 드넓은 현장에 감미롭게 펼쳐진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잔디밭에 누워 훌륭한 음악을 듣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게 페스티벌의 미덕이자 마법 같은 매력이 아닐까 싶다. 전 세계의 음악 페스티벌이 그 매력을 계속 지켜갈 수 있었으면 한다. 포용력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현장을 오래도록 경험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