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빛나는 예술은 한 사람의 마음속 어둠을, 삶의 그늘을 밝혀주는 힘이 있다.
캔버스에 스며든 광채, 음악의 반짝이는 선율, 영화와 책에 담긴 눈부신 서사까지.
마리끌레르 피처 에디터 4인이 각자의 일상에서 그러모은 빛의 아름다운 면면.

루카스 아루다 LUCAS ARRUDA

3년 전, 바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에서 루카스 아루다의 그림을 처음 마주했다. 수평선 너머 번지는 빛, 안개처럼 퍼지는 색채, 미묘한 명암이 만드는 깊은 침묵과 고요가 가로세로 40cm 안팎의 소형 정사각 캔버스 안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고도로 정제한 시 같기도, 입 밖으로 소리내지 않는 기도문 같기도 하던 그 풍경 앞에 오래 머물렀다. 물결, 구름, 안개… 나를 둘러싼 세계가 실은 이런 빛과 시간의 아름다운 레이어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자주 잊고 산다. 루카스 아루다의 그림으로 새롭게 다시 배운다.

루카 구아다니노 <아이 엠 러브>

<아이 엠 러브>

결국 다시 루카 구아다니노다. 게다가 <아이 엠 러브>라니. 하지만 빛을 하나의 조형 언어로 충실히, 섬세히, 무엇보다 아름답게 사용하는 이를 말할 때 루카 구아다니노를 빼고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거대한 저택에 갇혀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온 ‘엠마’가 마침내 자기 존재를 찾아 나서는 탈주하는 순간 쏟아지던 황금빛 빛살, 햇살은 풀잎을 통해 반사되고, 살결 위로 반짝이는 빛 무늬, 마침내 생명을 얻은 살, 땀, 바람… 사랑을 경유해 자기 해방을 이룬 이가 내가 나로 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뻗어 나오는 광채. 어쩌면 나는 이탈리아 산레모의 빛보다 엠마가 용기로 만들어낸 그의 찬란한 빛을 더 사랑한 것 같다. 엔딩 크레디트에 다다르며 루카 구아다니노는 질문한다. 그의 삶은 언제 빛났고, 언제 그 빛을 외면했고, 다시 정면으로 마주했는지를.

김선오 산문집 <미지를 위한 루바토>

아침달

“우리가 여름이라고 말할 때 여름은 잠깐 우리에게 온다. 여름을 말하는 사람에게서 여름을 듣는 이에게로 여름이 부드럽게 이동한다.”

여름을 사랑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여름의 빛을 사랑한다. 여름의 선명함, 강한 빛이 그려내는 또렷한 색채, 해 질 녘의 어스름까지. 겨울에 태어난 겨울 인간이지만, 여름의 빛이 만들어내는 하루 치의 경이로 1년을 살고 있다. 김선오 산문집 <미지를 위한 루바토> 속 ‘여름의 시퀀스’는 여름의 낭만, 여름의 기쁨과 슬픔으로 빼곡하다. 그 아름다운 빛을 옮겨둔 그의 문장이 한낮 여름의 명징한 빛처럼 번뜩인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

CLEAR AUDIO

빛을 음표로 옮겨놓은 음악들이 있다. 그 빛의 음표들은 풍경을 그려낸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을 들을 때마다 나는 사위는 적막하고 어두운 해변에 서서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 정적 속에서 번지는 서정적이고 투명한 피아노의 아르페지오 위에 목관악기와 현악기의 부드러운 선율이 유영하듯 흐르면 이내 새벽 2시, 수면 아래를 천천히 유영하는 별빛을 눈앞에 두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생각한다. 위대함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한 예술가가 이룩할 수 있는 위대함에 대해 생각한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작곡하며 음악가로서 자신의 고통과 회복의 역사를 담고자 했다. 이 곡은 무너졌던 인간이 음악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이며 그 여정이 찬란히 눈부시다. 그리고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