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수집한다는 것은 곧 삶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중국과 대만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두 컬렉터의 공간에서, 작품이 삶에 가져다주는 분명한 변화를 목격했다.

CHARLES TONG
상하이를 무대로 활동하는 찰스 통은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이끄는 기업가이자 열정적인 컬렉터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예술적 감각은 중국의 동시대 작가와 세계적인 거장에 이르는 풍성한 컬렉션으로 확장되었고, 어느새 그에게 수집이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여정으로 자리 잡았다.

Oil on canvas, 74.2×49.8cm, 1930
작년 키아프 서울 기간에 한국을 방문했다고 들었다. 특히 마음에 남은 전시 경험이 있나?
키아프 서울의 초청으로 서울을 찾아 다양한 전시와 문화예술 행사를 즐겼다. 아트위크 기간에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물드는 모습을 보며 한국 미술계의 활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고, 매년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서보 선생이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기지(GIZI) 재단과 리움미술관, 국제갤러리 등 서울의 여러 전시 공간을 둘러봤는데, 그중에서도 기지 재단에서 박서보 선생의 초기 ‘묘법(Ecriture)’ 연작을 마주한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글자 연습을 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영감을 얻은 작업으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져 깊은 울림을 느꼈다.
컬렉터의 시선에서 본 한국 현대미술의 흥미로운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은 1990년대부터 대만, 일본, 홍콩과 나란히 아시아의 주요 시장을 형성해왔지만, 미술 컬렉션과 작품 경향만큼은 네 나라 중에서도 가장 전위적이고 다채롭다. 특히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이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태도에 깊이 공감한다. 선조의 문화를 정성껏 잇고, 여러 기업이 나서서 갤러리와 작가들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FRP and mixed media, 333.3×211.200cm, 2025
첫 컬렉팅 경험이 궁금하다. 어떤 계기로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처음 소장한 작품은 무엇이었나?
영화 제작자이자 미술품 수집가셨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미술품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특히 여성 화가로서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탐구한 판위량(潘玉良)의 작품을 보고 자란 경험이 중국 근현대 작품을 수집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에 부부 컬렉터이자 롱 뮤지엄을 설립한 류이첸(劉益謙) 선생과 왕웨이(王薇) 관장의 조언을 받으며 컬렉션의 방향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었다. 처음 소장한 작품은 저우춘야(周春芽) 선생의 회화 작품 ‘복숭아꽃’이다. 꽃향기와 흙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생동감있는 붓질과 강렬한 색감에 매료되어 선택하게 됐다.
지금까지의 컬렉션을 관통하는 공통된 흐름이나, 작품을 고를 때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보다 추상회화를 좋아한다. 앙리 마티스, 이우환, 박서보, 쿠사마 야요이 같은 세계적인 거장부터 중국의 1970~1980년대생 작가, 신진 작가들까지 폭넓게 수집한다. 이때 작품이 내게 직관적으로 울림을 주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가격은 고려 요소 중 하나일 뿐, 핵심적인 기준은 아니다. 결국 작품과 내가 맺는 인연이 매 순간 선택을 이끌어왔다고 본다.

그중에서도 중국의 동시대 미술에 대한 관심이 단연 돋보인다. 최근에는 어떤 작가들을 눈여겨보고 있나?
상하이를 거점으로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국의 동시대 작가들에게 시선이 간다. 잔왕(展望), 저우춘야 같은 1세대 원로 작가부터 쩡판즈(曾梵志), 장언리(張恩利) 같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중견 작가, 자아이리(賈蔼力), 추샤오페이(仇晓飞) 등 신세대 작가들까지 두루 관심 있게 지켜보며 수집하고 있다. 세대를 불문하고 이들 모두 중국의 문화적 요소를 자신만의 표현 언어로 풀어내는데, 그 안에서 느껴지는 활력을 특히 좋아한다.
부동산 개발을 주력으로 하는 ‘톰슨 그룹(Tomson Group)’을 이끌고 있다. 기업 경영자이자 컬렉터라는 두 가지 정체성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
두 영역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다는 점을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단순히 집을 짓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삶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중시하다 보니 톰슨 프로젝트 전반에 예술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왔다. 가령 그룹의 자원과 플랫폼을 활용해 아트 살롱이나 클럽 행사들을 열어 개인 컬렉션을 공유하거나, 대표 프로젝트인 ‘톰슨 리비에라(Tomson Riviera)’의 공공 공간에 다양한 작품을 배치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경험하도록 했다. 이러한 시도가 기업의 문화적 깊이를 더해줄 뿐 아니라, 예술 산업에도 긍정적인 파급력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톰슨 리비에라 곳곳에도 대형 설치 작품을 마련해두었다. 공공 공간에 작품을 배치할 때 특별히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공간 속에서 작품이 장식물로서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경험을 바꿔주는 장치가 되길 바란다. 건물 로비에는 저우춘야의 ‘복숭아꽃’을 걸어두어 방문객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예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했고, 단지 내에 마련된 중정에는 잔왕의 대형 조각 ‘가산석’을 설치해 중국 고전 산수의 정취를 불어넣고자 했다. 이 정원은 청나라 시대 때 지어진 예원과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해 있어, 전통과 현대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을 빚어낸다. 그 안에서 주민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옛 문인들의 여유로운 정신을 체험하며, 공간이 전하는 예술적인 감각을 차분히 음미할 수 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컬렉션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건축, 공간과 관련된 사업을 이끌다 보니 작품이 공간에 놓였을 때 만들어내는 미적 경험과 고요한 분위기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된다. 거실이나 서재, 복도 같은 일상 공간에 작품을 걸어두면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쉼터가 되어주고, 작품 앞에 설 때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쁨이 밀려온다. 이것이 내가 컬렉팅을 오랜 시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 아닌가 싶다.

오른쪽 | Yoshitomo Nara, ‘Miss Tannenbaum’, Ceramic, 69×45×48cm, 2017
컬렉팅이 삶에 가져다준 분명한 변화가 있다면?
동료 컬렉터나 작가들과 예술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바탕으로 교류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한층 확장되었다고 느낀다. 작품에 대한 견해를 나누고, 작가들의 자유로운 발상을 접하다 보면 컬렉션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과정임을 실감하게 된다.
오랜 시간 풍부한 컬렉션을 구축해온 수집가로서, 이제 막 컬렉팅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건넨다면?
컬렉팅 경험이 부족할수록 충동적인 선택을 하기 쉽다. 시장에서의 잠재 가치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작품을 선택해야 수집 과정이 더욱 즐겁고 의미 있어지는 것 같다. 작품을 고를 때 진심으로 좋아서 선택한 것인지, 주변의 말에 휩쓸려 선택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는 과정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