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 조각, 회화, 미디어아트계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4인의 젊은 작가를 만났다. 이미 자신의 세계를 명확하게 구축한
이들은 이제 더 깊고 단단하게 길을 확장하는 중이다.

장한나 CHANG HANNA
우연히 바닷가에서 발견한 돌 형상의 플라스틱. 장한나 작가는 그날의 발견을 우연한 하루로 지나치지 않았다. 계속해 바다를 찾아가 이들을 수집했고, 이것들을 ‘뉴 락(New Rock)’이라 명명했다. 인간이 손쉽게 쓰고 버린 물질이 자연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이 존재 양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계속해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를 담론화하고 있다. 설치, 영상, 글, 사진,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가는 끊임없이 이 존재에 대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시장에서도 봤지만, 작업실에서 보니 더 놀라워요. 이 모든 게 돌이 아니라, 돌의 형상을 한 플라스틱인거죠?
저도 놀라워요. (웃음) 수집한 지 꽤 되었음에도 여전히 발견할 때면 놀랍고 신기해요.
‘뉴 락(New Rock)’이라 명명한 플라스틱 돌을 처음으로 발견한 순간을 회상해본다면요? 2017년에 진행한 쓰레기 여행에서 발견하게 되었다고요.
2017년에 연희동에 있는 보틀팩토리를 운영하는 대표님, 그리고 어떤 작가님과 버려진 것들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겪게 되는지 쓰레기 차를 추적하는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집중적으로 맡았던 부분이 플라스틱의 시작인 생산 부분이었어요. 이때 리서치 후 쓰레기차를 따라 분리수거 선별장까지 가는 시간을 보내면서 플라스틱이라는 물질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그러다 우연찮게 바다에 갔다가 풍화가 된 플라스틱을 발견하게 된 거죠. 아마 예전에 갔던 바다에서도 분명 존재했겠지만, 그 시기엔 눈에 딱 밟히더라고요. 신기하면서 소름이 끼치기도 하고, 그런데 또 아름답기도 하고. 쓰레기 여행을 하면서 추적할 수 있었던 건 시스템 안에 있던 것들인데, 시스템의 끝은 결국 자연에 놓이는 거잖아요. 그걸 보여주는 오브제인 것 같아서 하나둘 수집을 하게 된 거죠.
첫 발견부터 지금까지, 8년간 ‘뉴 락’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중입니다. 수집한 뉴 락을 소재로 설치, 영상, 글, 사진,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작업물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매체의 경계를 두지 않는 것 또한 주요한 기조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뉴 락 프로젝트를 하면서 시기마다 주목하게 되는 지점들이 달라요. 그 지점을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지루하고 뻔하지 않게, 한 번에 푹 찌를까(웃음) 고민을 계속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때마다 적절한 매체를 선택하는 거죠. 예를 들어 뉴 락의 존재 자체를 보여주고 싶을 때는, 전시 공간과 가장 잘 호흡할 수 있게 하는 설치 작품을 고민해요. 다만 이걸 제가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나 상상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게 아니라 자연에 놓여진 걸 수집한 거라는 걸 잘 보이게 하기 위해 드로잉을 더하기도 해요. 드로잉에 시간과 장소가 들어감으로써 발견된 거라는 걸 드러내는 거죠. 그리고 뉴 락의 물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을 땐 사진 작업을 하는 편이고, 석유산업의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생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땐 리서치한 내용을 글로 전할 때도 있죠. 또 시간성을 보여주고 싶을 땐 영상을 택하게 되고요. 가능하면 더 쉽고 친숙하게, 직관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게 저한테 되게 중요한 일이라, 이를 기준 삼아 하고 싶은 이야기의 가장 적절한 매체들을 찾고 있어요.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는 중인가요?
이 인터뷰가 나왔을 때쯤 시작되는 전시가 있어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하게 될 전시 준비가 한창이에요. 이전까지는 바다를 다니면서 떨어져 나온 것을 수집했는데, 요즘은 현무암에 딱 달라붙어 있는 종류의 플라스틱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열에 의해 녹아서 돌 틈에 들러붙은 종류의 것들인데, 이것들을 다 뜯어왔거든요. 이를 다시 원래의 모양대로 조립해서공중에 매달아 전시할 예정이에요.

사진: CJYART STUDIO_조준용

작품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인천아트플랫폼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최대한 자연 안에서 존재하던 모습 그대로 만들어, 이들에게 본떠진 자연의 형태를 보일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인데, 조립하는 과정이 쉽지 않네요.
관객이 자유로이 해석하게끔 두는 작품이 있는 반면, 뉴 락 프로젝트는 매 전시마다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명확하다는 게 주요한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맞아요. 명확하죠. 다만 저는 제 작업이 어떤 관객분들에게 생각의 시작이 되길 바라요. 명확하게 ‘그렇구나’ 하고 끝나는 게 아니고 거기서 불편한 감정이든 의문이든 여러 생각이 들고 그래서 파고듦이 생기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작업을 해요.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시선을 가지게 되길, 어떤 인식을 하게 되길 바라나요?
어떻게 봐주면 좋겠다는 마음 자체가 어쩌면 욕심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전시를 봐주는 것 자체도 엄청난 일이라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보러 온다고 해도 관객 중 절반은 뉴 락이 자연에서 수집한 게 아니라, 제가 만든 조각 혹은 설치물이라 생각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어디까지 꼼꼼하게 보게 하느냐가 늘 저에게 숙제인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작업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런 것이 존재한다’가 거의 다거든요. 이런 게 존재하고, 끊임없이 생기는 중이고, 엄청나게 많고, 그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있고, 그게 다인 것 같아요. 이를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 제 작업의 시작이자 끝이 아닐까 생각해요.
뉴 락을 수집하고, 관찰하고, 작업화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나 주목하게 된 지점은 무엇인가요?
인간의 욕망이 자본 시스템과 함께 확장될 수밖에 없는 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충격적인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뉴 락 프로젝트로 자연을 다니면서는, 그 시스템 안에서 계속해서 버려진 쓰레기들을 자연이 다 받아들인다는 것이 놀라웠고요. 자연은 인간이 뭘 해도 다 받아들이는 거예요. 탄소를 계속 배출해도 어떻게든 순환을 시키고, 플라스틱을 계속 만들어도 그마저도 어떻게든 품어요. 자연의 포용력은 가늠할 수가 없어요.
프로젝트를 오래 이어가면서 자리 잡은 원칙이나 기준점도 있을 것 같아요. 작업 과정에서 지키려 애쓰는 원칙이 있다면?
이 프로젝트를 오래 하면서 새로 생산을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편해졌어요. 그래서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크던 시절이 있었고요. 그럼에도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는 건 생산이 아닌 수집 활동으로 작업과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게 커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생산과 가공은 최대한 안 합니다. 수집한 뉴 락도 저는 이것들이 지금 인류가 만들어낸 흔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설치를 위해 뚫는 것 외에 모양을 바꾼다거나 색을 칠한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안 해요. 또 전시를 할 때 가벽이나 좌대도 가능하면 제작하지 않고요. 예전에 한 전시에서는 도록을 pdf 파일로 홈페이지에 올려서 누구든지 다운받을 수 있는 형태로 했고, 도록 제작에 대한 예산으로 전시장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주신 적도 있어요. 그런 식으로 여러 방식을 도모하는 중입니다. 또 하나는 굿즈인데, 의류 브랜드에서 협업 제안이 은근히 많이 들어오지만 이를 꽉 깨물고(웃음) 안 하는 것 또한 나름의 원칙이에요.
작업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액티비스트의 활동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액티비스트와 아티스트의 경계 어디 쯤에서 머물고 있다 생각하나요?
예전에는 스스로 활동가와 작가를 겸하고 있나 싶었는데, 최근에는 작가라 소개해요. 활동하는 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하는지 아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론 경계를 나눌 필요가 있을까, 혹은 나눠지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자신이 주목하는 어떤 지점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두 영역의 공통분모가 존재하지 않나 싶거든요. 다만 지금의 저는 시각적인 요소를 활용한 작업물로 더 깊은 감각과 인식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스스로 작가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생각하는 거죠.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혹은 그런 류의 믿음을 가지는 편인가요?
이 세상은 무수한 우연과 운으로 작용되기도 한다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아무리 애를 쓰고 열렬한 에너지를 투입한다고 해도 어떤 것도 아니게 될 수도 있고, 정말 사소하고 작은 우연이 굉장히 큰 걸 바꿀 수도 있는 게 세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그냥 ‘지금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미세한 균열을 내는 것뿐’이라는 거예요. 그냥 하는 거죠.(웃음) 하지만 분명히 의미가 있는 거라고 믿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