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 조각, 회화, 미디어아트계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4인의 젊은 작가를 만났다. 이미 자신의 세계를 명확하게 구축한
이들은 이제 더 깊고 단단하게 길을 확장하는 중이다.

셔츠와 스커트 모두 Grace Elwood, 아우터와 레그 워머 모두 Joo Hyeon Jeong,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유아연 RYU AHYEON

작가 유아연은 작품으로 세상에 미세한 균열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쏟아지는 콘텐츠와 알고리즘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평범한 개인으로서, 자신이 겪는 불편한 감정과 장면들을 수집해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권력 구조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조각, 퍼포먼스,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그는 언젠가 관객과 마주 앉아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할 날을 기다린다.

유아연, ‘WHITE MIRROR’, Performance, silicon body suit, CCTVs,
monitors, fake walls, dimensions variable, 2019
유아연, ‘WHITE MIRROR: PRQUEL VERSION’, Performance, rooster, silicon body suit,
CCTVs, beam projector, wire mesh, cloth, dimensions variable, 2020

작업실이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네요. 두 곳을 오가며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하나는 조각을 설계할 때 머무는 사무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제작이 이루어지는 빌딩 공간이에요. 요즘은 주로 조립형 조각들을 만드는 중이라 어떤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캐스팅할지, 부품끼리 잘 맞아 들어가도록 하려면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지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작업의 70%는 컴퓨터 앞에서 스케치를 다듬고 설계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져요. 설계를 마치면 옆 공간에서 어마어마한 고강도의 노동 작업을 이어갑니다.(웃음)

안쪽에 놓인 작업 도구들을 보는데 그 강도를 짐작하게 되더라고요.(웃음)

맞아요. 빌딩 공간에 있는 크고 날카로운 기구들은 용접이나 조각의 표면을 갈고 정리하는 샌딩 작업에 필요한 도구들이에요.

조소를 전공했고 조각과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지만, 시작은 퍼포먼스였죠. 홍익대학교 졸업 전시에서 발표한 퍼포먼스 작품 ‘White Mirror’로 데뷔와 동시에 강한 인상을 남겼어요. 어떤 질문에서 출발한 작업인가요?

당시에 트위치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서 스트리머가 막 떠오르던 시기였어요. 특히 초기 트위치에는 여성 스트리머를 중심으로 콘텐츠가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고, 동시에 불법 촬영물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던 때라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죠. 두 경우 모두 매체 안에서 여성의 몸이 하나의 콘텐츠로 대상화되고 소비재처럼 다뤄진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고 봤어요. 거기에서 느끼는 언캐니한 감각, 익숙한 듯한데 어딘가 낯설고 기묘한 느낌을 직접 작품 안에 가져와보자 싶었죠.

그 불편함을 관객이 직접 체감하기를 바란 거죠? 이를 위해 어떤 방식을 택했는지도 궁금해요.

스트리밍 방송 형식을 그대로 빌려왔어요. 스트리머가 도네이션에 반응해 춤을 추듯이 아바타도 관객의 명령에 따라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고, 그 모습이 벽에 걸린 화면을 통해 영상으로 송출되죠. 처음엔 그저 영상 퍼포먼스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벽 너머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면서 관객은 아바타가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돼요. 화면 속에 존재한다고 여겼던 아바타가 자신과 같은 물리적 공간에 함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당황하거나 멈칫하게 되고요. 그때 느끼는 낯선 감각을 통해 우리가 매체에 등장하는 타인들을 얼마나 무감각하게 대상화하고 소비해왔는지 되돌아볼 수 있길 바랐어요.

실리콘 슈트로 구현한 아바타의 비주얼이 굉장히 강렬했어요. 아바타의 외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고민을 거쳤나요?

초기의 아이디어는 마네킹을 활용하는 거였어요. 어떤 옷을 입혀도 아름다운, 이상적인 신체 조건을 갖춘 마네킹이 기이한 동작으로 움직이면 어떨까. 심지어 사람의 목소리까지 낸다면? 이런 식으로 살을 붙여나가면서 여성의 신체를 본떠 다소 과장된 형태로 실리콘 슈트를 제작하게 됐고, 제가 직접 그 안에 들어가 아바타 역할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켰어요.

그 아바타가 작가 본인이었다는 사실도 놀라웠어요.

그런 반응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아바타가 저인지 아닌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퍼포먼스 작업에서는 퍼포머의 주체성이 완전히 지워진 상태에서야 관객에게 비로소 말을 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Triptych’처럼 이후의 작업들도 제가 스스로를 하나의 표본이라 여겼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한국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온 개인으로서 제가 보고 겪은 것들을 계속해서 수집하고, 작품을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지속해 나가는 중이고요.

유아연, ‘Escalator’, Aluminium, stainless, PLA, bolts, nuts, puffy, acrylic paint, 355×190×95cm, 2024
유아연, ‘STUFFIES SERIES’, MDF, stainless, polycarbonate panel, paint, bolts, nuts, human bodies, dimensions variable, 2023

이후 조각과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해왔지만, 어떤 형식을 택하든 그 중심에는 사회 구조에 대한 뚜렷한 문제의식이 놓여져 있습니다.

저는 서울이라는 도시 하면, 퇴근길의 9호선 열차 안에서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서로 붙어 있는 와중에도 스마트폰 화면을 빠르게 스크롤하는 장면이 떠오르거든요. 제 작업은 전반적으로 이 상황을 재현하고 있어요. 매일같이 쏟아지는 SNS 콘텐츠나 밈 이미지들에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콘텐츠들을 끊임없이 흡수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데서 무력감을 느끼는데, 이런 감각은 사실 모두가 느끼고 있지만 삶이 바빠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창작자로서 사람들이 외면하고 덮어두는 지점을 긁어주고, 감춰진 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동력 삼아서 나아가는 것 같아요.

이미지의 과잉 속에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창작자로서, 특히 조각이라는 물성이 있는 매체를 다루면서 하게 되는 고민도 있나요?

개인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AI 기술이 발전하고 그 영향이 미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걸 지켜보면서 좌절할 때가 많아요. 주변의 동료 조각가들도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거든요. 순수미술을 계속하려면 케이팝 뮤직비디오나 브랜드 팝업스토어처럼 거대한 자본이 동원되는 관련 산업에 어떤 방식으로든 발을 걸치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기술에 대체될 위기에 처해 있으니까요. 저 역시 둘 사이를 오가면서 노동의 가치를 계속해서 저울질하게 되고요. 그럼에도 이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작업에 풀어내고 있는 것 같아요. AI가 만든 것처럼 단순히 매끈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계속해서 저만의 독특한 일탈을 저질러보는 거죠.

이런 고민들이 최근 송은미술대상 후보전에서 선보인 두 작품 ‘Elevator’, ‘Escalator’에 집약되어 있죠. 층 전체를 가로지르는 대형 조각을 관객이 직접 밀어 내며 감상하는 관객 참여형 작품입니다.

무엇이든 자본에 의해 빠르게 돌아가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느끼는 매너리즘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과연 있을까?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 작품이에요. 최종적으로 두 가지 방식이 가능하다는 걸 제안하고 싶었어요. AI가 아무리 완벽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해도, 우리가 스크롤을 빠르게 넘겨서 아예 외면해버리거나 화면 자체를 부숴버린다면 그 이미지가 가진 힘을 무력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관객이 이를 몸소 경험해볼 수 있도록 실제로 조각을 밀면서 감상하도록 했어요.

창작자로서 개인이 느끼는 문제의식을 보편적인 담론으로 확장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누군가는 내 작업을 급진적이라 평가할 수 있고요. 이런 작업 방식을 이어가려면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하겠다 싶어요.

사실 상반기 내내 그 고민을 했어요. 내가 견지하는 급진적인 태도가 과연 관객에게는 어떻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질까에 대해서요. 끝내 내린 결론은… 드라마 퀸이 되자는 거였어요.(웃음) 요즘 칸예 웨스트와 트럼프를 보면서 작가적인 태도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도 마치 이미 일어난 것처럼 말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밀어 붙이잖아요. 물론 굉장히 왜곡된 사상이라는 게 문제지만(웃음) 이거야말로 젊은 작가로서 견지해야 하는 태도 아닌가 싶었어요.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불편함을 계속해서 소리 내어 말하고, 정확하게 가시화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단상에 올릴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느끼고요.

그 용기는 결국 미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걸 테고요.

늘 그렇게 믿어왔어요. 미술은 언제나 급진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열어줬고, 타인의 위치를 대리 경험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봐요. 저 역시 궁극적으로는 앞과 뒤, 위와 아래를 바꾸고 싶은 목표가 있고요. 위치의 전복을 시도하려면 강한 힘이 필요하고, 어떤 면에서는 공격성을 띠거나 과장을 보태야 할 수도 있겠죠. 그 과정에서 비판적인 시선을 맞닥뜨리기도 하겠지만, 젊은 작가로서 그쯤은 감내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결국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는 일일 테고요. 앞으로도 드라마 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겠습니다.(웃음)

흥미롭네요.(웃음) 앞으로의 작업은 어떤 방향으로 뻗어나가게 될까요?

매체를 넘나들면서 실험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에요. 요즘은 체스를 두는 마음으로 장기적인 작업의 흐름을 설계하고 있어요. 제가 만드는 조각은 관객과 제가 함께 체스를 두기 위한 말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조각의 양이 쌓이면 언젠가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할 수도 있겠죠. 조각들을 한 자리에 모아 다시 퍼포먼스 형태로 선보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언젠가는 제 작업이 사회에 미세한 균열을 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조각이든 퍼포먼스든, 결국 하나의 장면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 인터뷰에서 “예술이 독립된 섬처럼 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라고 말한 게 기억에 남아요. 작품이 관객의 일상에 균열을 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배달 앱의 리뷰 창을 자주 떠올려요. 리뷰를 쓴다는 게 불특정 다수와 연대하는 순간이라고 느끼거든요. 맛이나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데 누군가를 위해 구태여 남겨두는 거니까요. 시간과 노력이 크게 드는 일도 아니면서, 이런 작은 실천이 모여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하잖아요. 개인이 구조 전체를 뒤엎을 순 없지만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저항할 수는 있다고 믿어요. 저는 작업을 통해 그런 순간을 만들어보고 싶은 거고요. 기꺼이 익명의 리뷰어가 될 테니 좋아요를 눌러 달라는 거죠. 그리고 당신도 익명의 리뷰어가 되어 달라고요. 우리 모두 파워 리뷰어가 되는 그날까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