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작가들을 선정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 ‘키아프 하이라이트(Kiaf HIGHLIGHTS)’.
고유한 정체성과 독창성에 동시대적 맥락을 더하며,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그려가는 올해의 세미 파이널리스트 10인을 만났다.

YU XIAO
Lucie Chang Fine Arts
유 시아오(1980, 중국)는 항저우 출신으로 베이징과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항저우 사범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미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하며, 회화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설치 작품과 퍼포먼스도 선보인 바 있다.

stained stretcher, previously applied masking tape, 60×80cm, 2025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무엇인가?
현재로서는 점, 공(ball), 공(空, 추상의 깊이라는 맥락에서 ‘xū’)를 꼽을 수 있다. 내 작업에서 재료는 은유의 역할을 한다. 캔버스 틀은 사회적 지원의 시각적 대용물이고, 자르는 행위는 폭력을 신성한 것으로 전환하며, 공(空)이 침묵을 공명하는 힘으로 변모시키는 식이다.
‘공(空)’의 개념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준다면?
송나라의 사상이기도 한 공(空)은 시대와 사상을 넘나드는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데, 내 작업에서 표현하고자 한 핵심에는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재해석이 있다. 내 작업은 문화를 초월한 페미니스트 미학을 중심으로 캔버스를 자르고, 접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트라우마를 시각화하며 공(空)을 정치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지난해 키아프에서 이러한 개념을 강력하게 도입하기 시작한 작품들을 전시했다면, 최근 작업은 이를 기반으로 더욱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을 담고 있다.
표면에 레이어를 만드는 방식이 흥미롭다. 당신의 작품에서 ‘차원(dimension)’은 어떤 의미를 갖나?
작업과 연구를 거듭하며 스스로 자주 곱씹어보는 질문이다. 내게 ‘차원’은 센티미터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기, 자르기, 이동을 통해 형상화되는 이질적 형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는 우울이나 애도의 형상에 선, 색상, 붓 터치 등을 더하면 회복력 또는 우아한 저항이라는 ‘역전된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 이처럼 내 작업에서는 전통적 개념이 아닌 물리적, 시간적, 문화적 차원의 레이어들을 통한 탐구와 구축이 이뤄진다.
당신의 작품은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데, 어떤 형태에 마음이 이끌리는 편인가?
정의하기 어려운, 모호성을 암시하는 형태에 사로잡혀 있다. 내게 불확실성은 ‘숨김과 드러냄의 틈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담아내는 그릇’과 같다. 이는 여성의 표현을 위한 통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불확실성을 통해 수치심, 고통, 트라우마를 겪으면서도 품위 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들의 투쟁을 담을 수 있다고 본다.
올해 키아프를 찾은 관객들이 당신의 작품에서 무엇을 발견하기를 바라나?
내 작품이 촉각적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찢어진 듯한 형태의 작품 앞에 선 이들이 실제로 소름이 끼치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생생한 육체적 충격은 사회적 규범에 의해 훈련되거나, 숨겨지거나, 손상된 몸들이 전하는 ‘침묵의 언어’라고 본다. 내 작품을 구성하는 작은 요소들은 관람객이 “이게 뭐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며 전통적인 예술 관람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각자 본인의 ‘미개척된 면’을, 공(空)의 자리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미뤄둔 커리어, 숨겨둔 슬픔,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온 꿈처럼 그동안 감춰온 것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DONGHOON RHEE
Gallery SP
이동훈(1991, 한국)은 나무 조각과 회화를 통해 삶의 반경에 있는 대상을 포착해왔다. 흔들리는 꽃, 아이돌 안무 등 멈춰 있는 물질이나 매체 속에서 역동하는 존재들을 표현한다. 경희대학교 회화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 석사 졸업 후 20여 회의 기획 및 단체전에 초청받았으며, 4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올해 키아프에서 선보일 작품을 소개한다면?
2022년 뉴진스의 ‘Attention’과 아이브의 ‘After Like’ 안무를 각각 참고해 만든 조각을 전시한다. 두 작품의 색채와 질감, 동세 등을 관찰해 회화로 옮긴 올해의 신작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꾸준히 평면과 입체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계기가 있나?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고민하다가 조각을 시작했다. 화가가 정물화를 그리듯 실제 화병을 관찰하며 나무로 조각을 만든 것이 내 작업의 출발점이다. 이후 채색한 조각을 다시 캔버스에 그림으로 옮기면서 조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그릴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됐다.
당신의 회화와 조각은 어떤 점에서 닮았고, 차이점은 무엇인가?
회화와 조각은 다른 매체지만 서로를 계속 참조하면서 닮아가거나, 색다른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조각에 남은 선이나 색채를 회화로 옮기는 게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시선의 변화를 드러내는 일이 될 때가 있다.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물감과 조각의 물성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기도 한다.
처음부터 특정한 형태를 목표로 두고 작업하는 편인가?
작품의 형태는 대부분 만드는 과정에서, 대상을 관찰하며 결정된다. 조각 작업을 하며 예상치 못한 형태가 나올 때 느껴지는 재미가 있다. 또 재료의 특성에 따라 형태가 결정될 때도 많다. 나무로 제작했기에 나타날 수 있는 형태, 종이를 오리거나 찢어서 덧붙였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형태들은 손이 가는 대로 작업을 이어가야 흥미로운 결과물이 된다.
조각의 다양한 재료 중에서도 나무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목조를 배우기 시작한 이유는 미술관의 고전 회화를 감싼 화려한 액자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서였다. 배우다 보니 목조 자체가 재미있어 나무 조각을 시작하게 됐고, 서툰 솜씨로 조각을 만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흥미로운 형태를 얻을 수 있었다. 나무는 경도와 습도, 결 등을 신경 쓰며 작업해야 하는 까다로운 재료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최근에는 종이를 사용해 작업해봤는데, 나무에서 유래한 재료지만 훨씬 가벼우며 쉽게 접고 자를 수 있는 정반대의 성질을 지녔다. 이처럼 재료가 달라졌을 때 나올 수 있는 형태에 관심을 갖고 탐구해보고자 한다.
얼마 남지 않은 2025년의 목표는 무엇인가?
요즘 작가들의 인터뷰를 접하는 일이 제일 즐겁다. 내가 생각하기 어려운, 예상치 못한 답변을 읽는 재미가 있더라. 최근 리처드 터틀의 인터뷰집을 샀는데, 시도 쓰는 작가라 그런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문학적이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다 읽어보고 싶다.
작가라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
다음에 할 작업을 떠올렸는데 그게 꽤 재미있을 것 같은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