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작가들을 선정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 ‘키아프 하이라이트(Kiaf HIGHLIGHTS)’.
고유한 정체성과 독창성에 동시대적 맥락을 더하며,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그려가는 올해의 세미 파이널리스트 10인을 만났다.

SEJIN HONG

Gallery Planet

홍세진(1992, 한국)은 감각이 기술과 환경을 통해 어떻게 구성되고 재편되는지를 탐구한다. 어린 시절 청력을 잃고 인공와우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감각의 어긋남과 단절, 지연을 기하학적 조형 언어로 시각화한다. 홍익대학교 회화과 석사 졸업 후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홍세진, ‘세모의 파동’, Oil on canvas, 180×165cm, 2024

기하학적 형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기하학적 형태는 단순한 시각적 조형이 아니라, 감각의 구조를 탐색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와우를 착용하면 소리의 파동이 갖는 ‘원본’이 기계를 거쳐 ‘왜곡된, 삭제된 정보’로 받아들여진다. 그 청각적 경험을 작업에 적용하고 싶어 대상의 원본적 형태를 기하학적 도형으로 치환하거나 변형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기술을 통해 중계된 감각은 조금씩 어긋나거나, 생략되거나, 과장되곤 한다는 점에서 감각의 구조 자체를 의심하게 되었고, 이러한 감각의 결핍과 파편성을 드러낼 때 단순하고 인공적인 도형들이 적합한 언어가 되어줄 거란 생각에 이르렀다.

구체적인 장면이 관념적이고 기하학적인 풍경으로 치환되는 과정이 궁금하다.

시간이 날 때면 출사를 나가 다양한 공간과 사물 이미지를 수집한다. 이들을 선별하고, 스케치를 통해 확대하거나 변형하면서 추상적인 구조로 구성해본다. 뚜렷하지 않은 형태, 면과 선, 면적 간 긴장 관계로 느슨하게 구성된 조형 구조를 만든 후 작업에 돌입한다. 캔버스에 작업하며 때때로 더 나은 방법이 떠오르면 기존 계획을 바꿔 그려보기도 한다.

화면에 담을 장면을 구성하며 ‘시각적 편집’을 할 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엇인가?

결핍된 감각. 감각이 명확하지 않거나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한 순간들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발견하곤 한다. 감각의 결핍은 공백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적 구조를 상상하고 재구성하는 계기가 된다. 화면 위 형태들을 겹치고 밀어내는 등 어긋난 조합들을 시도하며 빈틈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나의 시각적 편집은 언제나 들을 수 없거나 볼 수 없던 감각에서 시작되며, 이때 회화는 감각의 구조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다.

텅 빈 화면을 앞에 두고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있다면?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전에 스케치와 구상을 통해 작업 과정을 계산해보기는 하지만 ‘무엇을 채울 것인가?’보다는 ‘얼마큼 덜어내거나 변형할 수 있는가?’에 더 집중한다. 멈추는 방법, 비우거나 선회하는 것에 대해 상기하는 편이다.

‘세모의 파동’이나 ‘덩그러니 반원형’ 등 인상적인 작품 제목이 많다. 어떤 과정을 거쳐 제목을 짓는 편인가?

처음부터 제목을 정해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화면에 남은 인상이나 감각을 바탕으로 제목을 붙인다. 작품의 형태나 구조, 색의 관계가 자리 잡은 뒤 가장 가까운 언어를 마지막에 고르는 것이다. ‘세모의 파동’은 삼각형 구조들이 일정한 리듬으로 배치된 화면에서 미세한 흔들림이 느껴졌을 때 떠올랐고, ‘덩그러니 반원형’은 형상이 고립된 상태로 남아 있는 장면에서 유래했다.

올해 키아프에서 선보일 작품은?

감각이 기술을 통해 구성될 때 발생하는 단차와 왜곡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평면 회화 작업을 전시한다. 매끄럽고 인공적인
선, 기계장치 같은 도형과 색면들이 감각이 엇갈리고 분절된 상태로 병치되어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기술 환경 속에서 감각이 어떻게 조립되고 어긋나는지를 회화적으로 실험하고, 감각의 충돌과 재배치를 그림을 통해 탐구하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