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작가들을 선정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 ‘키아프 하이라이트(Kiaf HIGHLIGHTS)’.
고유한 정체성과 독창성에 동시대적 맥락을 더하며,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그려가는 올해의 세미 파이널리스트 10인을 만났다.

GEOFFROY PITHON

Maāt Gallery

제프로이 피통(1988, 프랑스)은 프랑스 낭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래픽디자이너 겸 화가다. 예술과 디자인의 교차점에서 색과 형태가 상호작용하는 시각언어를 개발하고자 한다. 구조적이지만 자유롭고 즉흥적인 방식으로 작업하며 디지털 도구도 적극 활용한다.

Geoffroy Pithon, ‘Carmina Paginata III’, Acrylic and mixed media on paper, 143×104cm, 2025
Geoffroy Pithon, ‘Branchages et crustacés’, Acrylic on paper, 118 ×165cm, 2024

올해 키아프에서 소개할 작품은 무엇인가?

한층 풍부하고 생동감 있는 색상 팔레트를 활용한 새로운 시리즈를 전시한다. 이번 연작은 대만 작가 장구이싱 (Zhang Guixing)의 소설 <Wild Boars Cross the River>를 읽는 동안 완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보르네오섬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인데, 신비로우면서도 사실적인 묘사와 현지 동식물을 담아내 야생의 숨결이 와닿는 듯한 서사가 인상 깊었다. 이번 키아프를 통해 선보이는 여섯 점의 작품을 통해 그 분위기를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 사용할 색상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

몇 가지 요소를 고려하며 색상을 고른다. 우선 ‘아무것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킨다. 작업실의 테이블을 주의 깊게 살피고, 남아 있는 색소를 섞어 사용하는 편이다. 작업을 시작할 때 곧바로 손에 닿는 색도 즐겨 쓰는데, 이는 비슷한 팔레트를 반복적으로 택하는 습관을 피하기 위한 자발적 제약이기도 하다. 작품을 완성해갈 때 따르는 나름의 공식과 장치도 있다. 긴장감, 평온함, 따뜻함이나 차가움 같은 분위기를 내기 위해 네온 색을 곳곳에 쓰거나 대비되는 색을 더하는 식이다. 컬러에 상징적인 의미를 두기보다는, 색과 에너지가 종이 위에서 만나 만들어내는 상호작용을 표현하는 것에 가깝다.

작품이 발산하는 에너지와 리듬감이 대단하다. 감상하다 보면 음악이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음악은 내 작업과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릴 때 매번 음악을 틀어두는 편이다. 하드코어 펑크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뿐 아니라 새소리와 라디오 채널까지 두루 듣는다. 창작하는 순간의 기분이나 기운에 어울리는 사운드를 틀어두는 편인데, 특히 결과물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때 음악으로 적절한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회화와 그래픽디자인을 오가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이러한 활동이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디자인 작업을 위해 인쇄한 포스터에 직접 그림을 그면서 회화를 처음 접했고, 점차 디자인의 틀을 벗어나 회화 본연의 시각적 가능성을 깊이 탐구하게 되었다. 디자인은 혁신과 맞닿아 있고, 빠르게 움직이며 시대와의 소통을 수월하게 한다. 반면, 회화의 역사는 천천히 흐르며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픽디자이너와 화가의 관점을 함께 지닌 덕분에 스스로를 한층 풍부하게 만들 수 있고, 작가로서의 비전을 형성할 때도 도움이 된다. 디자인을 통해 디지털 도구, 인공지능, 모션 디자인 등에 대해 배우면서 회화를 보다 창의적인 영역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작업의 전 과정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
내가 그림을 그려가는 방식은 매우 빠르고 직관적이며, 계획이 없다. 그래서 작업 중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운 순간은 전혀 없다. 처음 선을 그리는 순간부터 작품의 형태가 자리 잡기 시작할 때까지, 비교적 오래 지속되는 즐거움을 느낀다. 물론 의심이 들거나 정신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있고, 크게 긴장하거나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작품에 진정한 생동감을 불어넣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