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진가 아나스타샤 사모일로바(Anastasia Samoylova)는 허리케인이 지나간 마이애미 거리 곳곳을 거닐며 일상의 풍경을 프레임에 담았다.
낭만적인 도시 풍경에 가려진 기후 위기의 현실, 균열이 일어난 자리에서 계속되는 삶의 흔적이 그 안에 깃들어 있다.

ANASTASIA SAMOYLOVA/INSTITUTE
ANASTASIA SAMOYLOVA/INSTITUTE

“매일 산책을 하며 점차 깨닫기 시작했어요.
이 도시의 매혹적인 색상과 아름다운 빛이 현실을 교묘하게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요.”

ANASTASIA SAMOYLOVA/INSTITUTE

미국 사진가 아나스타샤 사모일로바(Anastasia Samoylova)가 포착한 마이애미의 풍경은 어딘가 기묘하다. 파스텔 톤으로 물든 건물,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대형 빌보드, 더운 바람에 흩날리는 야자수는 현실과 동떨어진 낙원에 도착한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후 위기의 여파로 서서히 침식되어가는 도시의 현실이 자리한다. 재난이 지나간 뒤, 낭만적으로 꾸며진 마이애미의 풍경을 보며 문득 위화감을 느낀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4년에 걸쳐 남부 플로리다의 일상을 기록한 연작 ‘FloodZone’은 완벽해 보이는 풍경 아래 서서히 균열이 일고 붕괴해가는 도시의 불안한 초상을 드러낸다.

ANASTASIA SAMOYLOVA/INSTITUTE

마이애미는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놓인 도시다. 해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허리케인과 열대 폭풍이 주민들의 일상을 흔들어놓는다. “마이애미로 막 이주했을 때, 낯선 도시를 산책하며 관찰한 풍경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어요.” 사모일로바가 마이애미로 이주한 2016년 여름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였다. 이듬해 허리케인이 도시 전역을 휩쓸면서 그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몸소 체감했다. 도심 곳곳이 침수되고 대피령이 내려졌지만, 대피 체계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ANASTASIA SAMOYLOVA/INSTITUTE

작가는 이때의 경험을 출발점 삼아 재난 피해를 겪은 마이애미의 역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지역마다 피해 양상이 달랐고, 그 차이는 도시의 불평등과 맞닿아 있었다. 재난은 도시 전체를 덮쳤지만, 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과 저지대의 다세대주택이 겪는 피해는 확연히 달랐다. “매일 산책을 하며 점차 깨닫기 시작했어요. 이 도시의 매혹적인 색상과 아름다운 빛이 현실을 교묘하게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요.” 바다가 서서히 도시를 삼키는 동안에도 마이애미의 부동산 가치는 오히려 상승했다. 모순적인 현실 앞에서 작가는 의문을 품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마이애미의 고층 건물은 여전히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지녀요. 하지만 그 건물들이 홍수 위험 지대에 세워져 있다는 점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죠. 투자자들은 마이애미가 서서히 바다에 잠기고 있다는 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합니다.”

ANASTASIA SAMOYLOVA/INSTITUTE

사모일로바는 도심 곳곳에 널린 아메리칸드림을 상징하는 화려한 광고 이미지와 오랜 시간 머물러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도시의 민낯을 나란히 프레임에 담았다. 침수된 차고, 습기에 부식된 고가도로, 쇼윈도를 기어오르는 이구아나, 천재지변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장면을 기록한 그의 사진들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이미지들과는 거리가 멀다. 무너져 내리는 빙하나 피해 현장에서 절망에 잠긴 인물처럼 재난의 한가운데를 포착한 사진이 즉각적 충격을 남긴다면, 사모일로바의 사진은 충격 이후에 남겨진 서늘한 고요 속에 우리를 머물게 한다.

ANASTASIA SAMOYLOVA/INSTITUTE

재난 이후에도 어김없이 계속되는 일상을 조명하는 그의 사진들은 새로운 질문을 남긴다. 재난은 도시에서 어떤 방식으로 불평등을 드러내는가? 마이애미의 낙원 같은 풍경 뒤로 누구의 목소리가 지워지고, 또 부각되는가? 이미 시작된 기후 위기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무엇부터 할 수 있을까?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황은 심각하지만, 여전히 낙관을 품고 있어요. 제 사진은 재난 현장을 기록한 것이라기보다 열린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때로는 도시 개발자나 공무원처럼 지역 사람들과의 대화를 이끌어내기도 하죠. 지역 단위의 대화는 더 큰 변화의 씨앗이 됩니다.” 작가는 사진을 통해 어떠한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위기의 한가운데서도 이어지는 삶의 단면을 조용히 응시할 뿐이다. 예견된 미래를 어떻게 다시 써나갈지는 그 장면 앞에 선 우리의 선택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