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매개로 동시대의 정신을 설계한 두 거장, 김중업르 코르뷔지에의 시선과 철학을 만날 수 있는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 展.

©갤러리정음

한국 현대건축 1세대 김중업(1922~1988)과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협업 전시가 복합문화공간 ‘연희정음’과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동시 개최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연희정음 자체가 전시공간이자 하나의 연출된 건축 작품으로서 기능하며 두 거장의 특별한 유산을 담아냅니다.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이유가 있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던 김중업의 건축물이 처음으로 대중 앞에 소개되기 때문인데요. 1968년 완공된 ‘진해 해군공관’은 군사시설이라는 특수성 탓에 오랫동안 비공개로 유지돼 왔지만, 최근 건축사진가 김용관이 촬영한 현장 사진을 통해 그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전통 지붕의 형태, 구조적 힘이 느껴지는 조형미, 자연과의 유기적 조화는 김중업이 추구한 공간의 정신성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천장을 통해 빛과 구름을 끌어들이는 ‘천공(天孔)’의 디테일은 그가 지향했던 건축의 시적 언어를 고스란히 전하죠.

©갤러리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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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작업은 프랑스 출신 사진가 마누엘 부고(Manuel Bougot)의 렌즈로 조명됩니다. 그는 김중업이 직접 설계 도면 작업에 참여했던 찬디가르 대법원 등 인도 건축 프로젝트를 오랜 시간 기록해 온 인물이기도 한데요. 이번 전시에서 두 건축가 모두와 인연이 있는 마누엘 부고의 사진은 두 건축가의 건축 세계가 물리적으로, 또 개념적으로 어떻게 맞닿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로 작용하죠.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요소는 영화 <기생충>의 가구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작가 박종선의 작품들입니다. 그는 사진과 공간을 잇는 매개체로서의 실내 가구를 선보이며, 전시 공간을 단순히 ‘보는’ 장소가 아닌 ‘앉고 머무는’ 경험의 장으로 탈바꿈시키는데요. 연희정음 내부에 설치된 그의 가구는 관람객이 공간과 더 깊이 교감하도록 유도하며, 사진과 가구가 결합된 전시 구성은 건축의 본질인 ‘거주 경험’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죠. 관람자는 그 안에서 앉고, 걷고, 머무르며 건축과 사진, 오브제를 유기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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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로 잘 알려져 있죠. 이번 전시는 1952년 베네치아 국제예술가회의에서 시작된 두 건축가의 인연을 중심으로 구성됐습니다. 당시 젊은 건축가였던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 그의 파리 아틀리에에 입문하게 됩니다. 이후 1955년까지 유럽에 머물며 근대건축의 원리를 직접 체득했고, 이 시기 르 코르뷔지에의 대표작인 인도 찬디가르 행정청사와 유니테 다비타시옹 등 주요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실무적 경험과 건축 철학을 깊이 있게 쌓아갔죠.

이후 김중업은 한국적 미감과 구조적 감각을 결합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건축 언어를 구축했는데요. 명보극장, 서강대학교 본관, 남산 드라마센터, 삼일빌딩 등 한국 근대건축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건축물들이 그 결과물이죠. 그중에서도 그의 건축 미학이 집약된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이 1962년 완공된 주한프랑스대사관입니다. 이 건물은 프랑스의 합리주의와 한국의 공간 전통이 만나는 접점에서,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 두 거장의 사상적 대화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현재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는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지만, 동일한 내용을 연희정음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전시와 연계된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마련됐습니다. 오는 22일에는 연희정음과 주한프랑스대사관의 리모델링을 맡은 건축가 김종석, 윤태훈이 참여해, 공간 보존과 재생을 둘러싼 건축적 고민을 공유합니다. 이어 12월 13일에는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김현섭 교수의 학술 강연이 예정돼 있어, 김중업의 건축 사유를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깊이 있게 조망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예정이죠.

한·불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 전시는 동양과 서양, 기록과 창조가 교차하는 가장 상징적인 문화예술적 사건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건축 유산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자, 시대를 초월한 건축적 대화의 현장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죠. 이듬해 2월 2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두 거장의 건축 세계를 깊이 있게 경험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