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기반 사진가 야나 베르니케(Yana Wernicke)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가 단절되어가는 오늘날, 동물과 깊은 유대를 맺고 살아가는 두 여성의 일상을 프레임에 담았다.
신뢰와 존중 그리고 다정함에 기대어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를 다시 써나갈 때 비로소 열리는 회복의 가능성에 대하여.

©YANA WERNICKE 2023 COURTESY LOOSE JO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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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존재는 친구처럼, 또 어떤 존재는 가족처럼, 혹은 가르침을 주는 스승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깊은 존중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관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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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과 함께하는 두 여성의 초상을 기록한 프로젝트 를 약 2년 동안 전개했다.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인가?

오래전부터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이용’이 아닌 동반과 공감, 상호 신뢰에 기반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탐구하고 싶었다. 인간이 동물의 세계에서 멀어졌다는 감정을 막연하게 품고 있던 차에 존 버거의 에세이집 에서 ‘종적 고독(species loneliness)’을 다룬 구절을 접하고 그 감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현대사회로 넘어오며 인간이 다른 생명과의 접점을 점차 잃으면서 겪는 깊은 고립감을 설명하는 개념인데, 이 깨달음이 <Companions>를 진정한 연결과 공존의 순간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이끌었다.

사진 속 두 여성 로지나(Rosina)와 율리(Julie)는 언제 처음 만났나? 두 사람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로 결심한 계기 역시 궁금하다.

2020년 여름, 독일 전역의 동물 보호소를 방문해 동물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기록하던 중 처음 율리를 만났다. 당시 열아홉 살이던 그는 어떤 단체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혼자 10마리가 넘는 소를 구조해 돌보고 있었다. 이후 율리가 SNS를 통해 알고 지내던 로지나를 만나보라며 제안했고, 두 사람을 만나자마자 이들에게 집중해 프로젝트를 이어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병든 아기 돼지 두 마리 알바르와 셸을 거실에서 소중히 돌보던 로지나나, 초원에서 소들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율리의 모습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따뜻함과 헌신의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로지나와 율리는 자신과 동물의 관계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었나?

이들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주인과 반려동물처럼 고정된 역할로 보지 않는다. 어떤 존재는 친구처럼, 또 어떤 존재는 가족처럼, 혹은 가르침을 주는 스승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깊은 존중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관계인 셈이다. 두 사람과 시간을 보내며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준 태도는 모든 동물을 각기 다른 개성과 욕구를 지닌 개별적 존재로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YANA WERNICKE 2023 COURTESY LOOSE JOINTS

이 프로젝트에는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 아니라, 주로 식용으로 기르는 가축들이 등장한다. 이런 선택의 배경에는 어떤 문제의식이 자리하나?

사랑하는 동물과 섭취하는 동물을 구분하는 인간의 이중성, 소위 말하는 ‘미트 패러독스(meat paradox)’에 늘 혼란을 느껴왔다. 돼지나 소, 닭은 종종 경제적 기준으로만 가치가 매겨지지만, 그들도 개나 고양이만큼이나 예민하고 지적인 존재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전통적인 가축을 동반자적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이런 구분법에 도전하고 싶었다. 아주 작은 관점의 전환이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공존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피어날 것이라 믿었다.

동물을 프레임에 담는 과정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자주 마주했을 듯하다. 촬영에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나?

동물을 찍는 건 통제력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행동을 예측하거나 연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인내하며 관찰하는 법, 그 자리에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것뿐이다. 촬영에 앞서 동물들과 두 사람이 나라는 존재에 익숙해질 때까지 오랜 시간 현장에 머무르며 동행했고,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는 조용히 움직이며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었다. 사진이 품은 친밀감은 바로 이런 머무름과 기다림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개입으로도 그들의 교류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고, 다만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있는 그대로 목격하고 싶었다.

사진 속 로지나와 율리는 동물에게 몸을 기대거나 부드럽게 쓰다듬거나 나란히 누워있다. 이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신체적 접촉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

신체 접촉은 인간과 동물이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솔직한 소통 방식이라 생각한다. 특히 농장에서 구조된 동물들은 인간의 손길이 위협이 아니라 안정과 애정을 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다. 로지나와 율리에게 접촉은 말을 대신해 신뢰의 메시지를 전하는 언어다. 서로에게 기대어 있을 때 전해지는 체온, 몸의 무게, 부드러운 밀착의 감각을 포착하고 싶었다. 이런 작고 물리적인 순간들 속에서 두 존재가 맺는 관계의 깊이가 시각적으로 드러날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YANA WERNICKE 2023 COURTESY LOOSE JOINTS

“병든 아기 돼지 두 마리 알바르와 셸을 거실에서 소중히 돌보던 로지나나, 초원에서 소들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율리의 모습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따뜻함과 헌신의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언어를 넘어선 존재들과 함께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연결이나 교감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

매우 많다. 동물들은 몸의 기울기나 미묘한 움직임만으로도 복잡한 감정을 전한다. 그들과 보내는 시간 동안 언어라는 매개 없이도 우리가 연결될 수 있음을, 가끔은 그저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깊은 교감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배웠다.

작업 전반에서 흑백사진이 주를 이룬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색을 배제한 선택이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보나?

흑백사진은 장면의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몸짓이나 질감, 감정 같은 미세한 부분에 시선을 집중하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고요와 친밀감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인 방식이라 느낀다. 이번 작업에서는 특히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색이라는 강력한 정보가 사라지자 인간과 동물의 피부나 털의 미세한 결이 같은 세계에 속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결과 서로의 차이보다 함께 머무는 감각이 더 선명해졌다고 생각한다.

로지나와 율리, 그리고 동물들과 함께한 시간이 인간과 동물, 나아가 자연을 바라보는 당신의 관점을 바꾸어놓기도 했나?

두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위계적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 나아가 신뢰와 공감, 상호 돌봄 같은 감각만으로도 우리의 관계가 다시 세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비인간 존재의 삶과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지 깨달았고, 연결이 회복될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는 걸 배울 수 있었다.

©YANA WERNICKE 2023 COURTESY LOOSE JO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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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이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사소하고 일상적인 돌봄 속에서 매 순간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다소 회의적인 시선에서 출발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공존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당신이 작업을 통해 발견한 희망은 무엇인가?

다정함이 우리를 더 균형 잡힌 삶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는 희망. 프로젝트의 시작점에서는 동물의 세계와 단절되었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이 컸지만, 그 안에는 늘 그들과 다시 연결되고 싶다는 깊은 그리움이 자리했다. 로지나와 율리를 지켜보며 공존이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사소하고 일상적인 돌봄 속에서 매 순간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조용한 손길과 사려 깊은 애정 속에서 변화가 서서히 자라난다고 믿는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 회복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겸손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 그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태도 말이다.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건 결국 다른 생명에 대한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회복하는 일이자, 다시 연결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우리가 비인간 존재를 존중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할 때 비로소 무너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