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의 충만함을 믿는 마음, 내일로 기꺼이 향하기 위한 내면의 근육, 삶을 지탱하는 힘.
사랑을 말하는 예술 작품 속 언어들을 모았다. 우리의 세계가 각양각색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라며.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문학동네

“나는 사랑의 소모를 두려워했다.
마치 광합성으로 스스로 제 먹이를 만드는 녹색식물처럼,
햇빛을 받아들이고 물을 길어 올려 자기 안에서 스스로 먹이를 만드는 사랑을 원했다.
내 몸속에서 혼자 사랑이라는 먹이를 만들고 그것을 먹으며 생존해가기를 말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황량한 겨울 들판을 헤매며 타인을 찾아 울부짖고 싶지는 않았다.”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소설 <새의 선물>에서 숱한 헤어짐을 거치며 삶을 관망하고, 절망보다 희망을 두려워하던 열두 살 소녀 ‘진희’. 그 아이는 어느덧 자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 “애인은 셋은 되어야 사랑에 대한 진지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30대 중반의 어른이 된다. 진희에게 보편적 윤리나 책임을 운운하고 싶지 않다. 진희는 사랑을 앞에 두고도 사랑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지난날 자신을 지켜준 냉소에 충성하는 방식으로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심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무게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토록 진희 편을 들게 되는 이유는 그에게서 애써 외면해온 내 안의 모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진희에 대한 옹호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한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진희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희망에 기대를 걸어보기를, 부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이 바람을 붙들고 있다 보면, 나는 어느새 사랑을 믿는 사람이 된다. 진희를 향한 이 마음이 오래도록 묻어둔 나의 지난날에 건네는 응원이자 위로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진희를 꼭 안아주고 싶었던 마음으로, 언젠가 그때의 나를 안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이크 밀스 <비기너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You’ve lost so much. What if I can’t make up for?”
“넌 너무 많은 걸 잃었어. 내가 그걸 채워주지 못하면 어떡하지?”

마이크 밀스 <비기너스>

영화 <비기너스>는 일흔여섯 나이에 동성애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아버지 ‘할’과 그의 죽음 이후 상실을 통과하는 아들 ‘올리버’를 나란히 비추며 사랑을 맞이하는 마음에 대해 묻는다. 사랑을 시작하는 일만큼은 초보자일수록 쉬울지도 모른다. 이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초반의 설렘보다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서로의 생에 깊이 들어가는 일에 따르는 책임, 이별의 고통을 먼저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올리버에게 사랑은 특히 두려운 일이다. 아버지의 커밍아웃은 자신이 진정한 사랑의 관계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존재론적 혼란과 어머니의 외로움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는 슬픔을 남겼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연애를 묵묵히 지켜보며 그 여생에 동행하는 이유는 헤어짐 이후에 남을 후회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올리버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이전에 미처 애도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빈자리까지 마주하며 슬픔에 잠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간 파티에서 ‘안나’라는 이름의 여자가 쪽지를 건넨다. “슬픈데 왜 파티에 왔어요?(Why are you at a party if you’re sad?)” 농담과 파티용 분장, 시끌벅적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눈에 밴 슬픔을 알아본 그 앞에서 올리버는 조금씩 솔직해진다.
내게 사랑의 정의는 수시로 바뀌지만, 닮고 싶은 사랑의 태도만큼은 오래도록 안나의 그것이었다. 상대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며, 주저하기보다 용기 낼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안나의 애정과 관심으로 변한 올리버는 이제 안나의 두려움에 먼저 손을 내민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사랑이란 그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그의 지난날까지 끌어안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서로의 미래를 변화시킨다고 믿게 되었다. 과거는 여러 형태로 찾아와 현재를 방해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더 내밀한 상처까지 함께 들여다보기로 약속한다. 그렇게 나날이 새로운 차원의 사랑을 경험하는 이들 앞에서 문득 깨달았다. 시작을 두려워하기엔 우리는 매일이 처음이라는 것을.

이소라 ‘Track 9’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이소라 ‘Track 9’

바람이 차가워지면 이소라의 노래가 떠오르곤 한다. 그건 아마 그의 곡 대부분이 깊은 상처와 외로움, 아픈 기억들을 노래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집어 든 이소라의 7집에는 “이번 앨범은 ‘상처’보다는 ‘위로’에 가깝고, ‘겨울’보다는‘겨울에서 봄’과 어울린다”라고 쓰여 있었다. 손수 그린 일러스트로 완성한 앨범 커버와 그 안에 수록된 자필 메모, 함께한 멤버들과 나눈 대화와 웃음 소리가 같이 녹음된 트랙들까지 조용한 방식으로 온기를 건넸다.
그중 내 마음을 덥힌 건 ‘Track 9’이다. 이 곡을 들으며 문득 내 이름을 부르던 몇몇의 목소리가 그리워졌다. 그 목소리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음에도 여전히 모두에게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자주 코끝이 찡해진 채 이 노래를 들었다. 담담하게 고독을 노래하는 목소리는 차갑기보다 따뜻했고, 다정했다. 세상의 ‘당연한 고독’과 ‘평범한 불행’ 속에서 자꾸 강해져야만 할 때, 자신이 짓지 않은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가는 일은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로 다가왔다. 태어나기 전부터 그 이름을 고민하던 이들의 사랑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살아가는 일이 주는 상처와 아픔을 과장하지도, 연민하지도 않은 채 조심스럽게 마음을 어루만지며 잊고 있던 사랑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곡이 참 고맙고 애틋하다. 이 곡 앞에서 나는 그 섬세한 마음을 닮고 싶어지고, 내 이름과 곁에 있는 이들의 이름을 자주 떠올리고 사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