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새해의 출발선에 선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이곳을 묻는다.

우리는 속도와 요약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손가락 끝으로 넘겨지는 수많은 해답 속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빠른 즉답이 아니라 오래 붙잡고 천천히 마주해야 할 질문일지도 모른다. 마리끌레르 피처팀은 새해를 열며 정보를 얻는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드러나는 장치로서 ‘질문’에 주목했다. 인공지능(AI), 환경, 계층, 돌봄, 기술, 도시, 주거, 노동. 오늘의 삶을 규정하는 뜨거운 화두들을 하나의 리스트로 정리하고, 각 영역에 정통한 필자에게 단 하나의 질문만을 던졌다. 기술은 어디까지 인간의 결정을 대신할 수 있는가. 돌봄은 왜 여전히 사적인 희생으로 남아 있는가. 안정적 주거는 언제부터 권리가 아닌 운이 되었는가. 노동은 왜 존엄을 보장하지 못하는가. 특정 분야에 한정한 파편화된 문제가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얽힌 동시대의 구조를 드러내는 질문과 답을 엮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세계를 사유해온 필자 8인의 답변을 통해 우리의 사고가 확장되고, 보다 깊어지길 바란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좌표로서 말이다. 질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당신은 소비자인가,
노동자인가, 시민인가?
이승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사회정책학 박사,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저자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혁신’의 방향을 재정의해야 한다.
‘어떻게 더 싸고 빨리?’가 아니라
‘어떻게 모두가 인간답게 일하면서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을까?’를 물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야간 택배와 새벽배송 종사자의 산재 승인과 사망 사례가 급증했다. 수십 명의 사망자 중 상당수가 과로사로 분류됐다. 새벽배송 기사들은 밤 9시부터 오전 7시까지 엘리베이터 없는 다세대주택을 하룻 밤에 1백 번 이상 오르내린다. 영하의 날씨에도 땀으로 온몸이 젖고,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부족하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새벽배송 제한을 반대한다. 왜일까?
로켓배송, 로켓프레시, 샛별배송은 소비자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밤 11시 전 휴대폰 터치 몇 번이면 다음 날 새벽 현관에 주문한 물건이 도착한다. 하지만 이 편의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는 ‘낮은 가격-낮은 임금-높은 편의’의 삼각형이다. 소비자에게는 무료 빠른 배송을,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과 극한의 노동강도를 요구하며, 그 사이의 비용은 노동자 개인이 떠안는다. 경제학적으로 ‘로켓처럼 빠르면서 공짜인 배송’은 존재할 수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 비용을 부담한다. 물류 센터와 배송 노동자의 과로와 질병, 산재보험과 건강보험 재정, 가족 돌봄 공백. 사회 전체가 이 외부 비용을 부담한다.
그렇다면 적절한 노동시간은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 새벽배송 기사의 노동시간은 10시간이지만, 그 안에 압축된 물량과 속도는 측정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야간근로 자체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야간근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저임금 구조와 속도 경쟁이 강요하는 극한의 노동강도다.
새벽배송 노동자의 산재 사고가 잇따르고 여러 연구에서 우려를 표해도, 이 구조는 유지될 뿐 아니라 오히려 확장되고 있다. 왜일까? 누군가 ‘새벽배송 규제’를 말하면 즉시 ‘소비자 편의를 빼앗는다’는 반발이 나온다. 쿠팡은 이제 2천만 명이 의존하는 유통 인프라가 됐다. 새벽배송 규제를 말하는 것은 곧 수백만 유권자에게 ‘당신의 생활이 불편해진다’고 통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우리 정체성이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우선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시민이라면 야간 노동자의 건강, 과로사, 알고리즘 통제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앱을 여는 순간, 관심은 ‘얼마나 싸고 빨리’로 좁혀진다.
적절한 노동시간을 측정하려면 먼저 규제 기준을 바꿔야 한다. ‘소비자 편의’만이 아니라 ‘그 편의가 누구의 몸과 시간을 대가로 하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혁신’의 방향을 재정의해야 한다. ‘어떻게 더 싸고 빨리?’가 아니라 ‘어떻게 모두가 인간답게 일하면서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을까?’를 물어야 한다. 과로사와 새벽배송 사이의 균형점은 단순한 시간 규제로 찾을 수 없다. 우리가 소비자로만 살 것인지, 시민으로도 살 것인지 선택해야 비로소 찾을 수 있다. 쿠팡 새벽배송 논쟁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