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한 창작자의 헤리티지라 부를 수 있을까.
어떤 기준이나 기대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가장 뜨거운 마음으로 완성한 첫 작품,
그 안에는 여전히 확장을 거듭하는 세계의 단단한 기반을 비추는 단서가 남아 있다.
영화, 음악, 문학의 영역에서 각자의 언어로 시대를 통과해온 창작자 21인이 자신의 처음과 연결된 물건과 기억을 건넸다.
한 시절을 온전히 바친 기록, 처음이기에 가능했던 선택이 그 안에 담겼다.
세상에 건넨 첫 선언, 그 선언과 함께 하나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하던 순간.

소설가

정보라

단편소설 <머리>

<머리> <머리>는 주인공이 화장실에 갈 때마다 변기 속에서 머리가 나타나는 내용의 소설이다. 변기 속 머리는 어떠한 은유나 상징이 아니라, 그냥 머리다. 한국 괴담에 나오는 귀신의 의미를 해석하려 애쓰지 않듯이 <머리>도 그렇게 읽어주었으면 한다.

첫 작품이 남긴 것 “충격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인물들은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어간다는 점을 원칙으로 삼으면, 이상한 이야기를 조금은 매끄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 원칙을 지금까지 잘 활용하고 있다.

다시 바라보면 <머리>는 이제 곧 30년이 되는 오래 묵은 이야기다. 그런데 국내는 물론 해외 독자들도 <머리>에 대해 자주 묻곤 해서 매번 놀랍고 감사하다. 최근에는 <머리>를 원작으로 한 여성 배우들의 연극도 보았는데, 무대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니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변하지 않은 것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게 아니다. 대학생 시절, ‘공모전 당선 상금과 스펙’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머리>를 썼다. 다른 재능은 없었고, 소설은 도구나 재료를 딱히 필요로 하지 않았다. 처음의 실용적 태도는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이어지고 있다. 작가로서 갖는 지위와 창작에 대한 환상은 전혀 없다. 모든 창작자가 평등하게 자기 권리를 지킬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저작권과 작업할 권리를 빼앗기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나갈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내가 글쓰기를 택하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선택할 것이니 늘 귀 기울이며 계속 쓰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