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진은숙이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작곡가 진은숙이 스페인 BBVA 재단에서 수여하는 ‘BBVA 지식 프런티어 상(BBVA Foundation Frontiers of knowledge Award)’ 음악·오페라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특히 이번 수상은 한국인 최초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은데요. 시상식은 오는 6월 18일 스페인 빌바오에서 열립니다.
2008년 제정된 BBVA 재단 지식 프런티어 상은 과학과 인문, 예술 전반에서 인류의 지적 지형을 넓힌 인물을 조명하는 국제 시상입니다. 스페인 BBVA 재단과 스페인 국립연구위원회(CSIC)가 함께 운영하며, 기초과학부터 생물학·생의학, 정보통신기술, 기후변화 및 환경과학, 경제학·재무·경영, 인문학, 사회과학, 음악·오페라에 이르기까지 총 8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하죠. 지금까지 17회의 수상자 가운데 34명이 이후 노벨상을 받았을 만큼 학문과 예술 전반에서 선구적 업적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지기도 하죠. 각 부문 수상자에게는 40만 유로의 상금이 주어지며,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과 놈 촘스키(Noam Chomsky),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존 애덤스(John Adams)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이름들도 이 상을 거쳐 갔습니다.


BBVA 재단이 주목한 건 단지 국제적으로 저명한 작곡가라는 명성이 아니라 진은숙이 구축해 온 고유한 음악 세계 그 자체였습니다. 재단은 “진은숙은 탁월한 기악적 기교와 강력한 표현력으로 상징적 세계를 묘사하고,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음악 언어와 기법을 발전시키며 음악 창작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공헌을 해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죠.
심사위원단은 진은숙의 음악에 대해 기악적 비르투오시티와 정교한 오케스트레이션, 색채와 질감이 끊임없이 변주되는 유동적인 사운드스케이프, 그리고 환영과 변형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특히 협주곡과 오페라에서 드러나는 밀도 높은 음향 설계와 표현력, 말하듯 흐르다가도 노래처럼 치솟는 성악적 전개, 파편화된 서사 감각을 짚으며 그가 동시대 음악을 실질적으로 확장해 왔다고 설명했죠. 위원장을 맡은 작곡가 가브리엘라 오르티즈(Gabriela Ortiz)는 진은숙을 “탁월한 오케스트레이션의 대가”라고 평가했고, 리세우 대극장 예술감독 빅토르 가르시아 데 고마르(Víctor Garcia de Gomar)는 “듣는 순간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는 작곡가”라고 표현했습니다.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난 진은숙은 서울대학교에서 강석희를 사사한 뒤, 1985년 졸업 작품 ‘스펙트라(Spektra)’로 네덜란드 가우데아무스 국제작곡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일찍이 국제 무대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독일로 건너가 현대음악의 거장 리게티 죄르지(Ligeti György)에게 사사했고, 이후 베를린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단단히 구축해 왔죠. 이렇게 유럽 현대음악의 중심에서 활동해 왔지만 그의 음악은 특정 지역이나 전통 안에 한정 지어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진은숙은 국적과 계보를 넘어서는 감각으로 듣는 이를 낯선 음향 속으로 끌어들이죠. BBVA 재단 역시 그의 작업이 출생지나 문화적 정체성에 갇히지 않는 보다 보편적인 정체성을 지녔다고 평가했습니다.
진은숙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소리에 대한 집요한 탐구입니다. 그의 음악은 선율을 따라가기보다 소리의 표면과 깊이, 질감의 변화와 공간을 채우는 방식에 먼저 귀를 기울이게 만들죠. 대표작인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2004년 그로마이어 작곡상을 안기며 국제 무대에 그의 이름을 분명하게 각인시킨 작품입니다. 이어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에서는 기이하고도 매혹적인 상상력으로 진은숙 특유의 음악적 감각을 한층 분명하게 드러냈죠.
이후 그는 쇤베르크상, 프린스 피에르 재단 음악상, 호암상, 비후리 시벨리우스상, 레오니 소닝 음악상 등을 이어받으며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고, 2024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에른스트 폰 지멘스 상을 수상했습니다. 현대음악계에서 사실상 최고 권위의 평생 공로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상이죠.

한편 진은숙은 2022년부터 통영국제음악제와 대만 가오슝 웨이우잉 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아 창작자로서의 작업을 넘어 동시대 음악을 소개하고 확장하는 역할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이끄는 ‘2026 통영국제음악제’는 오는 27일부터 내달 5일까지 경남 통영에서 열리며, 총 26개의 공연 프로그램이 펼쳐질 예정인데요. 전 세계가 주목해온 그의 음악 세계를 직접 마주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