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천선란·김성일 작품 4편이 2026 로커스상 번역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한국 SF 문학의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정보라 © HyeYoung

한국 SF 소설, 세계 문학의 중심으로

한국 문학이 다시 한번 세계의 시선을 끌어당겼습니다. 2026년 로커스상(Locus Awards) 최종 후보 발표에서 한국 작가들의 이름이 유독 두드러졌기 때문인데요. 올해 신설된 ‘번역 소설 부문’에서 총 10편의 후보 가운데 무려 4편이 한국 작품으로 채워졌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의미 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죠.

이번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작품은 정보라의 ‘붉은 칼’과 ‘한밤의 시간표’, 천선란의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김성일의 ‘메르시아의 별’까지 총 네 편입니다. 특히 정보라 작가는 한 해에 두 작품을 동시에 후보에 올리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우며 한국 SF 문학의 현재를 가장 강렬하게 증명해 보였습니다.

로커스상은 1971년 SF 전문지 ‘로커스’의 창립자인 찰스 N. 브라운이 제정한 상으로, 휴고상·네뷸러상·필립 K. 딕상과 함께 장르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독자 투표로 수상작이 결정된다는 점 역시 이 상의 독특한 매력으로 꼽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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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두 작품으로 증명한 서사의 확장성

이번 성과의 중심에는 단연 정보라 작가가 있습니다. ‘붉은 칼’은 17세기 조선이 러시아와 맞서 싸웠던 ‘나선정벌’을 모티프로 삼아, 이를 외계 전쟁 서사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우주적 스케일의 SF로 확장해 낸 상상력이 인상적이죠. 황무지 행성에서 벌어지는 전투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여성 전사의 생존과 연대의 이야기는 기존의 영웅 서사를 다른 방향으로 밀어붙입니다. 특히 이 작품은 단순한 전쟁 서사를 넘어 식민지와 제국의 구조, 그 안에서 개인의 선택과 저항을 섬세하게 포착하는데요. 거대한 권력 구조 속 생존과 자유를 향한 집념 그리고 그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인물들의 관계는 독자에게 따뜻한 온기를 남기죠.

한편 ‘저주토끼’ 이후 처음 선보이는 신작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는 결이 다른 서사를 펼쳐냅니다. 정체불명의 물건을 보관하는 연구소를 배경으로 야간 근무자들이 마주하는 기묘한 사건들을 따라가는 연작소설이죠. 각 에피소드는 독립적으로 읽히면서도 연구소라는 폐쇄된 공간과 독특한 규칙 아래 느슨하게 연결됩니다.이야기는 공포와 기이함을 바탕으로 전개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과 비인간을 향한 미묘한 연민이 스며 있습니다. 정보라 특유의 건조하고 절제된 문장은 차가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낯선 존재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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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과 김성일, 확장되는 한국 SF의 스펙트럼

천선란의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보다 감정적인 결을 지닌 작품인데요. 외로움과 고립이라는 감정을 중심에 두고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통해 관계와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하죠. SF와 로맨스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서사 방식은 장르의 폭을 넓히는 시도로 읽힙니다.

김성일의 ‘메르시아의 별’ 역시 눈여겨볼 만합니다. 제국의 압제와 이에 맞서는 인물들의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전통적인 판타지 서사의 틀을 기반으로 하죠. 그 중에서도 특히 ‘마동기관’이라는 독특한 설정은 세계관에 깊이를 부여하며 독자들을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들입니다.

번역을 넘어 동시대성으로

한국어에서 영어로 번역되며 확장된 이 네 작품은 장르적 특성 덕분에 특정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적 감각을 공유하며 더 넓은 독자층과 연결됩니다. SF와 판타지 세계관 속에 녹아든 역사와 전쟁, 고립과 연대 같은 보편적 서사는 국경을 넘어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하죠.

로커스상 수상작은 오는 5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발표될 예정입니다. 아직 결과는 남아 있지만, 이미 분명한 사실 하나. 한국의 SF 소설은 세계 문학의 중심을 향해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