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더 이상 예술 작품 감상을 위한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관객의 참여와 교감 속에서 새로운 배움과 관계가 형성되는 곳. 샤넬 컬처 펀드의 후원으로 진행하는 리움미술관의 ‘아이디어 뮤지엄(Idea Museum)’이 8개월에 걸친 탐구형 프로그램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을 마무리했다.

‘합창하기’ 세션의 <야생합창단(Feral Choir)> 프로그램에서는 웃음과 호흡, 목소리 모두 합창의 일부로 존재한다.

리움미술관 퍼블릭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Idea Museum)’의 세 번째 프로그램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이 8개월의 긴 여정을 마쳤다. 샤넬 컬처 펀드(CHANEL Culture Fund)의 후원으로 2023년 시작된 아이디어 뮤지엄은 미술관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포용성(inclusivity), 다양성(diversity), 평등(equality), 접근성(access)을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해 탐구해왔다.

2023년 ‘기후 위기와 지속 가능성’, 2024년 ‘젠더와 다양성’에 이어 아이디어 뮤지엄이 주목한 다음 키워드는 ‘배움과 관계’였다. 지난해 11월 인류학자 팀 잉골드(Tim Ingold)의 기조 강연과 땅, 식물, 공기를 주제로 한 ‘만들기’ 워크숍으로 시작된 올해의 프로그램은 능동과 수동의 경계를 허무는 ‘중동태(middle voice)’ 개념을 바탕으로 기획했다. 행위하는 주체와 그 대상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관계 속에서 변화한다는 관점이다. 팀 잉골드는 이를 바탕으로 지각과 배움의 의미를 새롭게 사유했다. 이어진 ‘만들기’ 워크숍에서는 흙과 짚풀, 연을 매개로 손과 재료, 몸과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배움의 방식을 탐색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안무가 안은미와 시니어 여성 24인이 함께한 ‘춤추기’ 세션의 무용 프로그램 <둥실덩실>.

‘춤추기’ 세션은 안무가 안은미와 시니어 여성 24명이 참여한 무용 프로그램 <둥실덩실>로 이어졌다. 총 10회의 워크숍과 두 차례의 공연을 통해 정해진 안무를 익히기보다 안무가와 참여자들이 서로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리듬과 춤이 완성됐다. 첼리스트 겸 작곡가 이옥경이 진행한 ‘연주하기’ 세션 역시 정해진 악보나 역할에서 벗어났다. 참여자들은 소리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자유로이 나누고,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여 즉흥적으로 응답하며 저마다 소리와 관계 맺는 방식을 발견했다.

‘합창하기’ 세션에서는 영국의 즉흥 음악 전문가이자 보컬리스트 필 민턴(Phil Minton)과 함께 <야생합창단(Feral Choir)>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전문적인 음악 지식이나 정형화된 발성 방식을 넘어 웃음과 호흡을 비롯한 일상의 소리까지 합창의 요소가 됐다. 음악적 경험과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으며, 한 참여자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마지막 ‘듣기’ 세션은 홍콩의 비영리 아티스트 컬렉티브 사운드포켓(soundpocket)과 함께한 리스닝 아카데미 워크숍 ‘비는 하나의 축제’와 연계 포럼으로 진행됐다. 4일간 이어진 워크숍에서 참여자들은 저마다 떠올린 비와 물의 이미지, 그에 얽힌 기억을 기반으로 하나의 공동 작업을 만들어갔다. 한 방울의 비가 모여 강을 이루듯 개인의 경험을 공동의 감각으로 확장해가는 시간이었다. 이어진 연계 포럼 ‘듣기의 실천들’에서는 여러 예술가와 연구자, 실천가가 앎과 배움의 방식을 확장하고 지식을 공유해 새로운 학습을 만들어내는 도구로서 ‘듣기’의 가능성을 논의했다.

‘듣기’ 세션의 리스닝 아카데미 워크숍 <비는 하나의 축제> 세 번째 시간. 물과 징, 그릇 등을 활용해 서로 다른 소리가 어우러지는 순간을 경험하는 모습이다.

약 8개월에 걸쳐 워크숍과 퍼포먼스, 포럼을 이어온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은 예술을 감상의 대상에서 관계와 배움의 실천으로 확장했다. ‘만들기’, ‘춤추기’, ‘연주하기’, ‘합창하기’, ‘듣기’라는 다섯 가지 움직임의 중심에는 완성된 결과물보다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놓였고, 스스로를 감각하고 이를 타인과 나누며 관계를 형성해가는 배움의 시간이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이어졌다. 배움을 관계 속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제안하며, 미술관이 예술을 통해 새로운 감각과 지식, 공동체를 형성하는 공공의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샤넬 컬처 펀드와 리움미술관은 이달 <아이디어 뮤지엄, 내일 이후(Idea Museum, after Tomorrow)>를 개최해 지난 3년 동안 이어져온 주요 기록과 대화의 과정을 조명할 예정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전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고, 동시대 미술관의 역할과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온 지난 시간 끝에 아이디어 뮤지엄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