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김용호가 카메라 렌즈 너머로 바라보는 진실의 세계.

‘형식은 본질의 표면이나 진실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라는 자신의 말처럼 사진가 김용호는 현실 속에서 보이지 않는 진실을 관찰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포착합니다. 캐논 갤러리에서 <난폭한 아름다움> 사진전을 선보이고 있는 김용호를 만나 오랜 시간 동안 탐구해온 사진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1월 4일부터 캐논 갤러리에서 캐논 마스터즈로 <난폭한아름다움> 사진전을 선보이고 있죠. 어떤 내용을 중심으로 다룬 전시인가요?
이번 전시 <난폭한 아름다움>은 1990년대 초기부터 2025년에 이르기까지 30년 넘는 시간 동안 제가 작업해온 이미지 탐구의 흐름을 하나의 궤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인 ‘이미지는 어떻게 감정을 만들고, 시간과 충돌하며, 현실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가’를 상기하며 시퀀스와 연작 형태로 재구성했죠.


상반된 뉘앙스의 두 단어를 이은 전시명 <난폭한 아름다움>은 강렬하면서도 우아함을 드러냅니다. 제목에 담긴 의미가 궁금합니다.
‘난폭한 아름다움’이라는 제 작품의 제목에서 따온 전시명입니다. 평화롭게 눈이 덮인 정원에 있는 바위를 찍었던 사진인데요. 문득 그 바위의 모습이 늪 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는 괴물처럼 느껴졌어요. 모순적인 분위기가 교차하는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제가 경험했던 ‘아름다움’은 언제나 질서와 파열, 조화와 균열 사이에서 탄생했어요. 그 순간을 포착하면서 느꼈던 감정의 모순과 균열을 공유하고자 전시 제목으로 지었습니다.
‘범은 경복궁에서 자신을 발견했다’나 ‘우리가 아는 서울, 내가 모르는 서울’ 등 현실 속에 존재하는 배경과 초현실적인 피사체의 조화가 생경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현실에 초현실적 요소를 개입시키면 익숙했던 세계의 표면이 흔들립니다. 제가 찍는 것들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인물과 오브제이지만, 이들을 조합했을 때 생기는 낯선 틈이 있어요. 익숙함에서 느껴지는 생경함, 그 균열의 틈에서 본질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죠. 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기록하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포착하려고 합니다. ‘형식은 본질의 표면이나 진실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라는 저의 철학에 맞닿아 있는 작업 방식이에요.

덕수궁 석조전, 경복궁, 낙선재, 신세계백화점 본점, 을지로 골목 등 서울의 곳곳을 엿볼 수 있는 장소가 배경의 주를 이룹니다. 서울이라는 지역성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이유와 서울이 가지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한국의 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경복궁이나 덕수궁의 석조전 같은 장소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균열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공간이어서 특히 좋아하죠. 서로 다른 시간대의 공간들이 한 프레임 안에서 충돌하면서 섞이는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의 정서, 역사, 기억을 시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서울은 다채로운 시간들이 겹겹이 쌓인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2023년에는 ‘데 배르미스 서울리스 오어 낫’이라는 영화를 선보였죠.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의 영역까지 작업을 확장시킨 이유가 있나요?
예전에 한 전시 기획자가 “자신의 작업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모든 영역을 다 섭렵해야 한다”라고 얘기했던 게 생각나네요. 영화에 대한 꿈은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배우 김민희와 작업했던 사진 소설 ‘소년’도 원래 영화로 제작하려고 했으니까요. 영상은 이미지가 움직이는 동안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도구입니다. 사진만으로 담기 어려운 감정의 여운을 지속적인 방식으로 담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영상까지 작업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이상, 윤동주, 셰익스피어, 장 뤽 고다르 등 문학과 영화계의 인물들이 제목이나 내용에 등장한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사진 속에 내러티브를 응축시키는 작업 방식은 문학과 영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인가요?
문학과 영화는 저의 작업에 매우 중요한 토대예요. 언어와 이미지로 세계를 전복한 작가들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았거든요. 특히, 장 뤽 고다르 감독이 누벨바그 영화에서 서사를 해체하고 감정의 충돌만으로 화면을 이끌어가는 방식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죠. 그래서 종종 제 작품들을 보면서 소설을 읽는 것 같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한국의 문학과 예술의 챕터를 연 이어령, 박완서, 박서보, 백남준부터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영역을 더욱 세계적으로 넓힌 박찬욱, 김수자, 조성진의 얼굴을 포착해 왔습니다. 한국의 얼굴과도 같은 이들을 사진으로 남길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이 있나요?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을 찍는다는 것은, 한 시대의 정신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각기 다른 시대의 정신을 대변하는 이들을 촬영할 때는 ‘인물’을 사진에 담는다기보다 그들의 ‘정신’을 담으려 하죠. 평생 탐구해온 그들의 세계가 얼굴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관찰하면서 카메라 셔터를 누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꼭 담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요?
변화가 시작되려는 찰나를 담고 싶어요. 당장이라도 불씨가 붙을 것 같은 그 순간을요. 그 경계의 시간에 가장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 경계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계속 쫓아가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