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택 아이보리 재킷 Lemard, 화이트 셔츠 ZARA, 블랙 팬츠와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환태 그린 컬러 재킷 STU, 블랙 와이드 팬츠 Labeless, 슈즈 ZARA, 아이보리 니트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로부터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곁에서 함께 눈물 흘리며 온기를 더하던 이들이 하나둘 떠 나가고, 진실을 외치던 소리가 잦아들고, 선명했던 기억이 흐려지는 시간 속에서도 참사 피해자 가족들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은 슬픔을 안은 채 진실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걸음에는 지성이 아빠, 문종택 감독도 있다. 그는 지난 10년간 세월호 피해자 가족의 모든 순간을 카메라로 담아내며, 충실한 기록자로서 여정을 이어왔다. 슬픔과 분노의 순간만을 포착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세월호가 이미 지난 일로 외면받을 때에도 그는 꿋꿋하게 참사 피해자 가족의 진짜 이야기를 쌓아나갔다. 아이는 떠났지만 왜 죽었는지 알아야 했기에,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하기에. 그렇게 모아둔 기록들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내밀하고 세심하게 다루는 김환태 감독의 손을 거쳐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로 완성되었다.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놓을 수 없었던 바람의 시간들이 담긴 영화를 통해 김환태 감독은 다시 한번 가족들의 걸음을 바라봐주길, 그래서 더 이상 이들이 외롭지 않기를 소망 한다 말했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 남겨진 문종택 감독의 간절한 바람 하나. “언젠가 아이들을 만나는 날 진실을 밝히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열심을 다했노라 말할 수 있기를, 그래서 다시 한번 그 손을 잡아줄 수 있기 를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기획된 다섯 편의 영화 중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의 본질적 시작점은 참사 피해자 가족인 문종택 감독이 카메라를 든 순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 카메라를 든 날을 회상해본다면요?

문종택 2014년 8월 8일, 저를 포함한 몇몇이 국회 본청 마당과 광화문광장에서 단식투쟁에 들어간 날이었어요. 참사 이후 우리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오역과 곡해가 반복 되는 일을 겪으며 ‘안 되겠다. 우리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자’ 싶었어요.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라이브 방송을 하게 됐어요. 동시에 녹화해서 자료로 기록해두기로 했고요. 미약하 지만 기존 언론에 대한 저항이자 진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열망으로 시작하게 된 거죠.

  

그날부터 카메라를 놓은 날이 없으니, 촬영 분량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환태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아버님이 촬영분 중 필요한 부분을 선별해 넘겨주셨는데, 그게 7테라 정도였어요. 거기에 미디어 활동가 ‘미디어몽구’에게 받은 자료가 4테라쯤 되고요. 추려서 받은 자료가 이만큼이니 아버님이 실제로 가지고 계신 전체 분량은 훨씬 많을 거예요.

문종택 제가 가지고 있는 건 대략 50테라 분량이었어요. 거기서 출발한 거죠. 크게는 3년 치씩 묶고, 그 안에 해마다 주요한 부분을 편집해서 넣었어요. 6~7편의 분량을 1차로 편집해놓고 김환태 감독과 함께 그걸 한 편으로 만드는 작업을 이어간 거죠.

김환태 저는 이를 10년의 투쟁사라 말하고 싶어요. 영상 안에 가족들이 어떻게 싸워왔는지, 어떤 걸음으로 헤쳐왔는지가 선명히 보이거든요. 이건 충실하고 우직한 기록자가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구나 싶었고, 그래서 더 세심하게 고르고 골라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어요. 지난 10년의 시간을 1백 분이 조금 넘는 분량으로 함축해내는 일이니까요.

  

영화는 참사가 일어난 날부터 연대기 형태로 흐릅니다. 역순으로 흐르게 하거나 몇몇 사건을 중심으로 시간을 뒤섞는 방식을 택하지 않은 건 지난 10년을 ‘기록’하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인가요?

문종택 다큐멘터리에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흐르는 구성이 있지만, 이건 그렇게 볼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백서로서 읽혀야 하는 영화고,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깨지 않는 게 중요했습니다.

김환태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왜 싸우고, 왜 좌절하면서도 다시 나아가는지 잘 정리해서 보여주는 게 제 숙제였어요. 보는 이들이 이해가 되어야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연대기로 가는 건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거기에 아버님의 내레이션을 입힌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한 선택이었고요.

  

관객 입장에서 내레이션이 확실히 10년간의 흐름을 읽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게다가 참사 피해자 가족의 목소리로 전하는 말이다 보니, 감정적으로도 이해하면서 이야기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요.

김환태 당사자성이 지닌 힘이 담기지 않았나 싶어요.

문종택 처음엔 영상만 제공하면 제 역할을 다 할 줄 알았는데, 구성이나 편집 등을 고려하다보니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싶었어요. 그런데 이건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래, 해보자 하고 시작은 했는데… 첫 녹음을 하느라 이틀 밤을 새웠습니다. 10년간의 기록이 혼자만의 싸움이라 생각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까지 이걸 다시 겪는구나 싶어서 힘들더군요. 덤덤히 읽어야지 하다가 보면 한 번씩 울컥하고, 그럼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다시 추스르고. 그러길 몇 번이나 반복했어요.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는데, 결국은 잘 이겨낸 것 같아요.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시네마 달

영화를 통해 대략적으로만 인지해온 참사 이후의 사건을 접하며, 스쳐 지나가는 희망에비해 절망이 너무나 크고 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간 속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의 조각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문종택 절망에 대한 얘기는 너무 지루하고 지난합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절망이니까요. 참담하지만 그럼에도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싸우고 싸워 얻어낸 것들이 있어요. 416생명안전공원과 416기억교실 등이요. 거칠게말하자면 결국은 노숙을 얼마큼 하느냐에 달렸더라고요. 의도적인 건 아니겠지만 이 나라가 저희한테 그걸 요구하는 것 같아요. 집에서 편하게 살게 놔두질 않아요. 그러니까 간절함으로 움직이는 만큼 조금은 얻는 게 있다 싶은데요. 이게 참 무서운 얘기예요. 그만큼 삶을 포기했다는 말이거든요. 저는 10년간 제 삶이 없었어요. 포기해야지 하고 마음먹은 건 아닌데 하다 보니 이렇게 되더군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희망을 얻는 방식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는 너무 비참하잖아요. 그러니 저희 손으로 끝내고 싶은 거죠.

  

무려 10년이나 흘렀는데, 그날로부터 이 사회는 몇 걸음이나 나아갔을지 고민하게 되는 말입니다.

문종택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몇 걸음은 뗐다고 말하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마이너스라고 생각해요. 그 증거가 이태원 참사일 테고요. 이 참사가 저에겐 엄청난 무게로 다가와요. 내가 그간 잘했으면, 진실 규명을 떠나 적어도 책임자만이라도 벌을 줬더라면 하는 부채감이 있어요. 그래서 더한 뒷걸음질이 있을 거란 두려움이 크고,
다음 참사를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나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요. 할 수만 있다면 언론사마다 찾아가 아픔에 대해서만 말하지 말고, 안전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그래야 다음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김환태 영화에도 나오지만 5·18 피해자 가족이 세월호 피해자 가족을 어루만지고, 세월호 피해자 가족이 이태원 피해자 가족을 또 안아주잖아요. 자신들의 아픔을 감당하기도 벅찬 이들은 이렇게 또 다른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살펴주는데, 도대체 이 사회는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가 싶어 비참한 마음을 갖게되는 것 같아요.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컷
사진 제공 : (주)시네마 달

제목에 대한 질문도 하고 싶었어요. 지난 세월을 ‘바람’이라 표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문종택 바람처럼 흘러온 세월로 이해하는 분이 많을 거예요. 그것도 틀린 건 아닐 테고요. 그렇지만 저는 소망한다는 의미의 ‘바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10년에 걸친 우리의 바람이 담긴 영화고, 그래서 이를 통해 끝까지 함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기도 했으니까요.
김환태 엔딩 크레디트에 나오는 음악이 강허달림의 ‘꼭 안아 주세요’거든요. 그 곡을 넣으면서 더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끝까지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10년 전에는 그랬잖아요. 다 같이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노래했고요. 그때처럼은 아니더라도 다시 바람의 세월을 걸어 가줄 이들이 조금은 더 생겨나면 좋겠어요.

  

그 바람 중 하나가 진실 규명일 텐데요. 진실이 규명된 후에도 카메라를 계속 들게 될까요?

문종택 저는 안 합니다. 사실 진실을 알게 된다면, 지금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비현실을 마주한다면, 아마 더 큰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큽니다. 그거 하나 바라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끝을 만나게 되는 거잖아요. 허무와 허탈을 어떻게 감당할지… 그런 면에서 보면 규명이 안 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오래 살아야 하니까요.(웃음)

김환태 세월호 참사를 포함해 다양한 사회문제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승리의 경험이 없던 것이 저에게도, 당사자들에게도 숙제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실망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고 계속해보는 거죠.

  

충실하게 기록된 시간을 보며, 관객의 역할은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아마도 충실하게,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종택 처음에는 이걸 영화로 만드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기록 그 자체로 남겨두는 게 옳다 싶었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다음 세대는 세월호 세 글자는 알 수도 있지만, 이 참사를 통해 무엇을 인지해야 하는지, 안전은 무엇이며, 국가의 부재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기 어렵겠다 싶은 거예요. 적어도 이들이 세월호 참사라는 게 있었다는데,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 궁금할 때 보여줄 영화 하나는 있어야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바람의 세월>을 만들었어요. 이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는 우리의 목표와 맞닿는 바람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