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년을 맞아 더욱 알찬 라인업으로 꾸린 올해의 마리끌레르 영화제에는
15편의 근사한 영화들이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세 명의 필자가 이 중 7편을 선정해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꺼내 보여주었다. 영화제를 앞둔 설렘을 더하는 추천의 글과 함께.

WRITER
이은선
저널리스트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 Don’t Call it Mystery

감독 마츠야마 히로아키
출연 스다 마사키, 마츠시타 코헤이, 마치다 케이타, 하라 나노카, 하기와라 리쿠, 시바사키 코우

사랑스러운 ‘뽀글 머리’, 대학생 탐정 쿠노 토토노(스다 마사키)가 돌아왔다. 누적 발행 부수 1천8백만 부에 달하는 동명의 인기 만화가 일본에서 2022년 1월 TV 드라마로 재탄생해 방영된 이후 첫 극장판이다.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라는 단언적 제목과는 달리 주변의 미스터리에 자꾸만 휘말리고 마는 토토노의 사건 해결 과정을 담은 추리물이다. 주인공 토토노의 매력은 원작 만화와 드라마 팬층을 사로잡은 핵심 비결이다. 풍성한 자연 곱슬머리에 심한 콤플렉스가 있으며, 카레와 미술 작품 관람을 각별하게 사랑하는 이 청년은 애인은 물론 친구도 전혀 없지만 그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독립 지향적 인간이다. 스스로 원한 적은 없고 정식 탐정도 아니나 언제나 사건에 가담하게 되는 것이 문제. 하지만 타고난 기억력과 날카로운 관찰력, 사건 전체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은 토토노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지닌 훌륭한 탐정의 자질이다. 오죽하면 그에게 사건 해결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경찰들이 찾아올까. 하필 그들은 매번 토토노가 카레를 먹기 직전에 방문한다. 얄궂은 타이밍에도 토토노는 카레 요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과연 오늘은 토토노가 카레를 먹을 수 있는가’라는 팬들의 궁금증은 언제나 식사 실패라 는 애석한 결론으로 흐르고 만다. 미리 밝히자면, 이번 극장판에서는 아예 카레가 등장할 틈이 없다. 영화의 시작점이 토토노의 집이 아니라 히로시마이기 때문이다. 극장판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는 팬들 사이에서 통칭 ‘히로시마 편’이라 불리는 원작 만화 2~4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미술관 관람을 위해 히로시마를 찾은 토토노 앞에 여고생 시오지(하라 나노카)가 나타난다. 시오지는 누군가의 소개로 찾아왔다며 목숨과 돈이 걸린 ‘보디가드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토토노의 엉뚱한 궁금증에서
빚어지는 유머의 순간들은
긴장 가득한 극의 중간중간 자리한
사랑스러운 숨구멍이다.

영문도 모르고 카리아츠마리 가문으로 향한 토토노는 이 집안 대대로 유산 상속을 둘러싼 다툼과 의문의 죽음이 잇따랐음을 알게 된다. 시오지의 할아버지는 이미 모두 사망한 자식들 대신 시오지를 포함한 4명의 손자에게 유언을 남겼다. 각각 창고 열쇠 하나씩을 받아 든 손자들에게 떨어진 미션은 ‘있어야 할 것을 있어야 할 곳에 모자람 없이 두라’는 것. 수수께끼를 푼 단 한 명의 손자에게는 가문의 엄청난 유산이 상속될 예정이다. 토토노는 시오지와 함께 유산 상속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나선다. 웬만해서는 호들갑 한 번 떠는 일 없는 토토노는 여전히 믿음직한 안내자다. TV 드라마에서도 버스로 납치되는 와중에 “보고 싶은 전시 마지막 날인데 혹시 납치를 3시나 3시 반까지 끝마쳐줄 수 있느냐”라고 묻던 이 침착한 성정의 소유자는, 거대한 비밀이 켜켜이 쌓인 카리아츠마리 가문의 가면 역시 차분하게 벗겨낸다.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 두 개, 세 개도 아니고 사람 수만큼 있다”는 토토노의 논리는 어김없이 이번 사건에서도 들어맞는다. 추리물이라는 본연의 정체성에 걸맞게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전반적으로 탄탄하게 묘사된다. 시오지가 숨기 고 있던 수수께끼, 가문과 연관된 사람들의 민낯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토토노의 엉뚱한 궁금증에서 빚어지는 유머의 순간들은 긴장 가득한 극의 중간중간 자리한 사랑스러운 숨구멍이다.

일본 작품임을 감안할 때 더 과감하게 느껴지는 주제 의식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큰 주제는 선조들의 과거를 대신 뉘우치고 사과하는 후대들의 태도다. 이들은 잘못된 과거사를 자신들의 세대에 깨끗하게 청산하고, 제자리를 찾지 못한 일을 바로잡으려 애쓴다. “사람은 나약해서 부서지기 쉬워요. 그건 당연해요.” 토토노의 위로는 상처 뒤에 숨어 스스로를 부정하기 바빴으며, 이제는 폐허 같은 현실 위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모든 인물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기존 세계관을 모르는 관객 역시 무난하게 즐길 만한 영화다. 다만 원작 만화와 드라마의 팬이라면, 초반부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의 등장이 무척 반가울 거다. 시오지에게 토토노를 소개하는 사람. 힌트는 ‘직모’다.

딸에 대하여 Concerning My Daughter

감독 이미랑
출연 오민애, 허진, 임세미, 하윤경

독립했던 딸이 경제적 상황 때문에 엄마의 집으로 돌아온다. 7년을 사귄 동성 애인과 함께. 서로를 그린(임세미)과 레인(하윤경)이라 부르는 이들의 등장이 엄마(오민애)는 전혀 달갑지 않다. 그린은 엄마가 그렇게 부대끼는 걸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며 매일을 보내고, 레인은 갈등하는 연인의 모녀 사이에서 자신의 일상을 담담히 이어가려 노력한다. 한편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는 무연고자인 늙고 병든 제희(허진)를 정성으로 돌본다. 찾는 이 하나 없이 매일 죽음에 가까워지는 그 모습에 엄마는 자꾸만 자신을, 나아가 딸의 미래를 대입한다.

고요하고 차분한 진행 안에서 관객은 영원히 평행선을 그릴 듯한 불안한 공존을 본다. 엄마는 딸의 세계를, 딸은 사회가 만든 정상성을 강요하는 엄마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이들 사이에서 레인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가치관이 합치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모녀 관계의 가장 가까운 관찰자인 동시에 적재적소에 필요한 말들을 꺼내는 전달자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방식으로도 관계를 인정받고 보장받을 수 없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같이 있는 거, 그거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선택한 삶의 방식이라는 레인의 정확한 지적에 엄마는 입을 다문다. 모녀 관계가 아니기에 그나마 이성적으로 나눌 수 있는 대화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꼭 필요한 ‘당 사자의 언어’이기도 하다. 김혜진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이 영화는 원작이 그러하듯 엄마가 바라보는 딸의 이야기인 동시에 그 자신이 바라보는 늙고 나이 든 여성, 나아가 이성애 중심 가족의 정상성을 옹호하는 사회에 가려진 이들로까지 점차 시선을 넓혀간다. 외부의 시선에서 인물들을 대상화하지 않고 그들 내면의 작동을 따라가는 방식은 이 영화의 사려를 알게 한다.

“이미랑 감독은 엄마의 긴 독백으로
이뤄진 원작의 문장들을
스크린으로 옮기며 말 대신
침묵의 순간들을 더 깊게 허락한다.”

이미랑 감독은 엄마의 긴 독백으로 이뤄진 원작의 문장들을 스크린으로 옮기며 말 대신 침묵의 순간들을 더 깊게 허락한다. 엄마가 깊이 감췄던 눈물과 짧은 속내를 이따금 제희의 앞에서 드러내는 장면들은 그렇기에 더 인상적으로 찍힌 방점들이다. 극 전반에서 목격되는 것은 말이 온전하게 메울 수 없는 인물들 사이의 거리감이다. 엄마의 육체는 딸에게 거리를 좁혀 다가가는 대신 홀로 방 안에 모로 누운 등, 에두르는 시선을 통해 각인된다. 책의 문장들로는 눈에 보이지 않던 인물 간의 심리적 거리까지 카메라를 통해 섬세하게 감지되는 동안, 영화는 각자의 자리에서 이 거리감을 견디며 조금씩 나아가는 인물들의 시간을 끈질기게 주목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 명한다.

연고가 없는 제희를 향한 엄마의 마음은 측은지심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제희에게서 자신과 딸의 미래를 본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주변의 만류에도 제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엄마의 고집은, 부당 해고를 당한 동료를 위해 앞장서는 그린의 상황과 기실 다를 것 이 없다. 부당한 사회적 편견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삶.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닮아 있는 딸과 자신의 모습에서 엄마는 이전과 다른 무언가를 본다.

<딸에 대하여>의 지향점이 명쾌한 봉합에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 영화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의 영역일지 모른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갈등과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내가 아닌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 <딸에 대하여>는 스스로의 이 같은 질문에 ‘그럼에도’라는 답이 되고자 한다. 영화는 최선의 이해에 가닿으려는 인물들의 움직임이 내포한 어떤 가능성을 말한다. 연령도, 가치관도, 사회적 위치도 서로 다른 이들이 한 프레임에서 각자의 화합을 도모하는 후반부의 여러 장면이 그 흔적이다. 섬세하게 감정선을 타는 배우들의 연기가 고르게 훌륭하다. 임세미와 하윤경은 그들이 더 주목받아야 마땅한 배우임을 입증하며, 특히 오민애는 그가 왜 최근 몇 년간 독립영화계의 확고한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저력을 여실히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