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고 단순하지만 그 안의 리듬과 선율을 갖는 완벽한 하루에 대하여.
<퍼펙트 데이즈>
도쿄의 공공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는 출근길에 들을 카세트테이프를 신중하게 고르고, 점심에는 햇볕을 쬐며 샌드위치를 먹고, 퇴근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으로 향합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는 주인공 히라야마가 보내는 보편적인 일상과 사소한 변화를 포착한 작품입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베를린 천사의 시> 등 명작을 남긴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의 신작이며, <큐어>, <세 번째 살인>, <쉘 위 댄스> 등에 출연한 일본 국민 배우인 야쿠쇼 코지(Yakusho Koji)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죠. 해당 작품은 각종 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며 눈길을 끌었으며, 야쿠쇼 코지는 해당 작품으로 2023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거머쥐었습니다. 2024년 7월 3일 국내 개봉한 <퍼펙트 데이즈>는 약 2주 만에 4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에서도 작품의 선풍적인 인기를 입증하고 있죠.
히라야마의 리듬감 있는 하루
히라야마의 하루는 평범하면서도 단순한 루틴으로 흐릅니다. 빗자루로 거리를 쓸어내는 소리가 그의 아침을 깨우면 히라야마는 이부자리를 개키고 식물들에 정성스레 물을 뿌린 후 출근할 준비를 합니다. 곧바로 히라야마는 현관 앞에 나서서 캔 커피를 하나 뽑아 마신 뒤 올드팝을 골라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길 위로 출근하죠. 도쿄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를 하고, 집에 도착해서는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과 단골 술집과 책방을 갔다 오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휴무에는 그의 오랜 취미인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현상하거나 음악이 흐르는 방 안에서 창을 넘어오는 햇볕을 만끽하곤 하죠.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가 보내는 단순한 하루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순환적 구조로 차분한 리듬감과 사소한 변화의 선율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히라야마의 일상은 특별한 사건 없이 다소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히라야마는 평범함 속에서 소중하고 특별한 순간을 포착하고 삶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인물이기에 그는 매 순간 빛나는 특별한 하루를 보내죠.
당연하지 않은 평범한 하루
반복적인 히라야마의 일상에 불쑥 나타난 조카는 히라야마의 평범한 하루에 작은 변화를 가져다주는데요. 히라야마는 카세트테이프를 처음 보는 조카와 함께 출근하고, 자전거를 타고서 목욕탕에 향하는 등 혼자서 해온 일상들을 누군가와 공유하며 새로운 하루를 만들죠. 한편, 조카가 다시 떠난 뒤로도 히라야마는 일상의 작은 변화들을 마주합니다. 특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되잖아요”라는 대사는 ‘하루의 소중함’을 시사하는데요. 항상 가던 목욕탕이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감쪽같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처럼 매일 똑같을 것 같았던 일상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평범한 하루가 내일에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며, 모두가 ‘빛나는 오늘’을 만끽하고 소중한 하루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 <퍼펙트 데이즈>가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죠.
찰나의 소중함을 포착하며, 코모레비(Komorebi)
‘코모레비(Komorebi)’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볕을 의미하는 단어로 그 찰나에만 존재하는 소중한 순간을 의미합니다. 히라야마는 틈이 날 때마다 곳곳에 비친 코모레비를 보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찍기도 하는데요. 이처럼 찰나의 순간을 소중히 다루는 히라야마는 평범한 하루에 감사할 줄 알기에 그가 느끼는 행복은 더욱 풍족하게 느껴지죠.
작품 내에서는 히라야마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햇빛을 눈 안에 가득 담는 장면들이 자주 포착되는데요. 바쁜 일상의 현대인들은 하늘을 바라볼 새 없이 걸으며 햇볕 가득한 하늘을 당연한 존재로 인식하며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가죠. 해당 관점으로 작품을 바라본다면 공공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는 ‘햇볕’과 일맥상통한 인물입니다.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어차피 더러워지는 화장실이더라도 안 보이는 곳까지 깨끗이 청소를 하는데요. 언제나 햇볕이 세상의 머리 위를 드리우며 그 자리를 지키듯, 히라야마도 항상 묵묵하게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하며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죠. <퍼펙트 데이즈>는 관객에게 고개를 들어 존재의 감사함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이 아닌, 존재 자체를 인식하고 스스로 소중함을 느끼도록 관객을 일깨워 주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한 작품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히라야마의 올드팝 플레이리스트
<퍼펙트 데이즈>는 극중 히라야마가 즐겨 듣는 올드팝 플레이리스트로도 큰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히라야마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최신 음악을 편리하게 듣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모은 본인 취향의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즐기죠. 밴 모리슨(Van Morrison)의 ‘Brown Eyed Girl’부터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와 니나 시몬(Nina Simone)의 ‘Feeling Good’까지 히라야마의 음악 취향은 레트로 문화를 찾는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습니다. 특히 빔 벤더스 감독은 히라야마가 방 안에 누워 루 리드(Lou Reed)의 ‘Perfect Day’를 들으며 여유를 즐기는 장면을 촬영하고 나서 작품의 제목을 <코모레비>가 아닌 <퍼펙트 데이즈>로 변경했다는 후일담이 있죠. 근사한 음악 취향을 가진 히라야마가 듣는 올드팝 플레이리스트를 지금 감상해 보세요.
밴 모리슨의 ‘Brown Eyed Girl’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
루 리드의 ‘Perfect Day’
에디터 코멘트
★★★★★★★★★★(10/10)
특별해서 빛나는 하루가 아니라 존재만으로 빛나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