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를 찾아야 한다.”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코어를 찾은 순간,
장재현 감독의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올해의 영화, <파묘>가 그렇게 완성되었다.
2024년의 첫 천만 영화이자 오컬트영화 최초의 천만 관객 달성. <파묘>가 이룩한 기록에서 가장 먼저 멀어진 건 이를 완성한 장재현 감독이다. 아주 오랫동안 깊은 곳에 파묻혀 있던 우리의 과거를, 상처를 들춰내 치유한 감독은 그 성대했던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서둘러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천만 영화’라는 스코어, 오컬트라는 규정 밖으로 벗어나 또 다른 세계를 그려낼 감독에게는 단 하나의 목표만이 존재한다. 내가 찍고 싶은 영화를 찍지 않고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 것.
요즘은 어떤 시간을 보내는 중인가? 행사나 인터뷰에 거의 응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내가 운이 좋은 것 같다.
영화제 같은 데에 많이 초청받는데,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파묘>를 만드는 동안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그사이에 나온 작품들을 캐치업 하고 있다. 요즘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 책을 많이 보면서 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이런 인터뷰도 꽤 오랜만이다.
<파묘>가 2월에 개봉했으니 벌써 반년 넘게 시간이 흘렀다. 지금 <파묘>를 떠올리면, 어떤 마음이 드는지 궁금하다.
감독들은 다 그럴 거다. 영화를 만들 때도, 만들고 나서도, 시간이 좀 지난 후에도 항상 부족한 것만 보인다. 아직은 반성의 시간이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좋아해줬는지, 부족한 건 무엇인지 계속 돌이켜보는 거다. 다음 작품 나올 때쯤 되어야 편하게 보는 것 같다.
무려 천만을 훌쩍 넘는 관객 수를 달성했다. 이 정도의 흥행을 예상했나? 기술 시사 때 갸웃하는 분위기였다고 들었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후반 작업 때 스태프들한테 자주 한 말이 있다. 이거 나만 재미있냐고.(웃음) 좋은지 나쁜지를 떠 나서 약간 판단이 서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 와중에 확신한 건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진 않는다는 거다. 조심스럽게 손익분기점은 넘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잘될 줄은 몰랐다.
매일 관객수 스코어가 경신되던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단순히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은 기쁨만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개봉 2주 차 주말, 하루에 80만~90만 명 가까이 볼 때 ‘아 어쩌면 일이 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런데 나는 스코어보다 관객의 상반된 반응에 더 놀랐다. <파묘> 영화평 중 가장 신기한 표현이 “이 감독이 이번에 대중성을 노렸구나”라는 말이었다. 나는 항상 대중을 노린다. 그 대중의 규모가 크지 않아서 그렇지. 나는 항상 이런 유의 영화를 좋아해주는 마니아들을 생각하고 만든다. 그래서 다수의 관객은 특히 후반부를 못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마니아들이 그걸 좋지 않게 본 것 같았다. 관객의 마음을 아는 게 참 어려운 일이구나 하고 다시금 깨달았다. 좋으면서도 좀 얼떨떨한 느낌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 같다.
맞다. 관람평에 이른바 중간이 없었다. 누군가는 극찬을 쏟아내고, 한편에선 후반부 오니(일본 귀신)의 출현을 기점으로 급격히 굴절되는 서사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사실 그런 얘기는 시나리오 때부터 나오긴 했다. 파묘로 나타난 두 개의 관, 두 개의 영. 이야기 속 각기 다른 두 소재를 고민할 때 나의 결론은 분리시키자는 거였다. 동시에 나오는 것도 재미없고, 관 하나를 꺼내자마자 다음 관이 나오면 앞선 이야기의 힘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럼 다음 두 소재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각자의 습성과 특징을 살리면 되겠다 싶었다.
어떤 특징에 주목한 건가?
전반부에 등장하는 혼령은 구글에서 전 세계의 혼령이 찍힌 사진을 모두 검색해보니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혼령을 찍은 사진은 없고 찍힌 사진만 있는 거다. 그러니까 찍으려고 의도한 게 아니라 무언가를 찍었는데 그 뒤에 살짝 보인다거나 비치는 식이다. 그래서 나 역시 그런 접근 방식을 택했다. 다음으로 후반부에 등장하는, 일종의 육체가 있는 정령은 훨씬 어려웠다. 이걸 혼령처럼 다루면 동어반복이 되고, 누군가에게 빙의되는 건 기존에 너무나 많이 다룬 방식이라 피하고 싶었다. 뒷부분이야말로 오롯이 상상력에 의지한, 처음 보는 걸 시도하고 싶었다. 최대한 한국적이면서 이야기의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더라. 처음부터 가지 않은 길을 가보자고 한 도전이라 상반된 반응이 나올 거라 예상은 했다. 반응의 크기를 짐작하지 못했을 뿐.
가지 않은 길을 가서라도, 그래서 호오의 대립이 생기더라도 지켜내야만 했던 <파묘>의 핵심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취재하면서 이 부분이 재미있다, 이런 장면을 찍어야지 하면 이야기가 안 나온다. 소재가 품은 코어를 찾아야 한다. <파묘>도 그랬다. 파묘가 가지고 있는 건 뭐지? 그냥 무덤 파는 게 끝인가? 그걸로는 이야기가 앞으로 나가지 않는데… 계속 고민했다. 그러다 탁 하고 걸리는 게 생겼다. ‘이게 과거로 들어가는 일이구나, 과거의 잘못을 치유하는 거구나.’ 내가 발바닥에 상처가 있는데 그거 없애는 데 3년이 걸렸다. 뿌리를 완전히 뽑지 못해서 거듭 재발한 거다. 이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 이 땅에 뭔가 잘못된 게 박혀 있다. 우리에게 무슨 고름이, 흉터가 있길래. 나에게 처음 나온 관은 일종의 흉터 같은 거다. 정리되지 않은, 그래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친일. 이걸 꺼 내고 태우자. 그리고 더 깊은 곳에는 뭐가 있지? 더 파보니까 침략당하는 이의 두려움,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었다. 이를 형상화한 게 거대한 전쟁의 신, 오니다. 사람들은 오니의 크기와 생김새에 주목하는데, 사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오니의 말이다. “나는 전쟁의 신이다, 날 두려워하라,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걸 꺼내서 없애는 게 파묘의 코어였고, 그래서 그 대사가 내겐 중요했다.
그래서 촬영 초반에 최민식 배우에게 “<파묘>를 통해 우리 땅이 가진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라는 말을 한 건가?
그렇다. 그게 핵심인데 개봉 당시에는 말하지 못 했다. 스포일러니까. 이제 편하게 얘기하자면 그 이유로 분리된 구조를 택한 거다. 1백 년 전의 과거로, 더 깊이 파묻힌 5백 년 전의 과거로.
도전이라 생각한 이 작품이 큰 사랑을 받은 데는 어떤 힘이 작용했다고 생각하나?
일단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참 좋았다. 제작진과 이 영화 자체의 궁합이 좋았던 것 같다는 말을 항상 했다. 네 배우의 궁합, 배우들과 이 이야기의 조합, 그다음에 캐릭터와 배우와의 궁합. 그래서 배우들 몫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에 나의 노력을 더하자면, 한 신도 재미없는 신을 만들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파묘>를 준비하던 때가 팬데믹 기간이었다. 개봉하면 사람들이 다 QR코드 찍고 들어가서 마스크 쓰고 볼 줄 알았다. 참 답답한 일이지 않나. 그래서 화끈하게 만들고 싶었다. 화면 구성도 그렇고, 사운드도 관객이 극장에서 익사이팅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려고 많이 고려했다.
N차 관람 관객이 많은 영화이기도 했다. 이런 작품을 만든 감독은 실제로 영화관에서 몇 번쯤 봤을지 궁금하다.
전작 때는 그러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많이 봤다. 열 몇 번은 본 것 같다. 관객 반응도 궁금했지만, 그보다 사운드 체크를 하느라 여러 관을 돌아다녔다. 돌비 애트모스 믹싱이라고, 이를테면 왼쪽 뒤에서만 들리는 소리, 천장에서만 들리는 소리 이런 식의 사운드 구성에 도전해봤는데, 극장마다 스피커 상태가 다르니까 그게 잘 나올지 궁금해서 자주 갔다.
이 영화로 ‘천만 감독’이라는 새 타이틀을 얻게 됐다. 필모그래피에 천만이 넘는 스코어를 올린 작품이 생긴다는 건,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안 섹시하다.(웃음) 물론 다 웃으면서 하는 말이다. 우선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넘는 영화를 보러 와준 관객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크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영화를 끝까지 지지해준 배우와 스태프, 제작사, 투자사 이들이 좋아해줘서, 그 점이 제일 기쁘다. 다만 좀 전의 대답은 그 후의 후폭풍에 대한 말이다. 관객 수가 천만을 넘겼다고 해서, 내가 또 그만큼의 관객을 타깃으로 새로운 장르를 할 것도 아니고. 계속 이런 유의 영화를 할 텐데 또 천만을 넘기는 건 말이 안 된다. 근데 다음 작품이 5백만만 들어도 아마 다들 위로할 것 같다. 그 점을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늘 그랬듯이 다음 작품을 할 때도 최대한 이전의 스코어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 ‘오컬트의 대가’, ‘한국형 오컬트 장인’이라는 수식은 어떤가?
나는 내 작업이 오컬트영화라 생각하고 만들진 않는다. 소재에 충실할 뿐이지. 그런데 장르를 규정하다 보니 오컬트라는 프레임 안에 들어가게 되었고, 수식어를 붙이는 건 좋지만 그 점이 조금 답답한 감이 있긴 하다. 사람들이 <파묘> 후반부는 오컬트가 아니라 크리처물이라 말하는데, 나는 이것도 일종의 영인데 왜 크리처라 말하는지 모르겠다. 오컬트로 규정하는 게 나도, 관객도 어떤 영역에 가두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앞으로도 이 규정에서 벗어나려는 나와, 자신이 생각한 오컬트인지 아닌지를 보려는 어떤 관객과 계속 어긋나는 지점이 생길 거라 본다.
오컬트라는 장르가 아니라 영화가 지닌 분위기로 규정해볼 수는 있겠다 싶다.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내가 그로테스크한 걸 좋아한다. 다만 그 안에 머무는 인물은 어둡지 않아야 한다. 어두운 세계에 어두운 인물이 들어가는 건 내가 극장에서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그림이다. 그래서 내 영화의 인물들을 보면 어딘가 장난기 있어 보이면서도 프로페셔널한 특징을 지닌다.
맞다. 다들 무척 열심히 산다. 본업에 충실하고.
그래서 공포영화 문법에 맞지 않는다. 공포영화는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그려지지 않나. 그런데 나는 당하는 사람의 우울한 처지를 영화에서 보고 싶지 않다. 그보단 <고스트 버스터즈>나 <반 헬싱> 속 인물들을 좋아한다. 거기서도 주인공들이 다 뭔가를 쫓는다. 그러니까 열심히 살게 되고, 다 전문가고.(웃음)
직업윤리도 명확하고.(웃음)
한마디로 프로다. 프로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나는 돈이라 생각한다. 돈을 받고, 받은 만큼 해내는 사람이 프로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에겐 다 그런 속성이 있다.
그럼 영화감독의 직업의식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항상 생각하는 건 내가 찍고 싶은 영화를 찍지 않고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다는 것. 그게 그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찍고 싶은 영화는 생각하지 말고, 내가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자. 그게 나의 감독관이다.
<검은 사제들>부터 <사바하> <파묘>까지, 어느 하나 쉬운 길이 없었다. 무엇을 동력으로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가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영화 한 편 만들고 나면 체력이 많이 소진되는데, 또 동시에 속은 부글부글 다시 끓는다. 왜냐하면 부족한 게 아주 많이 보이니까,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거다. 승부욕이 다시 올라와서 칼을 가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쓴다. 그땐 다 이기겠다는 의지로 꽉 차 있다. 그런데 또 찍고 나면 실수들이 보이고. 그게 다시 다음 작품의 동력이 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앞만 보고 가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한편으론 겁도 난다. 내가 너무 뒤처져 있을까 봐. 시나리오 쓰는데 몇 년 가고, 준비하는 데 또 1~2년 가고. 그사이에 사람들이 변해 있을 것 같아 두렵다. 그래서 서두르려 하면서도, 너무 서두르면 안 된다고 다잡는 상황의 연속이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4~5년 주기로 영화가 나오고 있다. 다음 작품도 그 정도의 기다림이 필요할까? 더 빨리 다음 작품을 내달라는 관객의 원성이 자자하다.(웃음)
나도 더 빨리 내고 싶지. 그런데 배에 구멍이 난 채로 출항할 순 없지 않나. 그럼 죽는다. 앞에 먹구름은 있어도, 배는 멀쩡하게 내보내야지. 다만 여기서 나의 챌린지가 있긴 하다. 좋은 작가를 만나는 것. 나도 늙어가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뒤처질 수 있다. 그래서 나와 궁합이 잘 맞으면서 나의 단점을 보완해줄 훌륭한 작가를 찾는 중이다. 그러면 조금 더 생산력이 좋아지겠지.
인터뷰하는 내내 느낀 건데, 만드는 영화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지녔다. 어두움, 그로테스크함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사람인 듯하다.
지나치게 밝지.(웃음) 그래서 내가 매일 하는 일이 스스로를 다운시키는 거다. 그런데 출근해서 한 시간이면 다 끝난다. 다시 업돼서 막 얘기하고. 어쨌든 되게 밝다. 그리고 현장에서 나의 이런 성향을 오히려 활용하기도 한다. <사바하> 때부터 그랬는데, 내가 허술해야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낸다. <검은 사제들> 때는 신인 감독이었으니까 내 머릿속에 있는 걸 찍는 게 감독의 역할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 하고 싶은 대로만 찍으면 발전이 없다. 시나리오에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첫 작품 하면서 배웠다. 그다음부턴 내가 편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래서 누구나 ‘감독님, 이건 아니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태도가 생겼다.
그런데 감독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건 아니다’라고 말하기 어렵게 만들 때도 있지 않나. 선장에게 ‘이 길이 아니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래서 밑장을 까고 시작 한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모든 그림을 다 그려두었지만, ‘나 이거 몰라. 이 신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대충 적어놨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 왜? 더 나은 게 나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기다린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게 나올 때까지. 그래서 훌륭한 스태프가 필요하다. 그들은 겨우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가져와준다. 그걸 얼마나 많이 받아들이고 잘 응용하느냐, 그게 감독으로서 무르익는 과정인 것 같다. 그게 여유고. 여유가 없을 땐 나랑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유가 있으면 어느 게 더 좋다고 판단할 능력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런데 뭔가 있는 것처럼 꿍하니 있으면 배우와 스태프는 감독이 시키는 대로 한다. 저 사람이 다 생각이 있겠지 싶고, 말하기도 부담스럽고 그러니까. 나를 많이 내려놓고 빈틈을 많이 보여주되 판단할 때만 정확하게 하면 사람들이 좋은 조언과 충고를 해준다. 그게 결국 다 내가 얻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좀 더 허술한 티를 내면서 현장에 스며들려고 한다. 그게 나한테 맞는 방식이다. 철두철미하고 카리스마 있게 하는 거, 내 스타일이 아니다.(웃음)
이런 거 아닌가. 나 어제 놀았어 하고선 전교 1등 하는 사람.
나는 2등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1등은 안 섹시해. 뭔지 알지? 술 냄새 나는 2등이 좋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