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허전한 마음으로 12월을 맞이한 이들에게 권한다.
시선을 압도하는 미장센, 깊은 울림을 주는 서사로 당신의 연말을 보다 풍요롭게 채워줄 아트하우스 영화 3.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새해를 앞두고 ‘더 나은 나’가 되리라 다짐하는 이들이야 많겠지만, <서브스턴스>는 그 바람을 보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실현한 한 여성의 이야기다.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할리우드 스타였지만 50세가 된 지금은 에어로빅 TV 쇼의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그가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사용해 더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버전의 나, 클론 ‘수’(마가렛 퀄리)로 거듭난다. 서브스턴스의 한 가지 사용 규칙은 시간의 균형. 일주일간 번갈아 가며 본체와 클론의 몸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젊고 아름다운 수의 육체가 일주일의 법칙을 어기려 들면서 두 인물 사이의 피 튀기는 대결이 시작된다. 데뷔작 <리벤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선보이는 두 번째 장편으로, 사라져가는 젊음을 되찾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비틀린 욕망을 통해 쇼 비즈니스 세계에 만연해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에 신랄한 비판을 던진다.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 두 세대의 여성 배우가 온전히 이끌어가는 혈투와 코랄리 파르자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미장센을 기대해도 좋다. 12월 11일 개봉.
<알레고리, 잇츠 낫 미> (An Urban Allegory / It’s not me)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연출작과 출연작을 엮은 작품집 <알레고리, 잇츠 낫 미> 역시 12월 국내 극장가를 찾는다. <알레고리>는 <키메라>의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과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JR 감독이 공동 연출한 단편으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Allegory of the Cave)’를 모티브 삼아 대도시 파리를 탈출하려는 7살 ‘제이’의 여정을 동화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극 중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아이에게 귓속말을 건네는 인물로 등장한다. 한편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아네트>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잇츠 낫 미>는 감독 스스로 ‘내 삶에 관한 영화’라 칭하듯 40여 년에 걸친 필모그래피와 개인사를 한데 모은 자전적 영화다. 그 가운데 20세기의 역사적 순간을 기록한 아카이브 영상과 무성영화, 고전 할리우드 영화 등 그가 그러모은 예술적 이미지가 아름답게 교차하며 화면을 가득 메운다. 현 세대 거장에게 ‘영화’란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작품. 12월 18일 개봉.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이처럼 사소한 것들>, 119p
올해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자,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클레어 키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1985년 겨울, 가족과 함께 소박한 삶을 이어가던 아일랜드의 석탄 목재상 ‘빌 펄롱’(킬리언 머피)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내리는 어떤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석탄을 배달하러 간 수녀원에서 펄롱은 불의의 현장을 목격하지만, 가족의 안위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린 채 갈등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그가 떠올리는 것은 지금의 자신을 이루고 있는 ‘사소한 것들’. 누군가 건네준 사소한 친절, 개인의 작은 용기가 어떻게 커다란 파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떠올리며 펄롱이 내린 선택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감금과 강제 노동을 일삼은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소재 삼아, 거대한 불의를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상관 없다’는 말로 간편히 묵인해온 공동체의 위선에 초점을 맞춘다.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 시즌 3를 연출하며 킬리언 머피와 깊은 인연을 맺은 팀 밀란츠 감독이 연출했으며, 킬리언 머피와 그의 아내가 클레어 키건의 책을 들고 감독을 직접 찾아오면서 시작된 프로젝트라는 후문. 극 중 수녀원의 어두운 비밀을 지키는 수녀 ‘메리’를 연기한 배우 에밀리 왓슨이 도덕적으로 양가적인 입장에 놓인 인물을 심리를 섬세하고 깊이 있게 표현했다는 평과 함께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다. 12월 1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