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은 위험하니까. 전기장판 위에서 이불 덮고 OTT로 볼 수 있는, 따스한 일본 영화 세 편.

녹차의 맛

삶이 무료하다고 느껴지는 날엔 영화 <녹차의 맛>을 본다. 자아가 비대하다며 힘들어하는 여섯 살 소녀 ‘사치코’의 주변으로 거대한 사치코가 나타나고, 첫사랑의 감정에 들떠 있는 사춘기 소년 ‘하지메’의 이마를 뚫고 기차가 지나간다. 애니메이터 일을 다시 하고 싶어 부엌에서 그림을 그리는 엄마, 가족들에게 최면을 거는 최면술사 아빠, 스스로 마임을 하는 예술가라고 굳게 믿는 할아버지까지 등장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산간 지방, 그 잔잔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 불쑥 마법 같은 장면이 등장할 때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다가도 이내 그 귀여움에 흠뻑 빠지게 된다. 영화는 작고 사소한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일상의 틈을 다시 한번 조명하며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아낸다.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깨닫게 된다.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유유히 흐르는 우리네 일상이 그 자체로 찬란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녹차의 맛>은 지금 티빙에서 시청 가능하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어디서도 눈에 띄지 않고 어딜 가든 주목받지 못하는 삶. 거북이에게 밥 주는 것이 유일한 일과인 주인공 스즈메(우에노 주리)는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평범함’이라는 수식을 애써 지우고 싶어 한다. 그런 그에게 불현듯 ‘비밀 요원’이라는 수상한 직책과 함께 ‘평범하게 살기’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그렇게 영화는 스즈메가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나아간다. 우에노 주리와 아오이 유우의 귀여운 케미스트리, 톡톡 튀는 색감이 돋보이는 영상미만으로도 이 작품을 볼 이유는 충분한데, 어디로 튈 지 모를 B급 감성과 은은한 유머가 담긴 대사로 관객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기까지 한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고 말하는 제목처럼, 영화는 지루하다 생각했던 일상에 색다른 관점을 더해보라고 귀엽게 속삭인다. 나른한 주말 아침, 별다를 바 없는 오늘을 마주하며 틀어두고 싶은, 사랑스러운 영화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지금 티빙과 왓챠,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해피 아워

누군가와 함께일 수 있을까, 따위의 질문을 하염없이 입 안에 굴리게 되는 날. 깊게 스민 차가운 고독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타인의 온기를 느끼고 싶은 날에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해피 아워>를 튼다. 다섯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오래도록 이어지는 무수한 대화. 그 안의 사소하고도 교묘한 균열은 일상 속에서 간혹 잊게 되는,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와 같은 질문을 건져 올린다. <해피 아워>에 등장하는 네 명의 친구는 어느덧 서른 후반을 바라본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말할 수 없는 저마다의 고민을 품고 있다. 그러다 한 친구 ‘준’이 이혼 소송 중이라는 소식을 전하며 갑자기 사라진 것을 계기로, 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엉키고 부딪히고 또 서로에게 기대며 나아가는,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인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내 앞의 생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해피 아워>는 지금 왓챠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