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폴: 디렉터스 컷>의 긴 제작 여정에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최초 개봉 이후 18년만에 4K 리마스터링과 장면 복원을 거쳐 극장가로 다시 돌아온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이 지난 주 관객수 17만명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 영화가 흥행한 배경에는 젊은 여성 관객들이 있었고, 지난달 관객과의 대화(GV) 일정을 위해 생애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타셈 싱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새롭게 발견해준 한국 관객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걷지도 못했던 내 아이가 어느새 전속력으로 달리는 기분’이라며 뭉클한 소회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무성영화 시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촬영 중 추락 사고로 부상을 당해 입원한 스턴트맨 ‘로이’가 같은 병동에 머무는 호기심 많은 6살 소녀 ‘알렉산드리아’에게 다섯 무법자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병실 침대에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이 대사를 주고 받으며 판타지에 기반한 이야기를 지어 올릴 때, 화면이 전환되며 시선을 압도하는 장면들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볼 기회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더 폴: 디렉터스 컷>이 탄생하기까지 타셈 싱 감독이 지나온 긴 제작 여정과 그에 얽힌 뒷이야기를 모아봤습니다.

집념과 고집으로 지어 올린 판타지

인도 출신의 광고 제작자였던 감독은 영화 제작을 꿈꾸던 20대 초반, 우연히 저예산 불가리아 판타지 영화 <요호호>에 매료되어 언젠가 이를 리메이크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후 CF 감독으로 명성을 쌓고 몇 편의 상업영화를 연출한 뒤에야 자신의 숙원 사업이었던 <더 폴> 제작에 뛰어들 수 있었죠. 처음부터 그는 자신의 영화가 ‘오래도록 살아남을 작품’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이 때문에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4K 촬영을 고집했습니다. 여기서 나아가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아름다움을 담아내겠다는 집념으로 CG와 특수효과 사용을 철저히 배제하고, 세상에 실존하는 기이하고 경이로운 풍광들을 직접 찾아 떠났죠. 하지만 이례적인 장기 프로젝트에 투자자들이 하나 둘 감독의 곁을 떠났고, 타셈은 광고 제작자로 커리어를 쌓으며 모아둔 자금까지 털어 넣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그가 직접 발굴한 전 세계 28개국의 경이로운 풍경이 스크린 위에 펼쳐질 수 있었죠.

28개국을 넘나든 로케이션 촬영

영화에는 현실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기 힘들만큼 신비로운 풍경들이 등장합니다. 타셈 싱 감독에게 장소란 어떤 영화나 그림, 음악보다도 창작 활동에 영감을 불어넣는 주요한 원천이었습니다. 그는 매주 파일럿의 법정 근무 시간보다 긴 시간을 비행하며 사막과 정글, 고대 도시를 누볐고, 끝내 컴퓨터 그래픽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장엄한 풍경을 영화에 담게 됩니다.

특히 그는 각 촬영지마다 기존에 이곳을 거쳐간 이들이 발견하지 못한 독특한 조형미를 찾아내 색다른 이미지로 재구성했습니다. 극중 ‘찰스 다윈’이 영혼의 단짝인 원숭이 ‘월레스’를 떠나보내는 장면을 촬영한 곳은 인도 조드푸르에 자리한 계단식 우물 ‘찬드 바오리’로, 평소에는 물속에 잠겨 있어 잘 보이지 않는 우물 같은 공간이었기에 당시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현지인들의 의아함을 살 정도였죠. 거꾸로 된 피라미드 형태로 깊이가 30m에 달하며 3,500여 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이 우물은 총을 맞고 추락하는 다윈의 죽음을 한층 더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편 다섯 무법자 중 ‘인디언’의 아내가 오디어스에 의해 감금된 미로 같은 공간은 인도 자이푸르에 위치한 천문 관측소 ‘잔타르 만타르’입니다. 이곳의 계단형 구조물을 본 타셈 감독은 마치 미로 같다는 인상을 받았고, 공간 자체에서 영감을 얻어 오디어스의 저주에 갇힌 인디언의 아내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끝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을 구상했습니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공간이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은 순간이었죠.

리 페이스와 카틴카 언타루, 함께 만들어간 이야기

영화의 초입에서는 병실에 갇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로이가 모르핀을 얻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에게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알렉산드리아는 단순한 청자가 아니라 이야기 안에 자신을 이입시키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영화는 결국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로 발전합니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로이 역의 배우 ‘리 페이스’와 알렉산드리아를 연기한 배우 ‘카틴카 언타루’가 현장에서 호흡을 주고받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감독은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카틴카에게 장면의 대략적인 개요만을 설명하고, 리 페이스가 건네는 대사에 카틴카가 즉흥적으로 보이는 반응들을 덜어내지 않고 그대로 담아내는 방식으로 촬영을 이어갔습니다. 그 덕분에 두 배우가 주고받은 깊은 감정적 교류가 영화에 고스란히 담길 수 있었죠. 다섯 무법자가 끝내 모두 죽고 마는 결말이 합리적이라 여기는 로이에게 알렉산드리아가 “왜 모두를 죽여야만 해요?”, “그것은 내 이야기이기도 해요.”라고 응수하는 대목은 두 사람이 함께 짓는 이야기에, 또 로이의 삶에 희망과 구원의 숨을 불어넣는 알렉산드리아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렇게 삶의 의미를 상실한 채 고통 속에 살던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이야기를 완성해가며 점차 자신의 삶 역시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워갑니다.

<더 폴: 디렉터스 컷>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타셈 싱 감독이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인생의 한 시절 전체를 바쳐 무언가를 만드는 일의 숭고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작품 구상에만 28년, 장소 섭외에 17년, 주인공 아역 배우를 찾는 데 9년. 집념과 확신 없이는 지나오기 힘든 세월이었기에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 새로운 관객에게 다시 호명될 수 있었던 것이겠죠. 허구가 실재를 구원할 수 있음을,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힘을 증명해 보인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의 찬란한 여정을 직접 스크린에서 만나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