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영화에 대한,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헌사의 시간. 
패션 매거진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단독 영화제를 개최해온 마리끌레르는 
올해도 어김없이 영화와 극장에 대한 애정을 촘촘히 엮어 열두 번째 영화제를 연다. 

제12회 마리끌레르 영화제는 세심하게 엄선한 총 17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개막작인 마리게리타 비카리오 감독의 <글로리아!>를 시작으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미개봉작으로 꾸린 ‘마리끌레르 초이스’, 그리고 자신만의 존재감으로 빛을 발하는 배우들의 대표작을 다시 볼 수 있는 ‘마리끌레르 액터스 앤 비욘드’를 통해 관객을 만나는 귀한 자리를 마련했다. 

국내 영화계와 극장은 올해 또 한 번 큰 부침을 겪는 중이다. 그래서 여전히 여기, 영화를 향한 사랑이 있음을 마주하는 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관객과 감독, 배우가 한자리에서 영화를 매개로 마음을 주고받는 시간이 지속되기를 응원하며 마리끌레르 영화제는 올해도 축제의 출발선에 섰다.

제12회 마리끌레르 영화제는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CGV 용산아이파크몰과 CGV 씨네드쉐프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다. 올해 영화제에는 포스터의 주인공 탕웨이 배우를 비롯해 이혜영, 김우빈, 임지연, 조현철, 백현진, 노상현, 남윤수 배우, 그리고 문상훈과 실리카겔 김한주 등이 영화제 현장에 함께할 예정이다. 상영작 관련 정보는 마리끌레르 웹사이트(www.marieclairekorea.com/mcff2025)에서 확인할 수 있다.

Marie Claire Choice

나미비아의 사막

Desert of Namibia

일본 | 2023 | 137분 | 컬러 | 드라마

감독 야마나카 요코

주연 카와이 유미, 카네코 다이치, 칸이치로

스물한 살의 카나(카와이 유미)는 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낸다. 그는 나미비아 사막의 실시간 영상을 바라보며 시간을 축낼 뿐, 진지한 고민을 할 의욕조차 없어 보인다. 그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것은 연애. 이미 집세도 내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남자 친구 혼다(칸이치로)와 함께 살고 있지만, 새로운 자극을 주는 크리에이터 하야시(카네코 다이치)를 만나기로 한다. 책임감 없이 자유분방하고 독특한 이 캐릭터는 야마나카 요코 감독의 발상에서 탄생했으며, 배우가 되기도 전에 감독에게 편지를 보낸 <썸머 필름을 타고!> <룩백>의 배우 카와이 유미가 완성했다. 21세기 일본 청춘들의 무력감과 불안을 대담하게 포착해낸 감독의 재능과 현재 일본 청춘의 자화상을 섬세한 감정 표현을 바탕으로 독보적 존재감과 매력을 선보이며 표현해낸 배우가 만나면서 일본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제77회 칸영화제 감독 주간 초청작. 

풍류일대

Caught by the Tides

프랑스, 중국 | 2024 | 111분 | 컬러 | 드라마, 로맨스

감독 지아장커

주연 자오타오, 주유

23년간 틈틈이 담아온 푸티지와 팬데믹 시기에 촬영한 영상을 엮어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한 편의 극영화를 완성했다. 중국에서 PC와 휴대폰이 막 보급되던 2001년, 북동부 다퉁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모델, 쇼걸, 가수로 생계를 이어가던 차오차오(자오타오)와 그의 매니저 빈(주유)의 사랑과 재회를 그리는 멜로드라마다. 두 사람은 각자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면서 이별하고, 어긋난 시기에 서로를 찾아 헤맨다. 중년이 되어 재회하지만, 희망과 실망이 교차하는 표정에 인생과 회한이 그늘처럼 드리운다. 영화는 2000년대 초부터 AI 로봇이 마트의 고객을 맞이하는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통해 중국 사회에 스며든 산업화와 자본주의를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다. 그들을 먹여 살리던 풍류의 삶도 이제 소셜미디어에 능숙한 젊은 세대의 몫이 되었다. 낭만은 과거의 저편으로 보내지만,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묶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주인공에게서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리얼리즘의 거장 지아장커가 전하는 삶에 대한 예찬이다.

두 번째 계절

Out of Season

프랑스 | 2023 | 116분 | 컬러 | 멜로, 로맨스

감독 스테판 브리제

주연 기욤 카네, 알바 로르와커

프랑스의 국민 배우 기욤 카네와 알바 로르와커 주연의 재회 로맨스. 유명한 영화배우 마티유(기욤 카네)는 첫 연극 공연 직전 갑자기 출연을 취소하고 잠적한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호화로 운 리조트에 홀로 머물던 그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옛 연인 알리스(알바 로르와커)를 다시 만난 다. 이미 결혼해 자녀를 둔 두 남녀가 겪는 중년의 위기를 조금 더 개인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게 한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남자에게는 따뜻한 가정이 없고, 따뜻한 가정을 꾸린 여자는 내세울 커리어가 없어 공허하다. 영화는 이들에게 위로 혹은 해결책을 전하듯,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는 백발 노인의 인터뷰 영상을 선물한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영원히 청춘이고, 아쉬운 한때를 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다. 영화의 처음과 끝, 그리고 사이사이 등장하는 익스트림 롱숏은 내면의 갈등을 조금이나마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사랑 때문에 있는 게 아니야>(2005), <마드무아젤 샹봉>(2009), <아버지의 초상>(2015), <여자의 일생>(2016)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문제를 섬세하게 탐구해온 스테판 브리제 감독의 신작으로,  제8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Marie Claire Actors & Beyond

대도시의 사랑법

Love in the Big City

한국 | 2024 | 118분 | 컬러 | 드라마

감독 이언희

주연 김고은, 노상현

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중 <재희>를 영상으로 옮긴 영화. 이언희 감독이 먼저 제안해 기획, 각색, 연출까지 참여하며 5년간 공들인 작품이다. 현실적 장벽에 부딪히는 청춘의 관계와 정체성을 왁자지껄한 드라마 장르에 담았다. ‘오늘만 사는 구재희’는 <엽기적인 그녀> 속 그녀의 계보를 잇는 이 시대 청춘의 얼굴이다. 재희(김고은)는 유흥을 즐기며 여성으로서도 매력적이고 친구로서도 의리 있다. 자유분방한 인물로 사회의 기대에 딱히 부응할 생각이 없다. 그 옆에는 같은 대학에 다니는 게이 친구 흥수(노상현)가 있다. 동고동락하는 두 사람은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연애, 취업, 결혼 앞에서 자주 상처받지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단짝 친구가 된다. 흔한 통과의례조차 쉽지 않은 이들의 좌충우돌은 진심으로 아프지만 서로가 있어서 따뜻한 웃음으로 쉽게 승화된다. 자기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될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처음 맞이하는 사회적, 경제적 고단함도 익숙한 청춘 드라마의 문법으로 대중성을 끌어낸다. 배우 김고은은 단연 이 영화의 심장이다. 불안과 자유, 쓸쓸함과 내면의 성장을 두루 표현해낸 그에게서 빛이 날 정도다. 노상현은 첫 주연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하고 안정적인 감정선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남겼다.

만추

Late Autumn

한국 | 2010 | 113분 | 컬러 | 멜로, 로맨스

감독 김태용

주연 탕웨이, 현빈

14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애나(탕웨이)와 훈(현빈)이 남긴 여운은 여전히 무수한 관객을 붙잡고 있다. 수감 생활 중 어머니의 죽음으로 72시간에 불과한 자유를 허락받은 애나, 채무 문제로 누군가에 게 쫓기고 있는 훈. 위태로운 두 사람이 만나 안개가 자욱한 낯선 도시를 서성이는 시간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고, 끝내 깊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의심과 호기심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눈이 이별 앞에서 애잔하고 서글픈 눈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이 영화는 이제 그리움, 쓸쓸함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깊고 단단한 목소리와 눈으로 애나를 표현한 탕웨이의 존재감은 <만추>가 여전히 로맨스영화를 떠올릴 때 빠뜨릴 수 없는 작품으로 꼽히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가쁜 숨을 내쉬며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첫 장면부터 희미한 미소를 남긴 마지막 장면까지, 가히 탕웨이의 눈과 몸짓, 목소리로 완성한 영화라 할 수 있다.

9월이 지나면

When September Ends

한국 | 2013 | 23분 | 컬러 | 멜로, 드라마

감독 고형동

주연 조현철, 임지연

배우 조현철과 임지연이 말간 얼굴로 청춘의 한 계절을 그려내는 고형동 감독의 단편영화. 건축설계 공모전을 앞둔 어느 날, 선영(윤희진)은 도면을 잃어버리고 늘 조용히 혼자 다니던 후배 지연(임지연)을 범인으로 의심한다. 승조(조현철)는 오해받은 지연에게 조심스레 다가가고, 지연은 승조의 집에서 그와 함께 공모전을 준비하며 조금씩 마음을 연다. 지연은 승조의 취향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승조는 <러브레터> 포스터 앞에 선 채 주인공과 포개진 지연의 얼굴을 본 순간, 마음을 빼앗긴다. 순간의 감정과 결심이 조각조각 모여 첫사랑이 되는 찰나를 장면으로 옮긴다면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남의 창작물을 탐내는 마음은 성숙하지 않지만 솔직한 고백과 반성은 분명한 청춘의 표상이며, 영화는 그 성장의 징후도 섬세하게 포착한다. 곳곳에 <러브레터>, 안도 다다오, 록 밴드 그린 데이의 연주곡 등 서정적인 문화 아이콘을 배치해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청춘을 담백하게 그려냈다. 

너와 나

The Dream Songs

한국 | 2023 | 118분 | 컬러 | 드라마

감독 조현철

주연 박혜수, 김시은

제주도 수학여행을 하루 앞두고, 세미(박혜수)는 친구 하은(김시은)이 잔디밭에 엎드려 죽어 있는 꿈을 꾼다. 놀란 마음에 병원을 찾은 세미는 사고로 다리를 다친 하은과 함께 하루를 보낸다. 버스를 타고 동네를 걷고, 까르르 웃고, 투닥거리다가, 세미는 잠시 행방이 묘연한 하은을 찾아다닌다. 같이 놀자고, 같이 있고 싶다며 붙어 다니려는 소녀들 곁에는 상처를 치료해주는 의사나 주인 잃은 반려견도 함께 있다. 이 모든 풍경이 뽀얗고 눈부신 화면 안에서 짧고도 영원할 것만 같은 몽환적 분위기를 품는다. 비극을 명확하게 언어화하지 않으나 죽음과 그리움, 이별과 배웅의 메타포가 가득하다. 즐거운 하루 끝에 작별 인사를 하는 세미 뒤로 흘러가는 근조 화환을 든 사람들, 누군가의 납골당은 조심스럽게 표현한 애도의 마음일 것이다. 세미 식구들의 단란한 식사 장면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가 돌아가고 싶어한 따뜻한 일상이자 비극을 재연하지 않으며 떠난 사람을 기리는 아름다운 애도다. 조현철 감독이 배우로서 보여주던 투명하고 또렷한 눈빛과 꼭 닮은 작품이다. 제45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외계+인 1부

Alienoid

한국 | 2022 | 142분 | 컬러 | 액션, 판타지, SF

감독 최동훈

주연 김우빈, 류준열, 김태리

과감한 장르의 융합과 독창적 스토리텔링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 <외계+인>은 개봉 당시 다소 아쉬운 평가와 스코어를 기록했지만, 대중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가장 잘 잡아내는 최동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향후 재평가받는 영화로 남을 것이다. <외계+인>은 현대와 고려 시대를 넘나드는 시간 여행을 통해 외계인, 사이보그, 도사 등 이질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독특하고 신선한 영화적 세계를 펼쳐 보였고, SF영화가 선사할 수 있는 스펙터클과 액션에 코미디까지 담아낸 역작이다. 특히 냉철하고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섬세한 연기로 표현한 사이보그 가드 역의 배우 김우빈의 연기도 주목받았다. 긴 공백을 딛고 이 영화를 통해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김우빈에게 <외계+인>은 하나의 도전이고, 배우로서 가능성과 깊이를 더할 기회였을 터. 말 그대로 배우들의 향연이던 <외계+인> 속에서도 존재감을 또렷이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