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마리끌레르 영화제에서 자신의 영화 세계를 펼칠 2인의 감독이
나의 영화 안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의 찬란했던 우리는

<너와 나의 5분> 감독 엄하늘

21세기의 시작점인 2001년의 대구. 영천에서 전학 온 ‘경환’(심현서)의 유일한 취미이자 친구는 몰래 다운로드한 일본 음악이다. 그런 그에게 비슷한 취향을 가진 반장 ‘재민’(현우석)이 불쑥 다가온다. 한쪽씩 나눠 낀 이어폰 사이로 둘은 취향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설레는 마음을 몰래 주고받는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진 못한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안에 고이 숨겨둘 뿐.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2001년을 배경으로 설렘과 애틋함을 섬세하게 쌓아 올린 엄하늘 감독의 진가가 빛을 발하는 영화다. 그때의 나를 회상하며 영화를 완성한 감독과 돌이켜봤을 때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는 21세기의 시작점인 2001년의 대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 시점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그 점이 가장 궁금했다. 왜 2001년의 대구를 배경으로 쓰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른 채로 써 내려갔는데, 완성 시점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2014년 대구 본가에서 시나리오를 완성했는데, 그제야 ‘내가 대구에서 보낸 학창 시절을 꽤 그리워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그리워하는 한 시절, 어떤 곳에 대한 이야기다.

직접 경험한 시공간을 그린 영화라 그런지 학교, 지하상가, 영화관 등 배경부터 당시 학생들의 말투나 태도까지 세밀하게 구현된 부분이 눈에 띈다.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은 무엇이었나?

가장 공을 들인 건 학교 장면이다. 2001년의 느낌이 나도록 미술팀과 작은 부분 하나까지 논의해가며 공간을 완성했다. 학생들 캐스팅에도 공을 들였다. 전부 오디션을 보고 짧게라도 사투리 대사가 가능한 배우들로 캐스팅해 당시에 썼을 법한 어투를 연습하는 시간을 길게 가졌다.

<너와 나의 5분>은 당시 정식 수입이 금지되었던 일본 음악을 몰래 듣던 두 남학생의 이야기로 출발했다고 들었다. 그 출발점에서 이야기를 확장하며 중점을 둔 부분이 있 다면?

말 그대로 ‘몰래 듣던 일본 음악’에서 전체 스토리가 파생되었다. 그때는 일본 음악을 듣는 게 알려지면 특이하다는 소리를 듣거나 간혹 배척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몰래 들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자신의 취미를 숨기는 아이들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LGBT 이야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완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이들 이 듣는 밴드 글로브(Globe)의 음악이었다. 사실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아 비슷한 풍의 곡을 만들어보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 곡을 쓸 수 없었다면 아마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왜 글로브의 음악, 그중에서도 ‘Departures’와 ‘Faces Places’였나?

이유는 단순하다. 시나리오 집필을 막 시작하던 2012년에 내가 끊임없이 들은 곡이다. 자연스레 두 곡의 가사에 영향을 받은 장면들을 쓰게 되었고, 어느새 글로브의 음악과 내 영화가 상호 보완적 관계가 된 것 같았다. 그러니 두 곡이 꼭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경환과 재민은 내내 자신이 좋아하는 곡이 더 좋다며 티격태격한다. 문득 감독은 어떤 곡을 더 좋아할지 궁금했다.

나는 ‘Departures’를 더 좋아한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래서 영화에 ‘Departures’를 더 많이 썼나 싶기도 하다.(웃음)

경환과 재민을 맡은 두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다. 설레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색하지 못 하고 은근하게 드러내는 부분부터 자연스러운 대구 사투리까지. 디렉팅을 하는 과정에서 배우들에게 강조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감정 표현에서는 레퍼런스가 되는 영상이나 이미지를 많이 보여줬고, 장면마다 되도록 상세하게 나의 구상과 느낌을 전했다. 그렇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배우들의 표현 방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나와 해석이 크게 다르지 않으면 배우가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지켜보자는 쪽이었다. 사실 디렉팅 시간은 사투리를 알려주는 데 거의 다 썼다. 사투리라는 게 써본 적 없는 사람에겐 외국어와 비슷해서 두 배우가 꽤 오랜 시간 익혔다. 그것 때문에 리딩과 리허설 시간을 굉장히 자주 가졌다.

경환과 재민에겐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듣는 5분의 시간이 더없이 소중해 보인다. 그래서 제목이 <너와 나의 5분>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맞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내내 같이 버스를 타고 가며 음악을 듣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5분이 둘에게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 생각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재민은 편안히 친구의 어깨에 기대 자고, 경환은 그런 재민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창밖 풍경을 감상하는 시간. 그 시간을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이지 않나 싶다.

모든 장면이 애틋하겠지만, 유난히 소중하게 품고 있는 장면이 있을 것 같다.

두 가지가 있는데, 모두 운동장에서 대화하는 장면이다. 하나는 재민이 초등학생 시절을 얘기하면서 비밀을 털어놓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눈이 내리는 날 경환이 재민에게 자신의 마음을 에둘러 고백하는 장면이다. 전자는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모습이 담긴 신이라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이 부분이 잘 보였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후자는 눈이 계속 내려야 하는데 과연 이걸 원하는 만큼 구현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는데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마음에 남는다.

후반부에 재민이 ‘Faces Places’의 가사를 빌려 내 인생 최고의 시절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다면 인생 최고의 시절은 언제라 생각하나?

“난 나중에 올해가 내 베스트 오브 마이 라이프였으면 좋겠다”라는 재민의 말처럼 나도 올해, 2025년이 최고의 시절로 기억되면 좋을 것 같다. 이 영화를 완성해 소개하 는 이 시점이 지금 당장보다는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더 크게 내 마음에 자리 잡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와 관련된 활동을 더 열심히 해보려 한다. 지금 이 순간이 최고였다 기억하기 위해서.

마리끌레르 영화제에서 <너와 나의 5분>을 보게 될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영화는 2001년 열일곱 경환과 재민의 이야기지만, 지금 같은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마음을 쉽사리 꺼내놓지 못하 는 경환과 재민 같은 친구들을 한 번쯤 떠올려주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너와 나의 5분>을 구상할 당시 왠지 결국 영화로 완성하지 못할 것 같아서 두 학생의 이야기만 살짝 가져와 만든 단편영화가 있다. <피터팬의 꿈>이라는 영화인데, 여기에 나온 두 배우가 <너와 나의 5분>에 카메오로 잠시 등장한다. 혹시나 발견하게 된다 면 영화를 보는 재미가 조금은 더해질 것 같아서 힌트처럼 남겨둔다.

이후의 영화에도 관계 안에서 피어나는 미세한 감정을 다루게 될까? 앞으로의 영화에 어떤 것들을 담아내고 싶은가?

찍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아직은 수정 단계라서 구체적으로 언급할 순 없지만, <너와 나의 5분>처럼 긴 시간을 버텨내서라도 완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영화와 같은 멜로물은 아니지만, 역시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이야기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