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 새 흐름을 만들 이들은 누구일까. 영화, 미술, 음악, 문학, 미식 신을 면밀하게 살펴온 16인의 전문가가 찾아낸,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젊은 이름들.

FILM DIRECTOR 손구용

픽스 숏(고정된 장면)으로 바라보는 풍경에서 관객이 발견할 수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움직임’이다. 나뭇가지는 바람에 연신 흔들리고, 태양은 그림자를 열심히 옮기며, 물은 한데 고이는 법이 없다. 현미경과 같은 세밀한 시선으로 움직임을 포착하지만, 바라보는 것만이 작품의 지향점은 분명 아니다. 다큐멘터리영화 <밤 산책>과 <공원에서>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손구용 감독은 이미지와 활자를 엮는다. <밤 산책>에서는 밤 풍경과 한시와 푸른색의 드로잉을, <공원에서>는 공원 풍경과 오규원 시인의 ‘뜰의 호흡’ 속 문장을. 나열된 활자 또한 하나의 이미지라 가정한다면, <밤 산책>은 이중노출로, <공원에서>는 몽타주로 활자를 풍경 이미지와 섞는다. 숏과 숏 사이, 혹은 숏 그 자체에 문학이 침투해 있는데, 이것이 손구용의 영화에 필연적 운율을 형성한다. 그가 생각하는 영화란 무엇인지, 작품의 고요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commented by 이윤영(시네마토그래프 대표)

FILM DIRECTOR 오정민

지난해 한국 독립영화계 최대의 아웃풋이라 할 수 있는 오정민 감독의 데뷔작 <장손>은 가족사에 묻어둔 비밀과 삼켜낸 거짓말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촘촘히 엮은 역작이다. 신선함이라는 감각에 더해진 극적 재미의 내공, 폭넓은 세대의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드라마틱한 연기 앙상블까지 영화의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매만진 감독의 손길이 유난히 미더운 작품이기도 하다.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에 기대하는 것들을 훌쩍 넘어서는, 그의 시야를 가늠케 하는 영화 속 장면들에는 이미 먼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창작자의 발이 어른거렸다. 그야말로 보법이 다른 신인이 등장했다.

commented by 진명현(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FILM DIRECTOR 남동협

영화를 보며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난 경험은 대체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코미디를 향한 갈망이 흔적도 보이지 않을 만큼 쪼그라졌을 무렵 남동협 감독의 <핸섬가이즈>가 나타났다. 그러곤 그야말로 ‘무섭게’ 웃겨줬다. 슬래셔, 슬랩스틱 코미디, 오컬트까지 온갖 장르를 믹스테이프처럼 뒤섞은 채 등장한 이 영화는 텐트 폴 작품들마저 휘청거린 지난여름 극장가에서 알짜 흥행을 거뒀다. 비단 원작(<터커 & 데일 vs 데빌>) 덕만이 아니다. 정확한 코미디 타율을 아는 영리한 각본, 예측 불허와 점입가경 사이에서 배우들이 날아다닐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연출, 황당한 아이디어마저 끝까지 밀어붙이는 패기가 만들어낸 신선한 성과다. 무게감 넘치는 데뷔작을 향한 집착 대신 코미디로 승부수를 띄운 신인 감독의 선택을 응원한다. 위대한 감독도 좋지만, 웃겨주는 감독의 존재도 귀하다.

commented by 이은선(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