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소년은 끊임없이 세상과 부딪치고, 넘어지고, 헤매며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그 여정에서 마주한 우정과 사랑, 성장의 순간을 담아낸 일곱 편의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ALL ABOUT LILY CHOU-CHOU
감독 이와이 슌지
출연 이치하라 하야토, 오시나리 슈고, 아오이 유우, 이토 아유미



(Victor Japan, WOWOW, TUBE ENTERTAINMENT, OORONG-SHA, ROCKWELL EYES)
중학생 ‘유이치’는 현실에서 도망쳐 은신할 곳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절친한 친구였던 ‘슈스케’가 하루아침에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변해버리고, 집에서는 새아버지와 그가 데려온 동생 때문에 질식할 것만 같은 나날을 보낸다. 이런 유이치를 위로하는 건 뮤지션 ‘릴리 슈슈’의 음악과 그가 만들어낸 가상 세계 ‘에테르’뿐.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릴리 슈슈의 팬 사이트에서 익명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현실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난다. 하지만 자신의 유일한 도피처인 릴리 슈슈의 에테르조차 끝내 그를 구원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유이치는 더 이상 환상에 기대지 않는다. 그 대신 묵묵히 현실을 견디며 살아남기로 선택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카메라는 드뷔시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텅 빈 음악실을 서성이는 유이치를 비춘다. 창 너머로 희미한 빛이 들어와 그를 감싼다. 영화는 소년 앞에 놓인 미래에 대해 명료한 해답을 내어주지 않은 채 막을 내리지만, 우리는 안다. 잔혹한 현실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이 소년은 어떻게든 삶을 견뎌낼 방법을 찾고야 말 것이란 사실을. 그것이 설령 손에 잡히지 않는 희미한 빛을 따라 걷는 일일지라도.
싱 스트리트 SING STREET
감독 존 카니
출연 퍼디아 월시필로, 루시 보인턴

꿈도 사랑도,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는 10대 소년들에게 음악은 어떻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싱 스트리트>는 유쾌한 방식으로 이 질문에 답하는 영화다. 1980년대 더블린, 부모의 불화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열다섯 살 소년 ‘코너’. 그는 전학 간 학교에서 한눈에 반한 소녀 ‘라피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싱 스트리트’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여섯 소년은 듀란듀란과 조이 디비전, 아하 등 영국 뉴웨이브 밴드의 음반을 탐구하며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코너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발견한다. 소년들이 만든 음악과 뮤직비디오는 어딘가 미숙하고 엉성하지만, 그 속에는 자유를 향한 순수한 열망이 깃들어 있다. 이 영화에는 많은 처음의 순간이 등장한다. 음악이라는 광활한 세계에 처음으로 접속하는 이의 떨림, 첫사랑을 위해 만든 노래, 꿈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 그 모든 ‘처음’ 앞에서 코너는 노래한다. “훔친 듯이 달려, 이건 네 인생이야, 넌 뭐든지 될 수 있어.”
미드 90 MID90S
감독 조나 힐
출연 서니 설직, 루커스 헤지스, 캐서린 워터스턴, 나켈 스미스, 올런 프레나트

열세 살 소년 ‘스티비’에게 스케이트보드는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형으로부터, 이를 방관하는 어머니로부터, 외로운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희망. 스티비는 우연히 거리에서 보드를 타는 소년들을 만나고, 그들의 자유분방한 기세에 매료돼 무작정 집에 있는 낡은 보드를 들고 그들을 따라 나선다. 하지만 동경하는 세계에 섞여 들기 위해 열세 살 남자아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듣는 일뿐이다. 실없는 농담과 욕설이 난무하는 형들의 대화를 따라가느라 한껏 분주한 스티비의 호수같이 맑고 깊은 눈. 그 눈에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자유를 향한 갈증이 서려 있다. 다섯 소년이 보드를 타고 끈적한 아스팔트 위를 가로지를 때, 저마다 처해 있는 눅눅한 현실의 조각들이 잠시나마 삭제된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일의 반복. 보드 위에 올라탄 스티비는 있는 힘껏 부딪치고 깨지면서도 그저 해맑게 웃는다.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병실에 누워 있는 스티비에게 형 ‘레이’가 건네는 말이 이 소년의 성장기를 더욱 아프고 아름답게 만든다. “너처럼 세게 부딪치는 놈은 난생처음 봐. 그럴 필요 없어. 알지?”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감독 스티븐 달드리
출연 제이미 벨, 줄리 월터스, 게리 루이스, 제이미 드레이븐

영국 북부 탄광촌에서 자란 열한 살 소년 ‘빌리’에게 주어진 세계는 단순하다. 아버지와 형이 일하는 탄광, 그리고 매주 다니는 권투 체육관.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들은 발레 수업에서 소년은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발레 선생님 ‘윌킨슨’의 도움으로 빌리는 아버지 몰래 춤을 배우기 시작하지만, ‘발레는 여자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조롱 어린 시선과 아들의 열정을 사치로 여기는 아버지의 반대 앞에서 갈등한다. 하지만 빌리는 끝내 춤을 포기하지 않는다. 생생한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빌리의 몸짓은 억압과 규율로 가득한 환경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내려는 순수한 저항이다. 영화의 마지막, 꿈에 그리던 무대 위에서 공중으로 도약하는 빌리의 모습은 낡은 새장을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새를 떠올리게 한다.
애니멀 킹덤 THE ANIMAL KINGDOM
감독 토마스 카일리
출연 폴 키르셰, 로맹 뒤리스


원인 모를 변이로 인간이 동물로 변해가는 역병이 프랑스 전역을 뒤덮고, 수인(獸人)은 두려움과 배척의 대상이 된다. 이런 혼란 속에서 소년 ‘에밀’ 역시 변이의 징조를 보인다. 에밀은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부정하며 숨기려 하지만, 숲속에서 수인 ‘픽스’를 만나고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문 채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두려움 속에서도 점차 변화를 분명하게 마주하게 된 에밀은 마침내 자신 안에 내재하는 갈망과 힘에 눈뜬다. 어쩌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일지 모른다. 영화는 변화의 기로에 선 소년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안한다. 차이와 다름을 배척할 때의 안정감을 좇을 것인지, 혹은 미지의 세계에 마음을 열고 새로운 자신을 받아들일 것인지. 에밀은 기꺼이 미지를 탐험하며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는 쪽을 택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I WISH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마에다 코키, 마에다 오시로, 오다기리 조, 오츠카 네네


여기, 간절한 마음으로 화산 폭발을 바라는 소년이 있다. 일본 가고시마에서 엄마와 함께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코이치’. 그의 소원은 집 근처에 있는 활화산이 폭발해 후쿠오카에 떨어져 살고 있는 아빠와 동생 ‘류’와 예전처럼 다시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러던 중, 신칸센 고속열차 두 대가 서로 교차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코이치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기적을 바라고 떠난 여행길에서, 코이치는 자신이 바라는 기적과 현실이 충돌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생은 부모님의 재결합에 관심이 없고, 부모님 역시 이별 후에 각자의 삶을 찾아가는 중이다. 목적지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행복한 어느 가족의 모습은 그를 더욱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마침내 신칸센이 교차하는 순간, 아이들은 목청껏 각자의 소원을 외치지만 정작 코이치는 입을 꾹 다문다. 그 이유를 묻는 동생에게 코이치는 이렇게 말한다.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했다”고. 여기서 ‘세계’란 수많은 타자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코이치는 이제 기적을 바라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처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 한 소년의 성장이야말로 ‘기적’ 같은 일 아닐까.
여덟 개의 산 THE EIGHT MOUNTAINS
감독 샤를로트 반더히르미, 펠릭스 반 그뢰닝엔
출연 루카 마리넬리, 알레산드로 보르기


영화는 도시에서 온 소년 ‘피에트로’와 산에서 나고 자란 ‘브루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40년에 걸쳐 이어지는 깊은 우정을 그린다. 여름마다 이탈리아 알프스산맥에 자리한 작은 마을 그라나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던 두 소년은 성장하면서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피에트로는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여러 도시를 끊임없이 떠돌고, 브루노는 산을 지키며 그곳에 깊게 뿌리내린다.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고인이 된 피에트로의 아버지가 그라나에 남긴 땅 위에 오두막을 함께 지어 올린다. 소년 시절을 지나 어엿한 성인이 된 두 사람은 각자가 속할 곳을 찾아 헤매던 지난날 잠시 잊고 있던 친밀감과 그 시절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긴다. 하지만 서로의 깊은 우정을 다시 확인한 이후에도 결국 둘은 서로 다른 선택을 내린다. 브루노는 산을 지키고, 피에트로는 다시 도시로 향한다. 피에트로는 산에서 생을 마감한 브루노를 떠나보내며 깨닫는다. “세상의 중심에 있는 산에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두 사람이 함께하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영화는 소년 시절 쌓은 우정이 이후의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우정을 기둥 삼아 각자의 방식으로 또 다른 산을 찾아 떠돌아야 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