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회 칸영화제 현장에서 <페니키안 스킴>의 ‘리즐’, 배우 미아 트리플턴을 만났습니다.

수차례의 비행기 추락 사고와 암살 위협에서 살아남은 거물 사업가 ‘자자’(베네시오 델 토로)가 거대한 프로젝트에 돌입하며 시작되는 이야기. 오늘(28일) 국내 개봉하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 영화, <페니키안 스킴>에서 자자의 유산을 상속받기로 한 외동딸이자 종신서원을 앞둔 수녀 ‘리즐’ 역을 맡은 배우 미아 트리플턴을 제78회 칸영화제 현장에서 한국 매체 단독으로 만났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18일,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진행된 프리미어 상영을 앞둔 그와 나눈 대화를 공개합니다.


몇 시간 후, 제78회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을 예정이에요. 이어서 올해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페니키안 스킴>이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죠. 작품 공개를 앞둔 기분이 어떤가요?
<페니키안 스킴>을 최초로 공개하는 자리가 칸영화제라는 사실이 꿈만 같아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에요!(웃음) 두 달 전쯤 <페니키안 스킴>의 완성본을 처음 봤을 땐 혼자였는데, 오늘 저녁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다시 마주하면 또 다른 감정이 들 것 같아요. 배우로서 캐릭터를 몸과 마음으로 표현해내는 것과 그 장면을 관객의 입장에서 감상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함께 만든 사람들과 수많은 관객이 한데 모인 공간에서 작품이 상영되는 순간, 그 분위기를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 되어줄 거예요.
<페니키안 스킴> 시나리오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오디션이 진행되던 중에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아직 스크린 테스트를 하지 않은 상태였고, ‘리즐’이란 역할을 제안받기 위해 마지막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였죠. 철저히 보안된 링크를 통해 몇 시간 동안만 시나리오를 살펴볼 수 있었어요. 읽는 내내 놀랍더라고요. 시나리오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림처럼 펼쳐졌거든요. 이후 웨스 감독님이 이번 영화를 간단한 애니메이션 형태로 만들어 보내주셨는데, ‘내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상상했던 장면 그대로잖아!’ 싶었어요. 그 정도로 <페니키안 스킴>의 시나리오는 세밀한 묘사가 돋보였고,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죠. 실제로 완성된 영화를 보니, 여러 신들이 구조적으로 잘 배치되면서 결과적으로 감독님의 계획이 그대로 실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 캐릭터의 복잡한 내면을 글로 풀어내고, 스크린으로 옮기는 능력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대본을 읽고 현장으로 향할 수 있었죠.
<페니키안 스킴>을 계기로 웨스 앤더슨의 영화적 세계에 직접 들어가보니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웨스 감독님의 영화들을 알고 있었고 본 적도 있지만, 그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면 어떨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페니키안 스킴> 촬영을 위해 독일로 향했을 때 멋진 경험을 했어요. 감독님이 늘 촬영장에서 지켜오신 방식을 따라, 이번에도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런치 클럽’에 참여하고 디너도 즐기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냈거든요. 안전하고, 편안하고, 행복한 기운이 감도는 그 공동체가 ‘일터의 가족’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배우와 스태프 모두 격 없이 어울리는 시간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하나로 똘똘 뭉쳐 있는지를 실감했어요.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죠. 지금 돌이켜봐도 그리운 나날들이에요.(웃음)


그 기간을 거쳐 이번 작품에 함께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요?
독일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감독님과 겪었던 일화가 떠오르네요. 감독님의 요청으로, 소품팀과 협업해 리즐이 들고 다니는 서류를 직접 만들었어요. 감독님이 제 손으로 리즐의 서류에 적힌 글씨를 쓰는 걸 중요하게 여기신 덕분에, 작중 소품이 리즐을 연기하는 저에게도 개인적인 물건처럼 느껴졌죠.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 초반의 어느 날, 숙소 발코니에 앉아 리즐처럼 파이프를 피우기 위해 연습하던 때도 생각나요. 맞은 편 발코니에서 누군가 저에게 “안녕! 지금 연습 중이야? 파이프에서 연기가 좀 더 많이 나와야 해!”라면서 큰 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거예요. 고개를 들어보니, 웨스 감독님이 저를 보면서 손을 흔들고 있더라고요!(웃음) 발코니 너머에서 저를 반가워하시면서 ‘연출’을 해주시던 순간이 웃기면서도 사랑스럽게 느껴졌어요. 그 자체로 영화 속 장면 같았던, 소중하고도 인상적인 기억이에요.
다방면의 연습을 바탕으로 카메라 앞에서 리즐을 표현할 때, 캐릭터의 어떤 점에 주목했나요?
리즐은 한마디로 ‘양파’ 같은 캐릭터예요. 겉으로는 단순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한 겹씩 벗겨낼수록 새로운 면면이 드러나죠. 리즐의 내면에서는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져요.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한 젊은 여성으로서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들이 마음속에 가득하거든요. 아버지 ‘자자’와의 관계를 비롯해 가족에 대한 의문을 오랫동안 품어왔고, 카톨릭 신앙 역시 리즐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요. 이런 지점들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이해해가는 게 흥미로웠어요. 리즐이 얼마나 다층적인 인물인지 느끼면서 그를 표현했죠.
이번 프리미어 상영을 마치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극장에서도 <페니키안 스킴>을 만날 수 있어요. 리즐이라는 캐릭터가 관객의 마음에 어떻게 다가가기를 바라나요?
<페니키안 스킴>의 리즐은 나 자신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가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선택해가는 과정을 겪어요. 그 여정은 결국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이 주제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리즐이라는 복잡한 캐릭터를 저마다 어떻게 해석할지, 영화가 끝난 후 어떤 감상을 나눠줄지 기대하고 있어요. 이 마음을 품고 <페니키안 스킴>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릴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