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박찬욱의 블랙 코미디가 스크린을 두드립니다. 그를 맞이하기 전, 마리끌레르 에디터가 추천하는 두 편의 필름을 먼저 만나 보세요.
9월 24일 관객을 만나는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오는 9월 24일 극장 개봉을 확정했습니다. 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일찌감치 기대작으로 떠오른 이 작품은 박 감독이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 연출작인데요. 이번 작품은 블랙 코미디 색채의 미스터리·스릴러 장르로, 특유의 정교한 미장센과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을 집요하게 풀어내는 박 감독의 연출 세계가 또 한 번 확장될 작품이죠. 작품마다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해 온 그가 이번에는 블랙 유머와 장르 전복을 결합한 ‘박찬욱표 냉소적 휴머니즘’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 중년 남자 ‘만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퇴직금 하나 손에 쥐고 가족과 집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 전쟁에 뛰어든 그는 극심한 경쟁 속에서 점차 극단적인 선택에 몰리며 경쟁자를 하나씩 제거하는 계획을 실행하게 되는데요. 잔혹하지만 우스꽝스럽고, 슬프지만 기묘하게 웃긴 그 모순의 한가운데에 이 영화가 서 있습니다. 주연 ‘만수’ 역에는 이병헌이 낙점됐습니다. 박찬욱과 벌써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그는 이번엔 해고 위기에 몰린 중년의 불안을 밀도 있게 풀어내죠. 그 외에도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해 힘을 더합니다.
공개된 메인 예고편, 불편한 선택의 서막




드디어 오늘, <어쩔수가없다>의 메인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공개된 예고편에서는 실직한 만수(이병헌)가 점점 몰려가는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데요. 테니스를 끊은 아내, 취미를 접은 본인, 팔릴 집까지 모든 것이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죠. 영상은 범모(이성민)와 시조(차승원)가 사라졌다는 말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놀라는 만수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그 뒤로 클래식 바이올린 선율이 점점 날을 세우고 긴장감이 팽팽하게 고조되는 가운데 “다 죽여버려”라는 손예진의 육성이 반복되며 분위기를 뒤흔드는데요. 이후 만수의 선택을 암시하는 “당신이 사라져야 내가 살아”라는 한 대사로 정점을 찍죠.
관전 요소

<어쩔수가없다>는 Donald E. Westlake의 소설 <The Ax>를 바탕으로 하는데요. 같은 뼈대를 공유하지만 결은 확연히 다릅니다. 박 감독은 원작이 품은 냉소를 더 날카롭게 다듬고 블랙 코미디의 농도를 한층 짙게 끌어올려, 웃음은 더 직설적으로 풍자는 더 노골적으로 다가오게 하죠. 이번엔 <올드보이>·<아가씨>의 처절한 복수도, <헤어질 결심>의 서늘한 멜로도 아닌, ‘유머’가 전면에 나섰기 때문인데요. 덕분에 무게감은 덜어지고 대중적 접근성은 한층 높아졌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이병헌 역시 “대본에 생각보다 웃음 포인트가 많았다”며 유머 코드를 강조했어요.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시나리오 라인업. 이번에는 박찬욱의 오랜 파트너 정서경 없이 돈 매켈러·이경미·이자혜가 함께 작업을 해 색다른 서사의 결을 보여줄 예정이죠. 이에 더해, 모차르트부터 트로트까지 박 감독이 자신 있다고 언급한 영화 음악도 관람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에디터 추천!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영화 2
박찬욱은 더 이상 ‘한국 영화 감독’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죠. 칸영화제에서 <올드보이>, <박쥐>, <헤어질 결심>으로 무려 3번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아가씨>는 BAFTA 비영어권 작품상을 한국 영화 최초로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수상 여부와 무관하게 그의 이름은 시네필들에게 언제나 일종의 신뢰로 기능해 왔죠. 그가 만든 세계는 치밀한 미장센, 음악과 서스펜스의 조율, 블랙 유머, 장르의 전복, 감각적인 편집, 그리고 시선의 교차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미학의 정수를 가장 압도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두 편의 영화가 있는데요. 에디터가 특히 추천하는 작품, <헤어질 결심>과 <아가씨>입니다.
가장 우아한 미로, <헤어질 결심>

직전 작품인 <헤어질 결심>은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과 동시에 180만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형사 해준(박해일)과 용의자 서래(탕웨이)의 미묘한 감정선 위에 쌓인 이 로맨스 스릴러는 사랑의 본질과 그 끝을 탐문하는 박찬욱식 멜로의 정점인데요. 산과 바다, 안개와 유리창 같은 이미지들은 인물의 심리를 감싸며 미장센 자체가 감정이 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실내와 실외, 눈빛과 창밖, 말과 침묵 사이에서 계속 교차되는 시점은 결국 ‘의심’과 ‘사랑’을 구분 짓지 못하게 만들죠.
욕망과 권력의 우아한 변주, <아가씨>

<헤어질 결심>이 차분하게 내면을 파고든다면 <아가씨>는 훨씬 노골적이고 대담하게 뒤엉키는데요.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귀족 아가씨(김민희), 하녀 숙희(김태리), 그리고 사기꾼 백작(하정우)이 벌이는 삼각관계와 이중 플롯은 한 편의 고전 문학을 연상케 하죠. 섬세하게 설계된 세트와 계단, 병풍, 목욕탕 같은 공간들이 인물의 계급과 심리를 드러내고, 음악감독 조영욱의 우아한 클래식 스코어는 감각적 긴장을 유려하게 끌고 갑니다. 이 영화의 백미는 장르의 전복에 있죠. 로맨스, 범죄극, 에로틱 누아르, 블랙 코미디가 한데 섞여 있지만 어떤 장르에도 온전히 안주하지 않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더 과감하게, 더 낭만적으로 욕망을 해방시키는 것 또한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