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나온 발자취를 기념하며 어느 때보다 성대한 축제의 막을 올린다.
아시아 전역에서 도착한 다채로운 신작과 세계적인 거장들의 수작, 한국 영화의 확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크린을 수놓는다. 올해 부산은 다시 한번 영화의 힘으로 도시를 환히 밝힌다.

과거를 딛고, 내일로

WRITER 차한비(영화 기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 영화의 얼굴은 전례 없이 다채롭고 풍성하다. 산업의 침체와 위기론이 회자되는 지금, 영화제의 스크린은 여전히 새로운 목소리를 발견하고 오래된 기억을 되새기며 한국 영화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한국 영화의 오늘 : 스페셜 프리미어 및 파노라마 부문 상영작들은 서로 다른 시간과 결을 포개어 올해 한국 영화 지형도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흥행의 전선에서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영화의 세계에 첫걸음을 내딛는 신예 감독들의 열정이 빛나는 작품, 오래된 풍경을 다시 호출하는 영화들이 현재와 맞닿아 깊은 울림을 만든다.

<대홍수>
<프로젝트 Y>

먼저 스페셜 프리미어 부문은 상업영화의 대중적 저력을 확인하는 자리로 자리매김한다. 김병우 감독의 <대홍수>는 재난이라는 익숙한 장르를 차용하지만, 동시대 한국 사회의 불안에 대한 섬세한 묘사로 단순한 오락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환 감독의 <프로젝트 Y>는 젊은 호흡과 감각적인 리듬을 앞세우며,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감독이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갈지 지켜볼 만하다. 라희찬 감독의 <보스>는 범죄와 액션 장르의 틀을 유머러스하게 비틀며, 장르영화의 쾌감을 지켜내면서도 신선한 변주를 시도한다. 배우 하정우가 연출과 주연을 겸한 <윗집 사람들>은 노련한 배우진의 역량에 힘입어 유머와 자극이 넘치는 대화의 전투로 관객을 이끌고, 데뷔작을 부산에서 선보인 감독 오성호와 배우 정우가 공동 연출한 <짱구>는 특정 세대의 향수를 환기하면서도 불안한 청춘의 감각을 스크린 위에 새겨 넣는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극장의 시간들>

한국영화의 오늘 : 파노라마 부문과 특별상영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음미할 수 있다. 민규동 감독의 <파과: 인터내셔널 컷>은 기존 작품을 재편집해 영화가 리듬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읽힐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양종현 감독의 <사람과 고기>는 빈곤과 고독 속에서 우연히 만나 ‘먹튀’ 모험을 떠나는 세 노인의 우정을 유머와 활력 속에 담는다. 박근형, 장용, 예수정 세 배우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과 무게감을 드러내는 동 시에 현재의 관객과 생생한 언어로 소통한다. 이종필, 윤가은 감독의 <극장의 시간들>은 사라져가는 극장의 풍경을 붙잡으며, 영화라는 매체가 품어온 기억과 공동체적 경험을 되살린다. 이 덕분에 관객은 극장이 단순히 영화를 소비하는 공간을 넘어, 오랜 시간 사람들과 함께 호흡해온 문화 공동체였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여기에 올해 영화제의 한국영화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된 정지영 감독의 대표작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가 특별상영으로 더해지며, 한국 영화사가 통과한 궤적을 한층 깊이 있게 보여준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보여줄 한국 영화의 얼굴은 결코 평면적이지 않다. 상업영화는 관객의 흥미를 붙잡으며 산업의 활기를 이어가고, 신진 감독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이야기가 맞닿는 순간, 한국 영화는 과거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다. 위기라는 진단이 여전히 따라붙지만, 영화제의 스크린은 한국 영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움직이고 확장하며 변모하고 있음을 힘주어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