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나온 발자취를 기념하며 어느 때보다 성대한 축제의 막을 올린다.
아시아 전역에서 도착한 다채로운 신작과 세계적인 거장들의 수작, 한국 영화의 확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크린을 수놓는다. 올해 부산은 다시 한번 영화의 힘으로 도시를 환히 밝힌다.
네 갈래의 빛
WRITER 차한비(영화 기자)
올해의 갈라 프레젠테이션은 단순히 화제작의 나열을 넘어선다. 서로 다른 국가와 문화에서 건너온 4편의 영화는 인간의 욕망과 사회의 균열, 그리고 기억과 상상의 힘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 어떤 영화는 블랙 코미디의 웃음을 통해, 어떤 영화는 정치적 질문으로, 또 다른 영화는 압도적 스펙터클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4편의 영화는 저마다 자기만의 빛을 발산하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스크린을 눈부시게 수놓는 별자리가 된다.

우선 한국 영화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품은 변성현 감독의 <굿뉴스>다. 1970년대 실제 여객기 납치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는, 사회적 긴장감과 블랙코미디의 리듬을 결합해 장르적 체험을 선사한다. 전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길복순>을 통해 인물의 욕망과 배신을 리드미컬하게 포착한 바 있는 감독은 이번에도 권력과 폭력, 우연과 계획이 얽히는 순간을 날카롭고도 유머러스하게 직조한다. 설경구, 류승범, 홍경으로 이루어진 배우진이 작품에 무게와 활력을 동시에 불어넣으며, 영화의 긴박감을 더욱 현실적으로 끌어올린다. 무엇보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사건의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웃음 끝에 남는 씁쓸함은 지금 우리 사회가 여전히 안고 있는 어둡고 모순적인 그림자를 비춘다.

이상일의 <국보>는 올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먼저 공개되어 기립박수를 이끌어낸 화제작이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경계적 정체성과 사회의 균열에 천착해 온 감독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이번 신작에서 일본 사회의 깊은 갈등과 인간의 존엄을 묵직하게 응시한다. 영화는 화려한 가부키 무대와 그 이면의 지난한 세월을 동시에 다루며 ‘국보’의 위치에 다다르는 한 예술가의 일생을 그린다. 생경한 소재인 데다 러닝타임이 1백75분에 달하는 장대한 서사지만, 긴장의 결을 놓치지 않는 치밀한 연출이 마지막까지 저력을 발휘한다. 배우들의 표정과 호흡은 곧 사회의 초상으로 확장되며, 영화는 인물의 사적인 고백과 공적인 담론을 절묘하게 교차시킨다.

한편,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거장이자 아시아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 자파르 파나히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22년 만에 부산을 찾는다. 자파르 파나히는 자국 이란에서 벌어지는 검열과 억압에 끊임없이 맞서온 예술가이며, 세계 영화계가 깊이 신뢰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에서 감독은 사소한 사건이 어떻게 도덕적, 사회적 균열로 증폭되는지를 예리한 눈으로 포착한다. 단순한 우연에서 출발해 정치적 긴장과 광포한 폭력으로 뻗어가는 과정을 빈틈없이 전개하는 연출이 돋보이며, 진실과 거짓, 가해와 폭력의 경계를 연신 무너뜨리는 상황은 보는 이를 숨 가쁘게 한다. 관객은 서스펜스의 재미를 즐기다가도 영화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이 스크린을 장식한다. 줄곧 괴물의 형상을 경유해 인간의 외로움과 갈망, 사랑과 결핍을 이야기해온 감독이 어린 시절부터 수십 년간 꿈꿔온 ‘인생 프로젝트’ 이자, 메리 셸리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이다. 배우 오스카 아이작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제이콜 엘로디가 괴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며, 감독의 뜻에 따라 CG와 AI 기술 활용을 최소화한 채 실제 세트와 실물 효과를 통해 고딕 호러의 진수를 선사한다. 다가오는 11월 넷플릭스 공개를 앞두고 있으나, 기예르모 델 토로 특유의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장센과 서정적 공포는 반드시 극장에서 경험해야 할 스펙터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