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나온 발자취를 기념하며 어느 때보다 성대한 축제의 막을 올린다.
아시아 전역에서 도착한 다채로운 신작과 세계적인 거장들의 수작, 한국 영화의 확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크린을 수놓는다. 올해 부산은 다시 한번 영화의 힘으로 도시를 환히 밝힌다.

스크린이 품은 드라마

WRITER 이윤영(시네마토그래프 대표)

극장과 OTT 플랫폼의 접점을 탐색하고자 2021년에 신설한 온 스크린 섹션은 미공개 드라마 시리즈 기대작을 최초로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단순히 화제작을 먼저 만난다는 의미를 넘어, 미장센과 만듦새에 온전히 집중 가능한 극장 환경에서 드라마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올해 역시 6편의 신작이 관객을 기다린다.

<당신이 죽였다>

상영작 6편 가운데 무려 4편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으로, 국적을 불문하고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품이 포진해 있다. 먼저 이정림 감독의 <당신이 죽였다>는 나오키상 수상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나오미와 가나코>를 원작 삼아 가정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살해하고 완전범죄를 꿈꾸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드라마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전소니,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을 통해 얼굴을 각인한 이유미 등 젊은 여성 배우들의 호연이 작품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츠키카와 쇼 감독의 <로맨틱 어나니머스>는 한일 합작 드라마로, 시선 공포증이 있는 천재 쇼콜라티에 하나와 결벽증을 가진 재벌 2세 소스케의 관계를 통해 동시대 청년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꾸준히 활동해온 배우 한효주와 오구리 슌이 주연을 맡아 섬세한 로맨틱 연기를 펼쳐 보이고, 일본어로 번안된 박혜경의 ‘고백’이 OST로 흐르며 합작품으로서의 가치를 한층 더한다.

<이쿠사가미: 전쟁의 신>

또 다른 넷플릭스 기대작 <이쿠사가미: 전쟁의 신>은 나오키상 수상 작가 이마무라 쇼고의 동명 역사소설을 원작으로 한 사극이다. 메이지유신 시대에 열린 배틀 로열에 2백92명의 사무라이가 거액의 상금을 노리고 참전한다는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며, 스케일과 박력 면에서 큰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현시점의 일본을 대표하는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주연과 무술 감독, 프로듀서까지 1인3역을 소화한 오카다 준이치의 활약이 특히 두드러진다.

<회혼계>

한국과 일본을 넘어 대만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서기가 주연을 맡은 <회혼계>는 보이스피싱 카르텔에 딸을 희생당한 두 어머니의 이야기다. 속죄와 사과 없이 약물을 통한 사형으로 편안하게 생을 마감한 범죄자를 소생시켜 응징한다는 참신한 설정을 통해 샤머니즘 과 강령술을 바탕으로 사회에 뿌리내린 여성을 향한 폭력과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지난 겨울 재개봉한 <밀레니엄 맘보>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을 다시 보여준 서기는 여전히 탁월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아시아 스타 리신제와의 앙상블 또한 작품에 힘을 더한다.

디즈니+도 야심 차게 굵직한 신작을 선보인다. <탁류> 는 디즈니+가 최초로 선보이는 오리지널 사극 시리즈로, <추노> 이후 14년 만에 다시 펜을 잡은 천성일 작가의 신작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천만 감독 반열에 오른 추창민 감독이 처음으로 드라마 연출을 맡아 더욱 기대를 모은다. 배우로서 안정적인 입지를 다진 로운이 주연을 맡았고, 배우 신예은과 박서함 등 도드라진 행보를 이어나가는 젊은 배우들을 스크린에서 만날 기회이기도 하다.

국내 OTT 플랫폼 티빙의 행보도 눈길을 끈다. 동명의 인기작 웹툰을 원작으로 한 <친애하는 X>는 자신의 명성과 생존을 위해 주변인을 가차 없이 이용하고 제거하는 매력적인 악녀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흡인력 있는 여성 서사를 구축한다. 참혹한 가정환경을 딛고 스타덤에 오른 소시오패스 백아진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김유정의 이미지 변신 또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