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뛰어난 작품성과 독창적 시선을 지닌 영화와 감독을 소개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비전’ 섹션이 올해 보다 넓고 다양한 세계를 마련했다. 한국 영화를 넘어 아시아 영화로 확장된 2025년 비전 섹션에는 총 23편의 선정작, 24인의 감독이 함께한다.
모두가 위기라 말하는 시기에도 어디선가 새로운 영화가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음을,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는 이들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근사한 영화가 부산에서 열흘간 관객과 만난다. 바라는 대로, 혹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끝내 나의 영화를 완성한 감독들에게 가장 사랑하는 내 영화의 일면에 대해 물었다.
신수원, <사랑의 탄생>
2022년, 코로나 팬데믹이 끝날 무렵. 한국인이지만 외국인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던 흑인 혼혈 남자 세오가 무더운 날 놀이공원에서 일하다 쓰러진다. 그는 모아둔 돈으로 자신과 여행을 떠날 사람을 구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외면한다. 그러다 공원에서 만난 소라가 그의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영화의 시작
김희진 작가의 장편소설 <다른 여름>이 작품의 원안이다. 한국인 부부 사이에서 돌연변이로 태어난 흑인 청년이 어느 날 자기가 그간 모은 돈을 다 털어서 명품 캐리어를 사고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에 매료되었다. 어쩌면 특별하지 않은 소재일 수도 있으나 혐오를 넘어선 다양성 존중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은 멜로드라마 형식을 띤 소설인데, 시의성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모티프만 가져오고 일부 에피소드와 대사, 캐릭터 설정을 남긴 후 거의 새로 썼다.
영화 속 언어
세오는 놀이공원에서 백호 탈을 쓰고 일한다. 세오는 소라에게 가면을 쓰면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G라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여자가 “가면 뒤에 숨어 있으면 좋아요?”라고 묻자 세오는 “안전해요”라고 말한다. 영화의 배경은 팬데믹 직후인 2022년이다. 팬데믹 때 사람들은 모두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했다. 그리고 이후 경제 불황과 함께 혐오와 차별은 더욱 심해졌다.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질병이다. 세오는 자신을 향한 편견과 혐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탈을 쓰게 되었다. 그에게 탈은 보호막이다. 영화의 후반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불편을 느낀 세오가 소라의 핀잔에 마스크를 벗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통해 작은 행동으로 그가 변화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어머니의 부고를 듣지 못한 세오가 장례식장에 찾아가는 장면. 중요한 감정 신이기도 하고, 실제 장례식장에서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굳이 컷을 여러 개로 나누지 않고 원 신 원 컷으로 찍기로 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실제 상을 당한 유족이 있어 부담스러웠지만, 배우와 스태프의 합이 매우 좋았다. 현장에서 촬영하면서 느껴지는 에너지와 몰입도가 아주 좋았던 장면으로 기억한다.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매번 영화를 만들 때마다 긴장과 두려움, 설렘이 공존한다. 그래서 현장을 좋아한다. 한정된 예산 때문에 모든 장면을 원하는 대로 촬영할 수는 없었지만, 현장의 에너지로 창조되는 영화적 순간을 체험할 때마다 기쁨을 느낀다. 이번에도 그런 순간을 여러 번 느꼈다.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모든 팀원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 매번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이 작품은 일곱 번째 영화다. 영화마다 각자의 운명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떤 작품은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어 영광을 누리기도 했고, 어떤 작품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빛을 보지 못한 적도 있다. 그러고 보니 15년간 마치 롤러코스터에 탄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영화를 만들어온 것 같다. 그 때문인지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저 감독으로서 크랭크업 후 사람들이 떠나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컷 한 컷 손을 보면서 영화가 관객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 안에서 작은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세상이 바뀌었다. 영화 산업이 위기를 맞았고, 영화 만드는 일이 재미없어졌다는 말을 하고 떠나거나 휴·폐점 상태가 된 이들을 많이 봤다. 견디고 버티다 무력감만 안고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건 두렵고 슬픈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영화를 만들면서 ‘이게 나의 마지막 영화일지도 몰라’라고 늘 생각하게 됐다. 나도 영화가 재미없어진다면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이제 그만 끝낼까 해”라고 쿨하게 말하고 그만둘 것 같다. 두려움은 차라리 좋은 에너지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무력감을 안고 떠나지 않기만 바랄 뿐.
영화로의 인도자
너무 많다. 어릴 땐 매주 보던 <주말의 명화>의 영화들, 지금은 거장의 반열에 오른 한국 감독과 해외 감독의 작품들. 마니아 기질이 없다 보니 때마다 좋아하는 작품이 달라진다. 신인의 작품이든 거장의 작품이 든 동시대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영화를 좋아한다.
나에게 영화는
친구였고, 나를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물론 언제든 떼어버리고 싶은 애증의 존재이기도 하지만 자식처럼 소중해서 버리지도 못한다.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그동안 수고했다. 앞으로도 수고해줘. 그리고 행복하자.
마하르시 투힌 카시아프, <콕콕콕, 코코콕>
누르는 자신의 빨간색 오토바이에서 사고 흔적을 발견한다. 혹시 전날 일어난 뺑소니 사고와 관련이 있나 싶어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만, 그들은 이방인이자 무슬림인 누르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장관의 인척이 피해자인 이 사고로 경찰은 점점 누르를 압박해온다.

영화의 시작
나는 인도의 아삼에서 자랐다. 불법 이주민의 유입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 살았고, 늘 두려움에 시달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스스로를 잃을까 두려웠다. 이 영화는 그 시절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시절이 남긴 것과 그 이후 우리 사회가 걸어온 방향을 이야기한다. 내게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때때로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대목도 있을 테지만 실은 철저히 현실에 뿌리내린 이야기다.
영화 속 언어
영화의 핵심은 대사가 아니라 침묵에 있다. 조각난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진실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부서진 현실에서는 생존 자체가 유일한 언어가 되고, 말보다 침묵이 더 진실되게 다가온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두 인물이 강가에서 만나 대화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강은 마치 조용한 목격자처럼 그들의 기억을 품고, 꿈과 욕망을 자신의 흐름 속에 묶어둔다. 내게 강은 역사이자 희망을 품은 존재다. 깊은 곳에는 과거의 상처가 감춰져 있지만, 강의 움직임은 언제나 미래를 향한다. 절망으로 가득한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찾아 헤매던 희망의 한 조각을 보여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바라는 대로 다루고 싶었던 공간과 사람을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을 찾는 것에 집중했다. 이번 영화에선 초현실적 요소를 보여줄 때 CG나 특수 효과를 쓰고 싶지 않았다. 단순한 방식으로 구현할 때 작품이 더 힘을 얻을 거라 믿었다. 내 머릿속의 이미지는 남들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것을 세상에 당당히 내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영화로의 인도자
지아장커의 영향이 가장 크다. 그리고 차이밍량,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오즈 야스지로, 김기덕, 이창동,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이마무라 쇼헤이. 이 아시아 감독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내가 삶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홍상수. 그는 영화가 바깥 어디엔가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영화 철학을 심어준 멘토 도미닉 상마가 있다. 그는 진심을 다해 믿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영화 속에서 드러난다는 걸 깨우쳐준 사람이다.
유재욱, <산양들>
수능 D-200. 다들 입시에 몰두할 때, 사육장 담당 인혜는 오리에게 설교하기 바쁘다. 칼을 소지한 벌로 서희도 인혜와 함께 사육장을 청소한다. 둘은 버려진 평원을 발견하는데, 사육장의 오리 ‘희선이’를 그곳에서 잃어버린다. 대학교 입시 면접 날, 인혜와 서희는 땡땡이를 치고 희선이를 찾기 위해 평원으로 간다.

영화의 시작
학창 시절 학교에 있던 사육장이 영화에 나오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리고 인혜를 비롯한 캐릭터는 아내의 모습에서 가져왔다. 아내는 영화에 나오는 셸터라는 공간을 실제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또 생존주의에 빠져 있다. 그래서 늘 가방에 밧줄과 서바이벌 칼, 알루미늄 담요를 담아 다닌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영화 속 캐릭터들에 아내의 면면을 담아내게 되었다.
영화 속 언어
이 영화는 여고생 4인방 외에 작은 동물들도 주인공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작동하게 하는 대사는 “꽥!”(오리) “꼬꼬꼬!”(닭) 점프하는 소리(토끼)다.
바라는 대로
인혜가 호숫가에서 오리 희선이를 구출하는 장면. 인혜는 리더를 시켜준다는 말에 호수에 들어가 희선이를 구한다. 친구들은 그 모습을 황당해하며 지켜보는데, 이 일을 계기로 인혜와 친구들이 뭉치게 된다. 어린 시절 서로의 용기를 시험하며 장난하는 모습이랄까? 그 장면이 내가 생각한 느낌과 비슷하게 나와 마음에 남는다.
나에게 영화는
캠핑 같다. 어디로 갈지 결정해 준비하고 그 장소에 가서 야영하고. 밤에 별을 볼 수도 있지만, 갔다 오면 힘들다. 설레면서 고되고, 묘한 중독성이 있다.
트레이시 초이, <걸프렌드>
마카오 출신 34세 영화감독 록의 삶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다음 영화는 중단되었고, 동거 중인 파트너 베이베이는 안정된 삶을 요구한다. 갈등 속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게 된다. 혼란스러웠던 열일곱, 집착으로 가득했던 스물둘, 그리고 불안하고 피로한 서른넷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시작
내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서른이 되면서 이제는 무언가 의미 있는 성취를 이뤄야 한다고 느꼈지만, 사실상 크게 이룬 것이 없는 듯 보였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나와 비슷한 인물이 겪는 이야기로 풀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나는 수많은 과거의 내가 쌓여 만들어진 존재라는 점. 성장 과정에서 겪는 혼란, 그리고 우리를 만들어온 중요한 관계들을 그려내기 위해 <걸프렌드>를 만들었다.
영화 속 언어
이야기 전체의 핵심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대사는 페이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마카오에서 그가 옌에게 메이크오버를 해주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마카오 사람들 좀 이상하지 않아? 모든 일을 설명서대로만 해야 하나 봐.” 이 말은 단순히 마카오에 관한 것이 아니다. 주요 인물들이 처한 곤경을 드러내는 것이자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회에서 정한 ‘설명서’에 따라 살아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 새로운 장을 써나갈 용기를 내야 할까?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가장 큰 기쁨은 록 역을 맡은 피시 리우와 베이베이 역을 맡은 제니퍼 유, 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실제로 절친한 친구 사이인 이들이 인생의 어려움을 함께 겪는 커플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주 멋진 경험이었다. 가짜 결혼을 두고 격렬한 언쟁을 벌이는 장면, 집에서 서로의 어질러진 생활을 감당하며 드러나는 좌절과 따스함이 담긴 순간, 그들의 연기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진실의 층위를 하나 더 얹어주었다.
영화로의 인도자
옌이 혼란의 시기를 겪을 때, 그는 우연히 마카오 영화 <나비(Butterfly)>를 보게 된다. 이 장면은 맥 완흔 감독의 <나비>에 대한 오마주다. 그의 영화는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 영화 역시 한 여성의 성장, 정체성, 감정의 유동성을 다룬다. 게다가 눅눅하고 쓸쓸하며, 약간은 초현실적인 마카오만의 독특한 분위기도 담겨 있다. 내가 가장 매혹된 부분은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다루는 방식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섬세하고 감각적이며 시적이다. 운명과 변화에 관한 말을 하는 영화 속 내레이션은 내가 <걸프렌드>에서 탐구하고 싶었던 주제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유은정, <두 번째 아이>
수안은 언니 수련의 죽음을 목격한 뒤 혼수상태에 빠진다. 3년 후 기적처럼 깨어난 수안. 엄마 금옥은 과거의 기억을 덮어두고 수안과 새 삶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두 사람 앞에 수련을 똑 닮은 아이 재인이 나타나고, 둘은 혼란에 휩싸인다.

영화의 시작
전작 <밤의 문이 열린다>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했고, 이번 작품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했다. 너무나도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상실감이 채워질까? 이 질문을 안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먼저 내가 간직할 수 있는 답을 찾고 싶었다.
영화 속 언어
수안이 품은 “언니, 돌아와” 같은 말, 그 마음. 그리고 금옥의 말 “너 없이는 못 살아”. 이런 말들에 대한 답장으로, 수련과 재인이 보여주는 마음이 이어지게 하고 싶었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영화에 ‘든해’라는 공간이 나온다. 그 곳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 또 수안이 한 인물과 나누는 대화도 찍었다. 배우 모두 더없이 잘해주었음에도 아쉽게 후반 작업 과정에서 빠지게 되었다. 두고 온 아이처럼 그 장면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 장면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다.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머릿속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순간부터 원하는 대로 잘 풀리지 않는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고치는 과정에서도 변하고, 배우와 스태프를 만나고 장소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변하고, 촬영할 때나 편집하고 후반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나의 영화는 계속해서 변한다. 그런데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처음 구상했을 때와 닮아 있다. 신기한 일이다.
영화로의 인도자
스무 살 넘어 서울에 온 후에야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시절 본 영화 중 하나가 팀 버튼 감독의 <에드 우드>다. 에드 우드라는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애쓰고, 신나서 작업하다가 망치고, 그래도 계속 하려는 모습을 보며 영화 만드는 일이 궁금해졌다.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어릴 때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 그때 목표를 잃은 내가 얼마나 힘이 없었는지 기억한다. 이후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용기 내서 해보니, 얼마 못 갔지만 여한이 없었다. 그때 잘하고 못 하는 건 둘째 문제고, 일단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편이 덜 힘 들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과거의 나에게도, 미래의 나에게도 영화든 뭐든, 하고 싶은 것이 생기거든 너를 위해 꼭 시도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고야마 다카시, <올 그린스>
히데미와 야구치, 이와쿠마. 3명의 여고생은 따분한 고향을 탈출해 꿈을 펼칠 궁리를 하고 있다. 세 사람은 훔친 물건으로 돈을 벌자는 황당한 계획을 세우고, ‘올 그린스’라는 클럽을 결성한다.

영화의 시작
서브컬처의 본질이 담긴 원작 소설에 매료되었다. 이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영상으로 샘플링’하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자고 생각했다. 그 시도가 가장 잘 응축되어 있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영화 속 언어
“이건 우리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장이 열린 거야”라는 야구치의 대사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영화 후반부 히데미의 프리스타일 랩은 대본에 없던 장면이다. 촬영하면서 우연히 떠오른 아이디어였는데, 결과적으로 그 랩이 히데미의 리얼한 자기 고백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영화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말엔 묘한 역설이 내포되어 있다. 원한다고 해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우연히 갑작스럽게 손에 넣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이번 작품은 그 불확실성을 일종의 필연처럼 손에 넣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영화 제작 안에서 느껴보지 못한 불안과 희망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영화로의 인도자
고등학생 때였다. 래리 클락 감독의 <키즈>를 본 날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고 사실적인 배우들의 연기와 근사한 패션, 비관적인 이 야기지만 어딘가 가볍게 흘러가는 상반된 요소들에 강하게 매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