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부산의 열흘이 관객과 영화인의 활기로 가득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프로그래머들의 열정과 헌신이 분명히 자리한다. 세계의 기쁨과 아픔에 다가가고, 강단 있는 패기로 무장하고, 일상 또는 시대에 필요한 사유를 전하는 작품들을 폭넓게 살피며 영화의 본질에 대해 부단히 고민해온 사람들. 올해도 풍성한 라인업을 준비한 7인의 프로그래머가 개인적인 애정을 담아 추천작 5편을 전해왔다. 서른 번째 영화 축제의 스크린 너머로, 저마다의 감상이 극장을 다채롭게 채워주기를 기대하며.
Wide Angle
강소원 프로그래머
올해의 경향 인물 중심적이고 드라마가 선명한 작품이 ‘와이드 앵글’ 섹션에 많다. 흥미로운 인물들이 대중 친화적 어법으로 말을 걸어온다.
프로그래머의 일과 삶 어느덧 7년 차 다큐멘터리 프로그래머다. 내 업무는 전쟁, 학살, 사고, 사건을 접하는 게 아니라 그 비극을 경험하는 실제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를 만나 그 삶의 구체성을 보고 느끼는 것이 되었다. 정답과 결론 없이 이어지는 세계이자 그래도 계속되는 삶이 거기에 있었다. 내 앞에 놓인 수백 편의 영화가 논픽션이라 다행이다. 못 만든 다큐멘터리는 있어도, 무시해도 좋을 다큐멘터리는 없기 때문이다.
부국제의 30년 30년간 부국제를 건너뛴 적이 없다. 남포동 시절은 초보 영화인이던 내게 역사책 사진처럼 각인되었다. 이마무라 쇼헤이를 만난 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나란히 서서 <체리 향기>를 본 기억,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차이밍량, 이강생과의 점심 식사 자리에 나를 끼워준 일,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에 감격해 지인들과 밤새 술을 마신 기억, 지아장커와 자파르 파나히 등 이제는 거장이 된 감독의 GV를 맡은 순간, 수영만 요트 경기장에서 <화양연화>를 본 추억. 이 중에는 올해 부산에서 다시 만날 사람들도 있다.
영화를 통한 만남 모두에게 좋은 영화는 있을 수 없다. 영화란 결국 스크린을 마주한 순간의 사적 체험에 달린 게 아닐까. 올해 부산을 찾는 이들에게도 취향에 맞는 영화를 발견하는 행운이 있기를.

주로미, 김태일 <이슬이 온다>
올해 선정한 다큐멘터리 중 내 마음의 1등. 두 감독 역시 노동자지만, 이들의 인간적인 시선이 영화에 풍요로운 감정적 결을 쌓아 올린다.

최정단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인문학자 김우창의 삶이 아름답고 기이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담긴 영화. “작가가 주인공인 영화가 제작되지 않는 이유는 그를 흥미롭게 시각화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란 말은 틀렸다.

예빙쥔, 서머 신레이 양 <바이마 소년>
압도적으로 많이 출품되는 중국 다큐멘터리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 돌보아주는 부모 없이 스스로 생존하고 성장해야 하는 15세 소년의 삶이 극영화보다 더 극적으로 펼쳐진다.

오타 신고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
웃음을 기대하기 어려운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발군의 유머 감각을 선보이는 특이한 작품. ‘픽션화’된 부분이 이 영화의 DNA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이성민 <더 로즈: 컴 백 투 미>
이 영화의 스크리너를 열 때만 해도 더 로즈라는 밴드를 몰랐다. 영화를 보다 말고 ‘나만 모르나?’ 싶어 검색해봤다. 이제 나는 그들의 음악을 찾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