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위의 이야기는 관객의 시선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영화를 사랑하는 문화 예술계 인물 10인에게 영화에 관한 10개의 질문을 던졌다.
‘지금 떠오르는 영화의 한 장면’부터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까지.
10명의 관객이 전해온 답변 속에는 영화를 완성한, 그들 각자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윤영

시네마토그래프 대표

국내외 독립·예술 영화를 수입 및 배급하는 ‘시네마토그래프’ 대표. 최근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의 <너는 나를 불태워>를 수입 개봉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

최근 1년간 가장 큰 놀라움을 안긴 영화
하마구치 류스케의 데뷔작 <아무렇지 않은 얼굴>. ‘거장의 첫걸음’ 정도의 수식어로 표현하기 아쉬운 작품이다. 기계적 말하기 또는 낭독이라 불리는 것이 어디까지 감정을 확산하고 또 수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 사이로>

하루 종일 영화 한 편을 반복 재생한다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지그재그 3부작’이라 불리는 세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키아로스타미는 사소하지만 큰 희망을 포착하는 능력이 있다.

<비엣과 남>

지금 떠오르는 영화의 한 장면
츠엉민퀴의 <비엣과 남> 첫 장면.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업고 천천히 움직인다. 시각적으로 갑갑하면서도 고요한 그 장면에서 이상한 애틋함이 느껴진다.

<물레방아>

외우고 있는 대사
이만희의 <물레방아> 속 마지막 장면, 방원(신영균)이 처절하게 “분아, 금분아” 하며 울부짖는 대사. 사실 이 영화는 음향이 유실되어 그 장면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방원의 추한 모습을 바라보며 자막으로 대사를 읽어야 한다. 그 독특한 경험 때문인지 쉽게 까먹곤 하는 주인공의 이름마저 오래 기억하고 있다.

최고의 무비 스타
드니 라방. 1980~1990년대의 그는 배우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이성이 아닌 감각에 완전히 의존하는 듯한 동물적 움직임은, 레오스 카락스의 초기 영화가 여전히 새로운 세대의 관객에게 회자되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청춘>

가장 완벽한 포스터
왕빙의 <청춘> 3부작 포스터.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이미지를 콜라주처럼 정돈하고, 포스터마다 다른 색을 입힌 다음, 그 위에 한자어로 ‘청춘’, 영어 로 ‘YOUTH’를 적었다. 보자마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스크린에서 봐야 하는 영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마르타 마테우스 감독의 <바람의 불>. 어두운 장면이 자주 나오는 작품을 영화관에서 볼 때의 색다른 감각이 있다. 붕 뜬 듯한 느낌과 함께 정확한 사고와 판단을 어렵게 하는 일종의 명상 상태에 돌입하게 하는데, 그 감각이 참 매력적이다.

<밀레니엄 맘보>

만나고 싶은 영화 속 인물
<밀레니엄 맘보>의 비키(서기).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비키가 자유로운 듯 걸으며 계속 뒤를 돌아보는 이미지가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오직 <밀레니엄 맘보>의 비키로서 드러나는 배우 서기의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

한 명의 감독을 만날 수 있다면
라두 주데. 괴짜라고 불리는 영화감독이 여럿 있지만, 라두 주데처럼 정치적으로나 형식적으로 과감한 시도를 하면서도 놀라운 성취를 이룬 감독은 드물다. 그가 평소에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하다.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
2018년 겨울 극장에서 본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를 좋아하게 해준, 혹은 좋아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게 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