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쓸모를 다할 수 있는 삶을 향해 걸어갈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계속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민규동 감독이 끝내 <파과>를 완성할 수 있었던 힘.

그레이 재킷과 니트 톱, 체크 팬츠 모두 Ferragamo, 슈즈와 벨트, 브레이슬릿, 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경은 본인 소장품.
스트라이프 수트 셋업과 셔츠 모두 HEON KIM, 안경 Mag & Draw, 슈즈와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찬란했던 과거를 지나 젊은 도전자와 새로운 시스템이 밀려 그저 나이 든 사람으로 규정될 때의 허무와 공허.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쓸모와 가치를 믿고 걸어가는 사람. 영화 <파과> 속 ‘조각’(이혜영)의 삶은 곧 이 영화를 만든 감독 민규동의 삶으로 이어진다. 쓸모없어졌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가기를 멈추지 않는 조각처럼, 안 될 이유로 가득한 상황을 지나면서도 <파과>의 존재 가치를 발견한 순간, 감독은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한 편의 영화가 누군가의 삶에 소용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여전히 조각의 일도, 감독 민규동의 영화도 지속되고 있다.

<파과>
<파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안팎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될 듯하다. 개·폐막식의 총연출을 맡은 데다 상영작도 두 편이나 된다. 개막식과 폐막식의 연출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어떤 무대를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올해는 영화제 30회이기도 하고, 경쟁 영화제로 변모하는 첫해이기도 하니 박광수 이사장님께서 이 영화제의 질감을 조금 바꿔보자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 생각에 동의해 연출로 참여하게 되었다. 일단 관객으로 갔을 때 느낀 지점들을 생각해봤다. 리듬이 더 재미있거나 유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걸 이번 무대에 적용해보려고 한다. 올해 개·폐막식 무대에 공연이 없다. 음악이나 춤이 없다는 전제하에 고민해봤을 때, ‘그럼 전체가 공연이라면?’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말하자면 일인극인 셈이다. 사회자가 호스트이자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무대에 게스트를 초대하는 모습을 구상하고 있다. 그래서 대본도 정보 전달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운 형태로, 하나의 시나리오를 쓴다 생각하고 정리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물감을 찾아가는 중인데, 실제로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될지는 모르겠다.(웃음)

총연출이자 오랜 인연을 맺은 영화인으로서 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공자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삼십이립(三十而立)’,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말처럼 이전에는 성장기였고, 이제 진짜 어른의 인생을 사는, 새로운 이정표를 찾아가는 순간이지 않나 싶다. 1회 때부터 매우 무모하고 대담한 시도들에 시간 함수가 더해지면서 더 멋진 자기 스타일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또 이전에는 비경쟁으로 좋은 영화를 칭찬하고 소개하는 자리였다면, 이제는 경쟁 영화제로서 조금 더 드라마와 서스펜스가 있는 영화제가 될 거라 기대한다.

개·폐막식 무대만큼 기대되는 행사가 있다. 신예 감독 5명이 자신의 영화 세계에 영향을 미친 한국 영화 한 편을 선정해 상영하며, 선배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특별기획 프로그램 ‘우리들의 작은 역사, 미래를 부탁해!’에 참여가 예정 되어 있다. 김세인 감독이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선정했다.

의외라 생각했다. 김세인 감독의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너무 멋지지 않나. 내가 데뷔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보다 훨씬 멋지고 깊이 있으며 탐나는 재능을 가진 감독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첫 영화가 그에게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킨 걸까 무척 궁금하다.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였을까?(웃음) 어떤 요소가 마음에 남아 그 멋진 영화를 만들 때 드러났을까? 내 영화 만들 때를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인상적으로 본 영화들의 요소가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 있거든. 만나면 그런 얘기들을 나누게 될 것 같다.

데뷔작인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얼마 만에 다시 보는 건가?

한국영상 자료원에서 개봉 20주년 행사를 할 때 보고 안 봤으니 대략 6년 만이다. 이런 행사가 아니면 내 영화를 거의 안 본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아주 순도 높은 고통이 거의 전부고, 완성된 순간 느끼는 0.1%의 기쁨이 있을 뿐이라, 다시 본다는 건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주로 앞을 본다. 과거의 작품은 세상의 것이고, 내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잘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 다시 볼 때 그 시기마다 인상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다르긴 하니, 이번엔 어떤 부분이 보일지… 잘 살펴봐야겠다.

그럼 <파과>는 어떤 부분을 보게 될까? ‘한국영화의 오늘 : 파노라마’ 섹션에서 <파과: 인터내셔널 컷>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이번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공개한 버전을 선보일 예정인데,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글쎄, <파과>는 아마 나보다 관객이 새롭게 보게 될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첫 영화와 최근 작품이 같은 영화제에서 만나는 게 감독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나로선 좀 신기한 일이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20세기, <파과>는 21세기 영화이기 때문에 세기 간의 간극도 보일 것 같다. 나의 첫 영화가 나올 땐 한국 영화의 중흥기가 시작되던 시절이었고, 지금은 웨이브가 깨졌다고 말하는 시기라 그 지점에서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또 두 작품이 내게 비슷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많다. 둘 다 만들어지기까지 쉽지 않았다는 점도, 나에게 익숙하지 않는 장르영화라는 점도, 끝내 기적적으로 완성되었다는 점까지 닮아 있다. 비슷한 형태의 링 두개가 만나는 것 같은데, 이 경험이 나에게 무엇을 안겨줄지 기대된다.

이제 <파과>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말한 대로 안 될 이유가 너무나 많았던, 가능성이 낮은 이 영화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이었나?

이제는 그러면 안 될 것 같다.(웃음) 그럼에도 이 영화 안에는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움이 있고, 그래서 탄생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달려간 거다. 다만 ‘거봐, 이런 영화는 어렵고 힘들다고 했잖아’라는 식의 보편적인 문제 제기에 대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숙제가 미완으로 끝난 점이 아쉽긴 하다.

어떤 연유에서 미완이라 생각하는 건가?

물론 이런 영화가 나온 것을 반가워하는 관객도 많았지만, 더 야심 차고 깊이 있는, 혹은 더 많은 새로움이 담긴 영화이기를 바란 이들도 있었다. 감독으로서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타협하며 가능한 선택을 해나갔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과정은 중요하지 않지 않나. 결과 안에서 성취를 즐기는 거지. 그 생각에 나도 동의하고, 그래서 미완이라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

한 인터뷰에서 <파과>는 고통이면서 선물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점이 고통이고, 어떤 부분이 선물이라 느꼈나?

가장 큰 고통은 이혜영이라는 배우였다. 육체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완성해내기 위해 나와 배우 둘 다 넘어보지 않은 선을 넘는 시도가 필요했다. 이 과정이 고통을 감내하는 배우도, 이를 가해야만 하는 내게도 고행이었다. 그리고 끝내 해낸 이혜영 배우가 역시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와 더불어 관객이 조각이라는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응원하고 혹은 연민을 느끼거나 만나보고 싶다는 판타지가 생긴 것 또한 내겐 큰 선물이었다.

조각이 계속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원작과 다른 결말 또한 지지하는 관객이 꽤 있었다.

소설은 그 일을 그만두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결말인데, 나는 삶의 쓸모와 가치에 집중하고 싶었고, 그래서 여전히 자신의 길을 간다는 식으로 다르게 마무리 짓게 되었다. 물론 예전만큼의 에너지로 싸우기는 힘들고, 삶은 더 얼룩졌다. 폐허 속에서 새출발을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일을 계속하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었다. 자신의 쓸모를 다할 수 있는 삶을 향해 걸어갈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계속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무려 1백36고를 썼다고 들었다. 이 영화를 두고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가늠하게 되는 수치다.

2019년 여름에 초고를 썼다. 아무리 기가 막힌 시나리오도 작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지 않나. 만들어지는 바보 같은 시나리오가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들기 위해 계속 새로운 버전을 찾아나가야 했다. 조건이 바뀌고 상황이 바뀔 때마다 계속 고쳤는데, 헷갈리니까 넘버로 표시해두다 보니 136까지 가긴 하더라. 그런데 그게 1백36번째를 뜻하는 건 아니다. 미세하게 조정될 때마다 뒤에 001, 002를 붙였다. 예를 들어 신성방역을 2층 건물로 썼는데, 예산상 2층이 안 된다고 하면 지문을 바꿔야 하니까, 그럼 136_001 이런 식이다. 그렇게 계속 변주하면서 영화가 될 때를 기다렸던 것 같다. 가끔 이런 생각은 한다. 48고로 갔어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웃음)

어쩌면 <파과>는 끈질김의 산물이지 않나 싶다.

그렇게 안 하면 완성까지 가기가 어렵다. 수정을 향한 필사의 노력이랄까. 끈질길 수밖에 없는 건 영화가 개인 예술이 아니라는 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문학이나 미술 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완성되지 않나.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집단적인 종합예술이다 보니, 감독이 에너지를 놓는 순간 사라지기 쉽다. 그래서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사력을 다하게 된다. 물론 여유롭게 작업하는 감독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동력이 되고, 누군가는 불안과 두려움이 동력이 되고 그런 거지.

그럼 감독 민규동은 무엇을 동력으로 영화를 만드나?

다음엔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하하. 나는 세상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사람이다. 그걸 첫 영화부터 지금까지 하나씩 풀어내는 중이고. 마치 분량이 정해지지 않은 책을 쓰는 기분이 든다. 첫 작품이 프롤로그라면 이후엔 하나씩 매번 새로운 챕터를 써나가는 식이다. 어떻게 완성될지 모르겠지만, 한번 쓴 이상 일단 계속 쓰게 되는 것 같달까.

자신의 길을 찾은 이상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조각과 연결되는 말이다. <파과>의 주요한 질문인 쓸모와 가치를 영화감독에 대입해보면 무엇이라 생각하나? 영화 만드는 일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나.

최근에 를 보면서 영화감독의 삶에 대해 자문하게 됐다. 이 영화가 <파과> 하고도 연결점이 있다.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는 한때 레전드였지만 지금 사람들은 자신을 잊었고, 그럼에도 죽을지도 모르는 그 순간에 자신이 존재하고, 그 순간이 없으면 삶은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매번 젊은 도전자와 새로운 시스템에 밀려나고, 그런 현실을 받아들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순간에 자기 삶의 동력이 있다. 그게 <파과> 속 조각의 삶과 또 영화예술을 하는 나의 삶으로 해석되더라. 어쩌면 감독의 쓸모라는 건, 물론 F1 경주보다는 길지만, 자신이 만든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내외에 불과하지 않나 싶다. 그걸 위해 2만 시간을 넘게 썼는데.(웃음) 그럼에도 그 시간 속에서 누군가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게 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면 그걸로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김세인 같은 멋지고 젊은 감독에게 밀려서(웃음) 쓸모없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소용되는 찰나의 순간이 있다면 계속 영화를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은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 중인가? <파과> 이후의 영화는 어떤 형태일지 궁금하다.

5분 분량의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한 소녀 이야기인데, AI를 활용해보는 중이다.

공포영화로 시작해 멜로드라마, 드라마, 액션까지 이어진 여정의 다음 챕터가 애니메이션이라니. 감독 민규동의 세계에 익숙하고 쉬운 길은 없는 듯하다.

매번 공부할 게 너무 많다. 하하. 늘 그렇듯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