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배우, 각본가와 제작자로 만난 여성 영화인들은 서로의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우정을 기록했고, 오늘날 영화계는 여성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여기, 작품 안팎을 오가며 연대를 이어온 여자들이 있다.

Agnès Varda & Jane Birkin

“저는 여성들 간의 우정을 재평가하고 싶었어요. 폭력성, 부드러움, 일관성, 연대의 성질을 포함하는 하나의 느낌으로서의 우정을요.”
– 아녜스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의 말>, 마음산책, 2020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7)는 68혁명 전후 프랑스를 배경으로 성격도 가치관도 다른 두 여성의 오랜 우정을 그린다. 생계 문제에 부딪혀 낙태를 하는 수잔(테레즈 리오타르)의 고통을 지켜보던 폴린(발레리 메레스)은 거리에서 음악을 통해 페미니즘 운동을 펼친다. 이후 폴린은 이란 남성을 만나 타국에서 결혼과 출산을 하고, 수잔은 재혼해 가정을 꾸리며 엽서로 근황을 주고받는다. 꿈을 위해 이혼을 결정한 폴린이 고국으로 돌아오며 재회한 두 사람은 상이한 궤적을 그리는 삶을 살아왔지만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헤아리고 위로한다. 그들이 공유한 여성으로서의 경험은 그간 함께하지 못한 시간의 공백을 메우며 우정을 더욱 견고하게 다진다.

영화가 공개된 지 10년 뒤, 바르다에게 도착한 팬레터 한 장은 영화 속 장면을 현실로 만든다. 편지의 발신인은 배우 제인 버킨. 이를 계기로 친구가 된 두 사람의 모습은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1988)에 담겨 있다. 바르다의 카메라 앞에서 버킨은 노화와 모성, 두려움과 욕망을 털어놓고, 꿈꾸던 인물들로 분하며 다양한 삶을 체험한다. 바르다의 카메라에 기록된 그의 해사한 미소는 오로지 아녜스 바르다이기에 담아낼 수 있었던 제인 버킨의 초상으로 남아 있다.

이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생각을 말하는 버킨에게, 바르다는 그 이야기를 글로 써보라며 북돋웠다. 버킨의 자유로운 상상은 여성에게 집착하는 15세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아무도 모르게>의 각본이 되었다. 아녜스 바르다가 영화의 연출을 맡았고, 바르다의 아들 마티외 드뮈가 주인공 소년 줄리앙을, 버킨의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그의 친구 루시를 연기하며 함께 등장했다. 바르다와 버킨의 우정은 한낮의 호숫가에서 함께 음악을 즐기는 폴린과 수잔 가족의 모습이 담긴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의 엔딩과 겹쳐지며 감동을 더했다. 바르다가 세상을 떠나던 순간에도, 버킨은 그 곁을 지켰다. 각자의 상상을 함께 실현하던 두 사람은 생의 끝까지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