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배우, 각본가와 제작자로 만난 여성 영화인들은 서로의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우정을 기록했고, 오늘날 영화계는 여성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여기, 작품 안팎을 오가며 연대를 이어온 여자들이 있다.

Marguerite Duras & Jeanne Moreau

“두 대스타와 함께 클리셰를 전복하며 영화를 찍는다는 게 좋았어요. 여성의 리듬을 존중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여자들끼리의 의기투합은 내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죠.”

–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 레오폴디나 팔로타 델라 토레, <뒤라스의 말>, 마음산책, 2021

1960년, 영화 <모데라토 칸타빌레> 속 절망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여성 앤을 연기한 잔 모로는 그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 작품의 각본을 쓴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모로의 눈빛을 오래 기억했고, 몇 년 후 영화 <나탈리 그랑제>의 메가폰을 잡았을 때 그를 찾았다.

당시 모로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쥴 앤 짐> <연인들>에 출연한 세계적인 스타였지만 ‘자유분방한 신여성’이라는 타이틀 아래 줄곧 선정적인 연기를 선보여야 했다. 그런 그에게 뒤라스가 제안한 역할은 ‘익명의 여성’이다. 폭력과 불안의 기운이 감도는 집 안에서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창밖을 내다보는 <나탈리 그랑제> 속 모로는 몇 마디의 대사와 건조한 표정으로 당대 여성의 삶을 표현한다. 뒤라스는 모로의 몸이 아닌 떨리는 눈동자와 뒷모습을 담았고, 이후 모로는 뒤라스의 카메라 앞에서 비로소 온전한 자신이 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두 사람은 이웃이 되어 우정을 이어갔다. 뒤라스는 모로의 사생활을 둘러싼 루머와 비난에도 공공연히 그를 변호했고, 모로는 이를 잊지 않았다. 훗날 감독으로 데뷔한 모로는 여성들의 삶과 우정을 본인의 시선으로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뒤라스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영화 <마그리트 뒤라스의 사랑>(2001)에서 노년의 뒤라스를 연기하며 애도했다. “뒤라스는 내게 존재의 증거였다. 그를 연기하는 일은 나의 헌사였다”는 모로의 말은 동료이자 친구로서 서로를 지지하고 기억하던 두 사람의 우정을 가늠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