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은교’, ‘헤어질 결심’까지 30년간 한국 영화 현장을 지켜온 분장감독 송종희. 전시 ‘분장감독 송종희 30주년 아카이브展 CINEMA MAKEUP : 30 YEARS’를 통해 캐릭터가 탄생하는 과정과 분장의 본질, 그리고 한 인물을 완성하기까지의 철학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먼저 마리끌레르 독자와 시청자분들께 직접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영화 분장감독 송종희입니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 영화 현장에서 분장사로 일해왔고, 현재는 ‘미모스’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후배들과 함께 영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화 분장 30년의 시간을 담은 전시 <분장감독 송종희 30주년 아카이브展 CINEMA MAKEUP : 30 YEARS>를 열게 되셨는데요. 전시를 직접 소개해 주세요.
이번 전시는 분장팀이나 분장감독이 영화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또 하나의 캐릭터가 완성되기까지 어떤 준비 과정을 거치는지를 보여주는데요. 처음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단계부터 최종적으로 선택된 스타일, 작업 과정에서 제외된 시안,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도구들까지 함께 전시했고요. 한 인물을 구현하기 위해 저희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어떤 고민을 거쳤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드리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분장팀도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참여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내실 만큼 영화 분장에 깊은 애정을 쏟아 오셨는데요. 감독님이 30년 동안 한결같이 이 일을 이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시나리오를 받으면 처음 접근하는 방식이 영화 속 인물을 어떻게 예쁘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만들지를 보기 이전에 그 인물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먼저 그 서사에 대한 관심을 가져요. 그래서 실제로 제가 그 인물처럼 살아 보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접한 수많은 캐릭터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는 시간이 제가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이 영화판에서 분장사로 남게 된 기계가 된 것 같아요.
전시를 둘러보다 보면 감독님이 영화 속 인물을 구현해 내는 데 있어 헤어스타일에 비중을 두고 있으신 게 느껴지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헤어 이외에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분장에서 특히 헤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얼굴은 배우의 연기를 통해 감정이나 시간의 흐름처럼 여러 가지 상태를 표현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머리카락은 그보다 더 본질적인 부분까지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최민식 배우가 연기한 <올드보이> 오대수의 악성 곱슬머리는 인물 안에 쌓인 분노를 표현하고 있어요. 캐릭터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헤어 스타일에서 마저 드러나게 설정한 것이죠. 또 <헤어질 결심>에서 박해일 배우가 연기한 해준의 자연스러운 웨이브 헤어는, 해준이 내면에 지닌 부드러움과 단단한 카리스마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완성된 스타일이에요.
저는 인물을 이야기할 때 헤어스타일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자체에 관심을 가져요. 어떤 걸음걸이를 가졌는지, 손가락의 모양은 어떤지, 피부와 머리카락의 결은 어떤지 등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상상해 볼 수 있거든요. 평소에는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어떤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는지, MBTI는 무엇일지처럼 아주 사소한 부분부터 시작해서 인물을 깊이 파고들어요. 그렇게 그 사람의 삶과 성격을 충분히 이해한 뒤, 그 서사가 자연스럽게 담긴 스타일을 만들려고 노력하죠. 이런 고민이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서 완성된 스타일이어야 관객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결국 감정 이입이 중요한 매체잖아요. 영화 속 인물이 관객에게 진짜 존재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 그 인물이 이끄는 이야기도 함께 힘을 얻게 되죠.
배우나 감독이 처음에는 낯설어했던 콘셉트를 끝까지 설득한 순간도 있었을 테고, 반대로 준비한 아이디어를 현장에서 과감하게 내려놓은 경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감독님은 자신의 선택을 밀어붙여야 할 때와 포기해야 할 때를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시나요?
영화 분장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표현하는 데 적합하냐, 그렇지 않으냐”인 것 같아요. 배우나 감독님들이 어떤 스타일에 대한 전환을 요구할 때 그게 그 인물을 표현하는데 더 적합하다면 저는 제 고집을 피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단순히 스타일 변화에 대한 요구라면 지지 않고 설득하려고 하죠.
그 판단이 가장 어려웠던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영화 <은교>를 작업할 때는 특수분장을 준비하는 데만 6개월에서 1년 가까운 시간을 쏟았어요. 한 번은 12시간에 걸쳐 사전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기술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결과였지만 그 안에는 이적요라는 인물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 순간 ‘뭔가 잘못됐다’라는 걸 깨달았죠.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난 분장이라도 그 안에서 인물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저는 그것을 실패한 분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때의 경험은 분장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 중요한 전환점이었고, 지금까지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 남아 있어요.
촬영이 끝나면 배우의 얼굴에서 지워지는 분장이라는 작업이 이번 전시를 통해 그 과정과 시간이 하나의 기록으로 남게 된 것 같은데요. 관람객들이 전시를 관람하기 전 알고 보면 좋을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번 전시에서는 여러분이 영화에서 만났던 친숙한 캐릭터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나 보실 수 있어요. 최종 캐릭터가 완성되기까지 다양한 시도들, 그리고 분장이 구현되는 과정을 담고 있죠. 프리프로덕션과 촬영 현장에서 직접 그리거나 메모하고 낙서했던 것들까지 함께 전시했고요. 영화 속 한 인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과 고민의 흔적을 따라가며 관람하시면 전시를 더욱 흥미롭게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마무리 인사 부탁드립니다.
올해로 분장 일을 시작한 지 30년이 됐어요. 그동안 한 길을 버텨온 시간을 자축하고, 제가 지나온 작업을 한자리에서 돌아보고 싶어 이번 전시를 기획했는데요. 전시를 통해 제가 지난 30년 동안 어떤 인물들을 만나고, 어떤 마음으로 작업해 왔는지 함께 느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