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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는 남자친구와 6개월째 만나고 있다. P와 남자친구는 당연히 인스타 친구, ‘인친’이다. 문제는 그가 올리는 포스팅 어디에도 P는 흔적조차 없다는 데 있다. 심지어 한번은 그녀가 보내준 풍경 사진을 마치 자신이 찍은 양 자기 인스타에 올리면서 ‘#어쩐지한가한오후의산책’ 따위의 당최 혼자였는지 둘이었는지 알 수 없는 해시태그를 다는 것이다. 더 화가 나는 건 거기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은 죄다 여자다. 결국 남자친구에게 커플 사진을 포스팅해줄 것을 공식 요청한 P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내 얼굴 사진도 잘 안 올리는걸? 요즘 같은 험한 세상에 그렇게 얼굴 팔리는 거 너한테도 안 좋아. 그리고 난 단 한 번도 인스타에서 내가 싱글이라고 말한 적 없어.”

내심 괜한 변명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여자친구랑 오손도손 행복해 죽겠다는 사진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낯부끄러운 짓은 남자로서 도저히 할 수 없다는 대답이 더 솔직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아, 몰라. 난 여자친구가 페이스북 프로필 상태를 ‘연애 중’으로 바꾸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어. 근데 이제는 데이트할 때마다 자기랑 같이 찍은 사진을 꼭 올리래. 그런 거 싫어. 괜히 유난 떠는 것 같아. 난 여친 있는 거 자랑하려고 페북을 하는 게 아니라고.” 여자친구와 비슷한 일로 다툰 남자 동창 K는 툴툴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모르긴 몰라도 여자친구의 사진을 좀체 SNS에 올리지 않는 남자들 중 많은 경우가 K의 이야기에 크게든 작게든 공감하는 듯하다.  ‘불순한 저의’가 있었노라 고백한 S는 이런 얘기를 했다. “여자친구가 계정만 있고 페북을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 편이라 내가 여친을 공개하지 않은 줄 몰라. 내 사진에 여자인 페친들이 ‘좋아요’를 많이 눌러주면 그게 괜히 흐뭇하더라고. 근데 진짜 양다리나 바람을 생각하는 건 아니야. 아직 나 죽지 않았어, 뭐 이런 심정? 이성적인 매력을 확인받고 싶다고나 할까? 솔직히 그래.” 이런 S의 소심한 일탈은 스스로 끝낼 가능성은 없어 보이고, 어찌 되었든 여자친구에게 걸릴 때까지는 계속될 듯하다.

한편 연애 좀 해봤다는 H는 여자지만 남자들의 이런 SNS 사용법에 찬성하는 주의다. “헤어지고 나서 전 남친의 흔적이 남은 수많은 포스팅을 정리하는 게 진짜 고역이더라. 생각해봐. SNS에 연애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남자친구를 만나면, 헤어지고 괜히 새벽 2시에 전 남친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그렇게 많던 나와 함께한 때를 담은 포스팅이 하나도 남김 없이 사라진 걸 보고 속 쓰릴 일도 없을 거 아니야. 커플 포스팅, 연애 끝나면 다 부질없는 짓이야. 피곤하게 뭐 그런 거에 일희일비하니?” 어쩐지 미래지향적이기도, 염세적이기도 한 그녀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SNS의 세계에 자신의 연애 사실을 알리지 않는 이들은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의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져 차라리 드러내지 않는 쪽을 택한다. 그런 마음도 이해되지만, 그 시선을 얼마나 신경 쓰느냐 하는 온도 차는 연인마다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이런 일련의 사태를 방지하고자 아예 친구도 맺지 않고 서로의 SNS를 공유하지 않는 커플도 있다고 한다. 글쎄, 상대가 회사 상사라면 몰라도 연인을 상대로 좀 야박한 거 아닐까 싶긴 한데, 연애 관계에서 둘 사이의 일은 둘만이 안다는 불변의 진리를 생각하면 안 될 게 뭐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