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쉐 @혜화
제법 유명한 곳이다. 마르쉐가 열리는 시간인 오전 11시가 되기도 전에 행사장이 북적인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얼굴을 직접 마주 하고 물건을 사고 파는 도시의 시장, 농부가 자신이 수확한 곡식과 채소를 어떻게 키웠는지 설명하고 요리사는 음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려주며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천천히 만든 나무 도마와 크고 작은 소품들이 마르쉐를 채운다. 마르쉐에는 그렇게 서로 다른 방법으로 지구를 아끼는 사람들이 모인다. 3월에 열린 마르쉐@혜화의 주제는 ‘씨앗’이었다. 몇 백 년 동안 한 지역에서 이어오고 있는 씨앗, 힘들게 지켜온 토종 씨앗과 더불어 쌀, 밀, 콩, 뿌리채소, 과일, 달걀 등 씨앗과 다름 없는 먹거리를 주제로 도심 속에 시장이 섰다.
전라남도 장흥에서 올라온 농부는 토종 남도 콩인 장콩으로 만든 청국장을 내놓았다. ‘장꽃핀’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농부의 된장과 고추장, 청국장은 모두 오랜 세월 대대로 내려온 종자로 지은 농사의 결과물이다. 지금은 동네에서 딱 4명의 농부가 토종 남도 장콩 농사를 짓는다.
“남도 장콩은 장을 담그기 좋은 콩이에요. 고소하고 쫀득하거든요. 우리가 만드는 청국장은 미리 만들어놓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황토방에서 천천히 만들어요.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파는 만큼만 만들죠. 된장과 고추장, 간장도 모두 3년 동안 숙성된 거예요.”
마르쉐의 시작부터 함께해온 사진 스튜디오 로프트 디는 경기도 광주에서 제주로 스튜디오를 옮겼다. 4월에는 제주에 카페를 열 예정이라고. 로프트 디는 우도의 땅콩과 꿀을 넣어 만든 땅콩잼을 들고 왔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고소하고 달콤한 땅콩잼을 넣으면 땅콩 라테가 만들어진다. 텃밭을 권하는 농부들도 마르쉐에 함께했다. 우보 농장은 토종 쌀과 함께 쌀로 만든 막걸리, 뻥튀기 그리고페트병에 넣어 키울 수 있는 다양한 토종볍씨를 소개했다.
준혁이네 농장이 가져온 제철 채소는 이날도 인기였다. 남양주에 있는 준혁이네 농장은 70여 품종의 채소를 소량 재배한다. 한 품종을 대량생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많은 품종을 소량 생산한다는 건 농약이나 기타 다른 약품을 쓰지 않고 자연의 힘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뜻이다. 다양한 품종이 한 밭에서 자라다 보니 작물 하나가 병충해 피해를 입어도 성질이 다른 옆 작물들은 피해를 보지 않는다. 그런 만큼 농약을 덜 쓰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준혁이네 농장은 자연의 힘에 기대어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마르쉐에는 오늘도 서로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농부와 요리사, 수공예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도 지구를 위하는 삶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파릇한 절믄이, 김나희
“옥상 텃밭에서 따온 방울토마토는 신기하리만큼 맛있어요. 바질과 딜도 키우는데 사서 먹는 것보다 훨씬 신선하죠. 약을 치지 않고 키운 깻잎은 알싸한 맛이 너무 좋아요. 옥상 텃밭에 작물이 가득 열린 날이면 마트 대신 텃밭에 들러 양손 가득 채소를 담아요.”
광흥창과 한강 노들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 젊은이들 모임인 비영리단체 ‘파릇한 절믄이’의 김나희 대표가 도심 한복판에서 땅과 햇빛, 바람의 힘만으로 자란 작물들을 소개하면서 연신 감탄한다. 농사가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파릇한 절믄이는 같은 마음을 지닌 도시농부들이 함께 채소를 키운다. 김나희 대표를 제외한 다른 농부들은 모두 각자 본업이 있기 때문에 작물을 매일 돌볼 수 없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텃밭에 들러 작물을 살핀다.
“외국에서는 푸드 마일리지 때문에 도시 농업이 시작됐어요. 그런데 한국은 좀 다른경우인 듯해요. 제주도에서 나오는 것들도 모두 로컬 푸드에 속하니까요. 한국의 도시 농업은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데 의미가 있어요. 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데, 바쁘면 끼니를 대충 때우며 살아가죠.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도시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 보면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리라 확신해요.”
파릇한 절믄이는 마음이 맞는 젊은이들끼리 농사를 함께 지을 뿐만 아니라 텃밭에서 자란 채소들을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올해부터 매주 목요일, 텃밭 작물을 요리해 함께 식사하는 ‘목요 밥상’의 시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라벤더가 자라면 비누 만들기 수업을 하거나 여러 채소를 활용한 드로잉 클래스도 종종 열면서 텃밭의 작물을 함께 소비하고 먹을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 커지기를 기대한다.
“농사는 결코 마음 같지 않아요. 작물들이 날씨에 어떻게 반응할지도 알 수 없고 손도 많이 가는 일이죠. 한여름에는 아주 이른 새벽이나 해가 진 다음에야 밭일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재미있어요. 지난해 마늘 농사가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 가보니 마늘종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고 작년에 심어놓은 튤립도 싹이 보이더라고요. 많은 작물을 수확하기 위해 도시 농사를 시작한 건 아니에요. 다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먹을거리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농부에게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나빠진 환경이 우리의 식량과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달키친, 강지민
“생명은 저마다 에너지를 품고 있죠. 햇빛과 물 등 자연의 균형이 빚어낸 채소 역시 마찬가지고요. 요리하면서 채소로부터 좋은 기운을 얻으면 그 기운을 음식에 담아요. 얼마 전 달래를 구하러 논산의 어느 농장에 갔어요. 세 시간 동안 흙을 만지며 달래를 캤는데 굉장한 힘을 받았어요. 보약을 먹고 난 기분이랄까요. 몸이 활짝 열리는 듯 개운해졌어요.”
채소를 중심으로 조화로운 한 그릇의 음식을 빚어내는 ‘달키친’의 강지민 요리사. 일상에 놓인 다양한 선택 앞에서 지구에 좀 더 이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고 싶은 그녀에게 요리는 좋은 도구가 되어준다. 그녀가 사용하는 재료 중 약 80%는 농장을 직접 찾아가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고, 농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거둬온 것들이다. 10년간 비건 채식을 하며 생긴 식재료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환경으로 이어졌다.
제철 채소 요리를 기본으로 하는 만큼 가장 큰 숙제는 재료 수급. 주로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소농인과 거래하는 터라 겨울에는 정상적인 식당 운영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달키친은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팝업 레스토랑으로 운영 방식에 변화를 줄 예정이다. 그녀의 요리를 정기적으로 맛볼 수 있는 곳은 도시장터 마르쉐@. 시그니처 메뉴인 ‘달버거’를 선보이는데 오픈 전부터 길게 줄이 늘어설 만큼 인기다.
“2007년 식당을 운영하면서 개발한 메뉴예요. 열두 가지 곡물과 연근, 감자 등 제철 뿌리 채소로 패티를 만들죠. 여기에 로메인이나 상추 등 제철 잎채소를 더하고, 봄달래와 레몬, 소이네즈와 사과배 브라운 소스를 입힌 다음 마리네이드한 당근을 토핑해요.” 3월 13일에 열렸던 마르쉐@혜화에서는 ‘준혁이네 꽃상추와 로메인’ 을 사용했다고.
“식재료를 대하는 태도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유행처럼 우리 생활을 장악하기보다 삶의 저변으로 은은하게 퍼져 나갔으면 좋겠어요. 채소 하나를 사더라도 이게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하고요. 대단한 레스토랑에 가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것만큼이나 소금에 절인 당근과 함께하는 소박한 저녁 식사도 가치 있다는 것을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요. 도시 생활에서 오는 피로를 풀기 위해 반드시 큰 비용을 치러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요.”
오르그닷, 김진화
겉보기에는 기능성 원단으로 제작된 가방 같지만 특별한 사정을 지니고 있는 메시 백이 있다. 윤리적 패션을 지향하는 소셜 벤처 ‘오르그닷‘이 제작한 ‘Once I was a Plastic Bottle’이라는 이름의 이 백은 말 그대로 폐기된 페트병을 소재로 제작됐다. “페트병과 폴리에스테르는 결과적으로 분자구조가 동일해요. 버려진 페트병을 수거한 뒤 작게 조각내 원단으로 뽑는 것이 가능하죠. 이 메시 백하나를 완성하는 데 두 개의 폐페트병을 사용합니다.” 한 개의 페트병이 완전히 소멸하기까지 100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 개의 가방이 2백 년의 시간을 구하는 셈이다.
2009년 지구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문을 연 오르그닷은 건전한 패션 생태계를 소망한다. 의미를 강조하다 보면 때로 아름다움을 포기하거나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오르그닷은 의미와 기능, 아름다움 모두를 아우른다. 재생폴리에스테르 등 재생 소재뿐만 아니라 친환경 소재도 이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이들이 운영하는 남성 캐주얼 브랜드 AFM은 이번 S/S 컬렉션에서 오가닉진을 선보인다.
“아동 노동을 착취하지 않고 살충제도 뿌리지 않은 면화로 제작했습니다. 친환경 염색 기법을 사용하고요. 장기적으로 지구에 이롭지만 아토피나 피부 질환을 예방한 다는 점에서 개인의 건강까지 지킬 수 있죠. 친환경 농산물이 그 가치를 인정받기까지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어요. 친환경 의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당장의 이익이 눈 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국 이 이로움이 돌고 돌아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올 것이라 봐요.”
어반비즈서울, 박진
대학교 진학을 위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남자에게 서울은 마치 잿빛 도시 같았다. 서울 생활은 답답했고 정을 붙이기 쉽지 않았다. 도시보다는 시골을 좋아하며 한곳에 정착하기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남자는 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양봉이라면 도시에서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도시 양봉가가 되었다. 양봉을 시작한 지 올해로 4년 차가 된 ‘어반비즈서울(Urban Bees Seoul)’의 박진 대표는 이제 노들섬과 명동 유네스코 회관, 수원시 평생학습관, 송도 고등학교 등 열세 곳에서 양봉장을 운영하고 있다. 많지 않은 벌통을 가져다 놓고 벌이 실컷 먹고 남는 벌꿀을 모아 ‘슈퍼 허니’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명동 유네스코 회관 양봉장의 벌들은 주로 남산과 가로수 그리고 옥상의 꽃들에서 꿀을 얻죠. 벌을 키운다는 건 주변 환경을 돌본다는 것과 같아요. 벌이 꿀을 잘 딸 수 있도록 꽃과 나무가 있어야 하니까요. 올해는 서울시에서 한강 잠원지구 쪽에 6천 평 규모의 밀원(벌이 꿀을 채취하는 나무) 나무를 심어요.”
어반비즈서울은 도시 양봉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 활동도 하고 있다. 체험장에서 열리는 양봉 수업에서 어른과 아이들은 침이 없는 수벌을 직접 만져보기도 하고(암벌에만 침이 있다.) 손가락에 꿀을 발라 벌에게 먹여 보기도 한다. 교육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벌과 부쩍 가까워진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는 도시에서 얻는 꿀은 오염되었을 거라는 짐작이다. “벌은 꿀을 채집하면 한 번 소화를 시켜 다시 내뱉어요. 그렇게 내뱉은 꿀을 다른 벌이 받아 한 번 더 걸러낸 다음 벌집에 저장하죠. 정기적으로 벌꿀 검사를 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요.” 박진 대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 양봉을 경험하고, 벌꿀이라는 단어에서 ‘꿀’보다는 ‘벌’에 관심을 두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오랑쥬리, 주례민
가드닝은 정원에 나무와 꽃을 심거나 잘 자라도록 보살피는 일, 정원의 식물을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원래 살던 곳에서 우리 집 정원까지 먼 길을 왔으니 흙을 깔아 새 집을 만들어주고 새로운 곳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가드너의 일이다. “정원은 인위적일 수밖에 없어요. 산과 들에 있어야 할 식물을 전혀 다른 공간에 데려오니까요. 가드너는 아름다운정원을 만들기 위해 꽃과 나무를 이용해 공간을 디자인하죠. 이때 가장 중요한 건 식물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정원을 만드는 가드너의 의도와 식물의 본모습을 아끼는 마음이 식물의 모양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야 하죠.” 정원을 디자인하고 가꾸는 곳, ‘오랑쥬리’의 주례민 대표는 정원을 디자인할 때 인위적인 것과 자연스러움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집에 식물을 들인다는 건 계속 돌봐야 하는 존재가 있다는 얘기다. 꼭 어엿한 정원이 아니라 실내에 식물을 들이는 일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흙이 마를세라 물을 줘야 하고 마른 잎이 있으면 손으로 훑어주는 등 늘 신경 써야 한다. “가드닝은 기분 좋은 노동이라고 생각해요. 몸은 좀 힘들어도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즐겁죠. 제가 꾸며놓은 정원에서 식물을 키우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 좋겠어요. 잠깐 즐거움을 느끼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식물을 돌보고 식물과 함께하는 삶에 익숙해지길 바라요.”
식물의 생존에는 빛과 바람, 물이 있어야 한다. 식물이 잘 살아가지 못하는 곳은 결국 사람도 잘 살 수 없는 공간이다. 메마르고 바람이 통하지 않고 빛이 잘 들지 않는 공간에 화분을 가져다 놓으면 당연히 잘 자랄 리 없다. “식물이 건강할 수 없는 곳은 사람에게도 좋은 공간이 아니에요. 오스트리아에 사는 친구는 알프스의 허허벌판에 집을 짓고 살아요. 봄이 되어 풀이 올라오면 뜯어다가 말려 종류별로 병에 담아두죠. 그리고 배가 아프거나 감기에 걸렸을 때 차로 우려 마셔요. 그렇다고 그 친구가 대단한 환경운동가는 아니에요. 다만 자연 속에 살고 싶어 하고 그 안에 있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거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식물을 가까이하는 시간이 삶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