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섹스 릴레이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오래 사귀면서 많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 사실 별별 일을 다 겪었다. 크리스마스 저녁 명동 길거리에서 우리가 사람들을 치는 건지 사람들이 우리를 치는 건지 모르는 채 끊임없이 부딪치는 숨 막히는 인파도 겪어보았고, 예약도 안 하고 안이하게 있다가 이브 날 하루 밤 동안 만실인 모텔을 아홉 군데나 순회한 기억도 있다(대한민국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사랑하고 있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성탄 미사를 위해 외출한 틈을 타 그의 방에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섹스를 한 적도 있다. 취직하고 열심히 돈을 모아 독립하면 크리스마스에 남자친구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일단 코트 속에 야심차게 준비해 입은 섹시한 산타 속옷을 자랑하면서 한 번, 크리스마스 쿠키를 만들겠다고 반죽을 조물조물하다 그의 백허그에 녹아 그대로 주방 아일랜드 식탁 위에서 한 번, 반짝이는 트리 조명 아래서 푹신한 러그에 얼굴을 맞대고 누워 음악에 취해 또 한 번 섹스를 하고 싶다. 어른들의 야릇한 소꿉놀이랄까.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낯선 공간에 어색하지 않은 온전히 우리만의 밤. 아마 서로에게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지 않을까. M, 26 세, 대학원생

 

한없이 뜨거우리

이번 성탄절은 그냥 ‘핫’하면 좋겠다. 비키니에 산타 모자를 쓰고 크리스마스 기분을 낸다는 호주 사람들처럼 말이다. 맨다리에 따끈한 모래알이 닿는 골드코스트의 백사장에서 훤칠한 서퍼들이 파도를 가르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그중 유난히 눈이 반짝이는 어느 청년을 만나는 거다. 어스름한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둘이 깔깔대며 이야기를 나누고, 간질이듯 오가는 적당한 스킨십의 단계를 거쳐, 드림캐처와 해먹이 걸린 어쩐지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지는 그의 아파트에서 아침이 올 때까지 몇 번이고 후끈한 사랑을 나누는(그에겐 서핑으로 다진 체력이 있으니까) 여름날의 크리스마스이브. 옆에서 나의 이국적인 ‘급만남’ 스토리를 듣던 친구는 아직도 영화 <테이큰>의 교훈을 새기지 못한 안타까운 영혼이 여기 있다며 혀를 찼다. 뭐, 사실 그렇다. 요는 여름도, 호주도, 서퍼도 아니다. 남는 연차도 다 쓰지 못하고 이번 연말에도 사무실의 굳건한 지박령이 될 직장인에게는 이 모든 게 다 한낱 꿈이라는 거다. 에라이. P, 29 세, 회사원

 

트리 아래서 피어난 사랑

좁은 원룸이지만 올해는 큰맘 먹고 트리를 들여놓으려 한다. 트리 장식의 핵심은 조명도 오너먼트도 아닌 뭐니 뭐니 해도 나무 아래를 수놓는 선물 보따리들이라 믿는 나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남자친구와 어떤 선물을 주고받을지 고민하다 한 가지 야릇한 생각을 떠올렸다. 각자 상대에게 시도하고 싶은 섹스 판타지가 담긴 선물을 몰래 준비하는 거다. 대망의 성탄절, 트리 아래 앉아 포장지만 보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상자들을 하나씩 열어본다. 어느 상자엔 간지럼 태우기용 깃털과 부드러운 가죽 채찍이 나오고, 다른 상자에선몸 어느 한구석도 가릴 수 없는 아찔한 언더웨어와 가터벨트, 실크 스타킹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규칙은 상자를 하나씩 열 때마다 나오는 아이템을 반드시 사용해볼 것. 그렇게 둘이 온종일 서로를 탐하는 흐뭇한 결말을 상상한다. 딱 내 그곳 사이즈에 맞는 딜도 겸 바이브레이터를 상자 속에서 발견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가 좋아하는 색의 날렵한 스틸레토 힐을 신고 하는 섹스도 상상된다. 새벽같이 일어나 선물 상자 주변을 기웃거리던 어린 시절 이래로 가장 설레는 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달 카드 명세서가 조금 두려울 수는 있을지언정 말이다. I, 32 세, 프리랜서

 

메리 호러 크리스마스

지난 추석 연휴에 동유럽을 여행하며 알게 된 설화가 있다. 성탄절에 나타난다는 크람푸스에 얽힌 이야기인데, 크람푸스는 산타클로스처럼 자루에 선물을 담아 오기는 커녕 나쁜 행동을 한 아이들을 자루에 담아 지옥으로 데려간다는 무시무시한 도깨비다. 산타클로스의 호러 버전이라 할 만한 크람푸스 때문에 그 동네 아이들은 성탄절 밤 두려움에 떨지 모르지만, 남자친구와 색다른 크리스마스 밤을 보내고 싶던 나는 문득 크람푸스를 침대에서 만나면 어떤 강렬한 섹스를 하게 될지 떠올리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홀로 곤히 잠든 내게 다가오는 음험한 손길, 올 한 해도 막 산 나를 꾸짖는 근엄하지만 색기 있는 목소리, 반항하려 해도 벌을 주겠다며 침대에서 나를 제압하는 그의 나쁜 손길 등등. 남자친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시도한다면 달게 받을 벌이자 역할극이다. 물론 실제 설화에서 묘사되는 크람푸스는 오금이 저리도록 무서운 모습이라 아닌 밤중에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으려면 한참 순화된 코스튬이어야 할 테지만, 중요한 건 그 두렵지만 치명적인 관능의 분위기니까. 그의 연기력이 중요할 터다. 크리스마스의 망상이 하나 더 늘었다. L, 29 세,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