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련 정책이 만들어지는 건 그동안 남성 편향적이었던 우리 사회의 폐쇄성을 없애고 다양성을 높이는 아주 기본적인 첫 단추라고 봅니다. 그러니 여성 정책은 단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아가 우리 사회 내부의 다양성을 높이는 일에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수민 의원

안태근 검사 성추행 사건으로 인사를 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할 말은 하고 인터뷰를 시작 해야겠죠? 최근 방송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진행자로부터 ‘여성 국회의원에게는 이런 일이 없죠?’라는 질문을 받았고요. 구체적이고 예민하게 해석하자면, 그 질문에는 성추행은 ‘조직 내 상하 구조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문제’라는 1차 전제가 깔려 있는 거죠. 국회의원은 하나의 입법기관이고, 말 그대로 ‘상사’가 없다는 사실 한 가지 사실로만 접근한 아주 단순한 수학적 계산, 산수에서 나온 불쾌한 질문이었죠.

마찬가지로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기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하는 것 역시 유해할 정도로 무지한 질문이고요. 이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여성이라는 존재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만연한가입니다. 사회적 성취와 지위, 교육 수준, 회사 구조와 시스템 등이 성차별과 성범죄라는 영역 안에서만큼은 그 어떤 영향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건이죠. 이재정 의원님께서 굉장히 용기 있게 본인의 특정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지만, 여성 의원들끼리도 ‘그런 경험 없는 사람이 국회에 한 명이라도 있을까?’, ‘유년 시절을 무탈히 지나온 여성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라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하다못해 사촌 오빠, 동네 아는 오빠, 교사 등 가해 인물은 너무 많고 일상화돼 있죠.

작년에 일명 ‘김지영법’ 발의로 주목받았습니다. 남녀 임금 격차 해소 방안으로 고용주에게 근로자의 임금 정보를 공개할 것과 부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지요. 어떤 계기로 법안을 구상하게 됐습니까? 헌법을 쭉 보면 남성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문장은 단 한 줄도 없어요. 그런데 여성의 권리 보호에 대한 문구는 총 세 번 등장합니다. 헌법 제32조 제4항, “여성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제34조 제3항,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해서 노력하여야 한다.” 제36조 제2항,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종합해보면 여성은 어떤 식으로든 보호되어야 한다는 거죠. 이렇듯 헌법에서 여성은 아이와 노인 정도의 사회적 약자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 그들의 사회적 역할과 성취를 본다면 덮어놓고 보호해야 하는 존재인지 의문이 들어요. 열등한 지위를 인정하는 수준으로 여성들이 헌법에 머물러 있어야 하느냐는 거죠. 여성들은 보호와 배려를 바라지 않아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새 판이 필요할 뿐입니다. 보호주의에서 동등권으로 개념이 진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중 하나가 부성에 대한 권리를 헌법에 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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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성 권리 추가는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에 의문을 품고 시작된 법안이네요. 헌법에는 ‘부성’이 존재하지 않아요. 아이를 사랑하는데 왜 모성, 부성을 따질까요? ‘모성’이라는 단어를 넣는 건 그 이면에 아이를 키우는 역할은 무조건 여성이 맡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두는 겁니다. ‘모성을 보호하자’라고 말하면 누가 반대하겠어요? 엄마에게 출산휴가를 90일간 쓰게 해준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는 아이를 키우는 역할이 엄마에게 있다는 기본값을 바꾸는 정책은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만들어진 여성 정책 대부분이 이런 식입니다. 그 법안들이 오히려 여성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고착화시킨 거죠. 이런 이유로 남성 근로자의 부성 보장에 관한 사항을 일·가정 양립에 근거가 될 수 있도록 법을 만든 겁니다.

여성을 위한다고 만들어졌던 법안들이 도리어 여성의 역할을 특정화시켰다는 말이군요. 그런 사례는 많아요. 공공기관이나 대형 마트 여자 화장실에는 기저기 교환대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교환대가 왜 여자 화장실에만 있어야 합니까? 제가 화가 나서 남자 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해달라고 법안을 발의했어요.

문제 해결 방식의 이면을 봐야 한다는 의견이지요? 국회 내에서 저출산에 대한 문제의식이 굉장히 높아요. 여성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물질적, 환경적 지원에 대한 법안도 많고요. 주로 기존의 문제 해결 방식, 즉 임신한 여성에게 물질적 혜택을 주자는 것인데 그런다고 여성들이 아이를 많이 낳을까요? 안 낳아요. 집이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으니까요. 2016년 대한민국 평균 출생률이 1.17명이에요. 이는 전국적인 수치인데 지역별로 따지면 서울시는 0.94명으로 전국 꼴찌고, 세종시는 1.82명으로 독보적인 전국 1위입니다. 세종시만 육아 혜택을 많이 줘서 그럴까요? 아니에요. 세종시에는 아이를 낳고도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출산은 삶의 안정성의 문제입니다. 청년 실업, 노인 문제 등 큰 사안을 다룰 때는 문제 이면의 역학 구조를 따지고 문제 발생 지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의 국회는 1차원적인 접근만 하고 있어요.

혹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도 가졌던 문제의식인가요? 아니요, 생각하지 못했어요. 여의도에 오기 전에는 친구들과 스타트업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아이를 가지면 회사 안에 보육원을 만들자고 할 뿐 국가에 요구해야 하는 권리라는 걸 몰랐고요. 여성이 임신과 출산의 주체라고 생각했었죠. 물론 주체는 맞지만 단독 주체는 아니죠. 남성도 아이를 낳는 거예요. 단지 여성의 몸을 빌려서요.

남녀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임금 정보를 공개하는 ‘임금 정보 청구권’의 경우 일부에서 지나치게 개혁적인 법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법안을 둘러싼 우려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 혹은 ‘상대방의 월급을 아는 것까지 법으로 만들어야 돼?’, ‘너무 관료주의적이고 행정주의적인 법안 아니야?’라는 우려의 질문들이요. 법은 최후의 수단이니만큼 해당 법안이 없이 사회가 잘 운영된다면 이상적이죠. 법이 강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사회적인 공감대, 윤리적인 규범으로 해결되는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말하고요. 그럼에도 반드시 통과되어야 하는 법은 오랫동안 고착화된 문제를 뒤흔들 수 있는 법안이냐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임금 정보 청구권이 현재까지 고착화되어 있는 문제, 남녀 임금 차별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안이라고 생각했고요.

임금 정보 청구권 발의 과정에서 참고했던 선례가 있었나요? 인권 선진국이라 말하는 나라에서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어떻게 법제화하고 있나요? 덴마크는 2006년부터 35인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성별로 구분된 남녀간 임금 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지영법 역시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법안이었고요. 스웨덴에는 ‘동등기회법(Equal Opportunities Act)’이 있어요. 10인 이상을 고용하는 고용주에게 매년 임금 지급 관행과 임금 격차를 분석하고 동등 임금을 확보하기 위한 실행 계획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법입니다. 임금 격차 외에도 고위직에서 여성 비중을 높이기 위해 노르웨이는 공공 부문은 물론 사부문 주식회사의 이사회에 여성 임원 비율 40%를 유지하도록 법제화하고 있습니다.

여성과 소수를 향한 다양한 법안을 발의하며 느끼는 가장 큰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서는 본인 포함 총 10명의 국회의원 동의 사인을 얻어야 합니다. 요즘 여성 정책에 대해서라면 웬만하면 사인을 해주시거든요. 누구라고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60대의 남자 의원님이 남자 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가 있어야 한다는 법안을 검토하더니 본인은 아이를 다 키웠고 자기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안들과는 큰 흐름이 맞지 않으니 굳이 사인해주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동등한 권리 보호를 위한 법이 단지 여성법안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져 정책 지향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니 충격이었습니다. 앞으로 법이 통과하는 과정에도 이 프레임이 가장 어려운 점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요.

넘어야 할 허들이 많고 다양하네요. 지난 1년 반 동안 의원직을 수행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어요. 아마도 다른 의원들은 발의한 법이나 해결하고 싶은 사회문제 등 의정 활동과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으시겠지만, 전 하루에 꼭 한 번씩, 반드시, 틀림없이 받는 질문이 두 가지 있어요. ‘결혼 언제 해요?’ 그리고 ‘남자친구 있어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궁금해서 물어볼 수도 있겠죠. ‘밥 먹었니?’처럼. 하지만 여성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의원으로서 이 질문에 대해 예민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면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 결혼과 출산에 관해 아무 거리낌 없이 물어본다는 것, 스스로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다양성과 개성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여성이라는 프레임이라는 것이에요. 내가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건 신산업과 더 나은 국가 방향과 비전이지만 이를 이기는 게 여성이라는 프레임이에요. 국회의원이라는 직업보다 여성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더 강력하게 인식되는 거죠. 그런데 그 사회적 지위가 우등하게 위치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요. 의지와는 달리 한데 묶여 살아야 하는 것, 그게 힘든 일이죠.

여성 인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누군가는 유난스럽고 시끄럽다고 여기겠죠.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발언으로 여성들이 사회 내 새로운 언어를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이후 여성들에게 강요되었던 침묵이 깨졌다고 봐요.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련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동안 남성 편향적이었던 우리 사회의 폐쇄성을 없애고 다양성을 높이는 아주 기본적인 첫 단추라고 봅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감도가 있는 것처럼 여성 인권 향상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첫 단추가 끼워지면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조금 더 진보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될 거라 봅니다. 그러니 여성 정책은 단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아가 우리 사회 내부의 다양성을 높이는 일에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