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나눈 사랑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으로 허니문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남편과 나는 장고 끝에 인도 북서부의 도시 자이살메르에 있는 글램핑 리조트를 선택했다. 우리는 굴곡진 모래언덕과 그 위로 쏟아지는 햇살, 작은 모자를 쓴 낙타 등 떠나오기 전 상상한 모습을 뛰어넘는 이국적인 풍경에 반해버렸다. 하얀 텐트 모양의 객실은 마치 사막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모양새였다. 해가 저물고 달이 어스름하게 우리를 비추었다. 저녁을 먹고 야외 소파에 앉아 발끝으로 사막을 느껴보았다. 부드럽고 에로틱했다. 이어 소파에서 섹스를 시작할 때만해도 분위기에 취해 둘 다 한껏 흥분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삭막했으니, 오래지 않아 잔잔한 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입이며 코, 등과 바닥 사이로 느껴져 자칫 그곳에 들어갈까 싶어 화들짝 놀라 황급히 하던 일을 멈추어야 했다. 우리는 결국 야외 파티오에서 분위기를 잡고 서로를 열심히 애무하다가(살에 붙은 작은 모래알을 애써 무시하며) 침대로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타협했다. J(광고 회사 카피라이터, 29세)
와인과 별이 함께한 허니문
술 취향이 같아 사이가 깊어진 남편과 나는 허니문도 와인 너리 탐방으로 정했다. 키안티를 비롯한 이탈리아 북부 토스카나 지역의 와이너리를 둘러보기로 한 우리는 포도밭이 밀집한 지역의 한 부티크 호텔을 예약했다. 일정은 완벽했다. 술을 즐기고 알딸딸한 상태에서 나누는 섹스를 사랑하는 우리에게는 삼시 세끼를 와인과 함께하며 객실로 돌아오는 저녁 무렵엔 고주망태가 되지도 멀쩡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환상의 궁합으로 밤을 보내는 하루하루가 단순하면서도 더 바랄 것 없이 완벽했다. 섹스가 끝나면 나란히 누워 천장에 난 창 너머로 보이는 별이 총총한 하늘을 감상하다 잠이 들었다. 마지막 날 허니문 최고의 밤을 만들겠다고 침대로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가며 애무하면서 요란 떨다 큰맘 먹고 산 30만원을 호가하는 한정판 와인을 떨어뜨려 박살낸 건 꽤 속 쓰린 일이었지만. 우리는 다시 신혼여행을 가게 된다고 해도 주저 없이 와이너리 투어에 나설 것이다. G(식음료 회사 마케터, 30세)
내가 왕이로소이다
오랜 검색 끝에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외곽의 성을 찾아냈고 큰맘 먹고 스위트룸을 예약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양식의 성은 안팎으로 호화로웠고 잘 가꿔져 있었다. 과장을 좀 보태 기어 올라가야 할 만큼 높은 침대 프레임과 실크 자수가 놓인 리넨 침구, 원목 캐노피에 드리운 하얀 커튼 등 영국 사극에서 보던 바로 그 예스러운 침대에서 우리는 각자 백작과 백작부인이 된 양 연기해가며 신나게 사랑을 나누었다. 장작이 타오르는 오래된 벽난로 앞이며 욕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금빛 다리가 달린 욕조에서 나누는 섹스는 귀족 체험을 하는 듯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만 워낙 오래된 곳이다보니 종종 괜스레 으스스했다. 섹스를 열심히 하다가 침대 머리맡 벽에 걸린 초상화 속 인물과 눈이 마주친 것 같다며 화들짝 놀라던 남편의 겁먹은 얼굴은 지금 떠올려도 웃음이 난다. P( 패션 MD, 35세)
히말라야는 위대했다
짧은 일정 때문에 유럽이나 미주를 포기한 우리는 제3세계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하고 네팔을 택했다. 카트만두 근처의 리조트에 체크인을 하고 발코니로 먼저 나간 남편은 한동안 기척이 없었다. 그는 가만히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눈에 꽉 차는 파노라마로 펼쳐진 히말라야 산맥은 꽤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지만 장엄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발했다. 남편은 그 풍경에 압도당한 것 같았다. 우리는 숙소에서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이 발코니에서 보냈다. 12월 초의 네팔은 우리나라 가을 날씨와 비슷해 밤이면 제법 쌀쌀했지만 우리는 식사, 휴식, 심지어 섹스도 침대보다는 발코니에서 더 자주 했다. 이른 아침에 추워서 외투를 걸치고 하의만 벗어던진 채 마주 앉아 섹스를 할 때는 서로의 꼴이 우스워 키득거리기도 했다. 히말라야 산맥의 신비한(?) 정기를 받은 걸까, 약골인 그의 체력이 평소와 사뭇 다르게 강해져 신기해하기도 했다. 어쨌든 경건한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한 우리의 발칙한 한때를 지금도 종종 추억한다. 남편의 스태미나가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그때처럼 강했으면 좋으련만. H( 편집숍 오너, 35세)
해변의 키스
몰디브는 과연 몰디브였다. 쪽빛 바다와 백사장, 작열하는 태양, 섬에 펼쳐진 열대의 수풀은 오랫동안 꿈꾸던 허니문의 완전체였다. 우리는 숙소 앞마당에서 프라이빗 비치로 이어지는 본섬의 비치 빌라에 묵었다. 그곳에서 남편과 나는 저녁을 먹으러 나갈 때를 빼고는 숙소에 콕 박혀서 우리만의 <블루라군>을 찍었다. 고운 모래 위에 드러누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를 탐닉하다가 그대로 한숨 낮잠을 자고 일어나 열대 과일을 집어 먹으며 다시 야릇한 시선을 나누었다. 석양이 질 때쯤 바다에 슬며시 나가보았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아무래도 그 분위기에 취해서 수영복을 벗어던지게 된 것 같다. 어스름한 햇빛을 받은 투명한 바닷물 사이로 알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나를 발견한 그가 숨을 삼키는 게 느껴졌다. 키스를 나누는 그의 입술에서 짠맛이 났다. 우리는 그날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냈다. L( 공연 프로모터, 28세)
인피니티 풀의 추억
발리 우붓에 위치한 리조트는 열대우림과 강이 내려다보이는 끝내주는 전망에 객실마다 인피니티 풀이 있었다. 우리 둘 다 첫날은 수영복을 챙겨 입었지만, 아무도 볼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둘째 날부터는 정글의 삶에 동화된 양 대부분의 시간을 헐벗은 채로 보냈다. 나체로 뛰어든 인피니티 풀에서 항상 수영복에 가려졌던 가슴과 유두, 아래에 물이 닿는 감각은 묘한 흥분을 주고 한없이 자유로워지게 했다. 집 안 욕실에서도 섹스를 시도한 적 없던 우리는 리조트의 인피니티 풀에서 야외 수중 섹스의 스릴을 만끽했다. 게다가 풀장의 수온을 조절할 수 있어 밤에도 따뜻한 물속에서 은은한 조명 아래 언제고 분위기를 잡을 수 있었다. 풀장만큼이나 내가 좋아한 곳은 아웃도어 레인 샤워 시설이었다. 뒤뜰에 설치된 샤워기 아래 서 있으니 마치 알몸으로 야외에서 소나기를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남편이 슬며시 합류하면서 더없이 로맨틱한 샤워가 되었다. 발리의 리조트는 섹스 장소라곤 침대가 전부이던 우리에게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M( 회계사, 32세)
프라하의 향수 어린 밤
둘 다 프리랜서인 우리는 두 달 일정의 배낭여행을 결심했지만 예산이 빠듯해 숙소는 대부분 에어비앤비나 민박집으로 정해야 했다. 처음엔 마냥 즐거웠지만 점점 장기 여행은 커플의 무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농담으로 들리지 않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작은 일에도 다투었다. 극기 훈련으로 변해버린 신혼여행이 전환점을 맞은 건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였다. 한인 민박에 머물렀는데, 숙소에 돌아와 말없이 간식을 먹고 있는데 열어놓은 창을 통해 한국 노래가 들렸다.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였다. 그도 나도 한국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남편은 괜스레 눈물이 나 훌쩍거리는 나를 보더니 가만히 다가와 안아주었다. 먼 타국인 이곳에서 유일하게 내 편인 그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함께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섹스는 한없이 달콤하고 충만했다. 우리는 지금도 신혼여행으로 갔던 프라하를 떠올릴 때 고풍스러운 도시의 전경이나 음식보다 그날 밤의 애틋한 감정을 먼저 떠올린다. 신혼여행 중의 최고의 섹스였다. L(일러스트레이터, 30세)
미칠 듯한 축제의 밤
바르셀로나에서는 매년 9월 성모마리아를 기리는 메르세 축제가 열린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페스티벌 지구로 바뀌는 이때 신혼여행을 가게 된 우리는 이왕이면 그 지역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고 싶어 다운타운에 위치한 집을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다. 하지만 좋지만은 않았다. 비좁은 골목에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방음을 기대할 수 없었고, 커튼을 치지 않고는 섹스는커녕 옷도 마음대로 갈아입기가 어려웠다. 명색이 허니문인데 괜한 객기를 부렸나, 후회가 들던 차에 드디어 페스티벌 주간이 시작되었다. 상그리아는 달콤했고 골목을 가득 채운 사람들 틈에서 우리는 점점 열기에 취해갔다. 페스티벌의 절정은 가면을 쓴 채 회전하는 폭죽을 들고 행진하는 카탈루냐 지방 전통 퍼레이드인 코레폭스(Correfocs)가 시작되는 때였다. 폭죽의 물결 속에서 축제가 겉잡을 수 없이 과열되는 걸 느낀 우리는 일단 숙소로 돌아왔다. 방에서 내려다본 코레폭스 행렬에는 낭만과 혼돈이 공존했다. 창가에 나란히 앉아 축제의 열기를 느끼던 우리는 서로의 취기 어린 눈빛을 마주했다. 알싸한 화약 냄새와 바깥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환호와 폭죽 소음이 뒤섞인 첫 허니문 섹스는 퍽 로맨틱했다. 우리는 신음 소리를 누가 듣지는 않을까, 누가 훔쳐보지는 않을까 신경 쓰지 않았다. P( 제품 디자이너, 3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