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와이파이의 비애

장거리 연애 2년 차에 들어선 그와 나는 마치 유튜버들이 라이브 방송을 하듯 아예 영상통화를 연결해놓고 밥을 먹고 TV도 보며 각자의 일상을 생중계한다. 그러다 어느 날, 둘 다 샤워를 하고 나와 헐벗은 상태에서 영상통화를 시작했다. 휴대폰 앞에서 장난스럽게 섹시한 포즈를 취하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편하게 다리를 벌린 채 침대에 걸터앉아 카메라를 통해 서로 마주 보았다. 솔직히 어색할 줄 알았는데, 막상 닥치니 본능적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게 되는 것 같았다. 그가 시키는 대로 손가락을 놀려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한편, 그에게 내가 그의 페니스를 어떻게 정성껏 애무하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서로 자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둘이 같은 타이밍에 절정에 이르렀다. 사실 자위하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은 없는데, 어찌 보면 가장 사적인 순간을 게다가 카메라 앞에서 공유한다는 것이 굉장히 두려울 수 있는 일임에도 우리는 꽤 자연스럽게 해냈다. 그와 나 사이에 새로운 연대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우리에게 신세계를 보여준 영상통화 섹스는 그러나 또한 인생에서 드물게 경험할 어색한 순간도 안겨주었다. 하루는 분위기가 절정에 치닫는 순간 통화 연결이 끊어지면서 화면이 멈추었다. 막 오르가슴에 다다르는 찰나 흐름이 확 끊기니 마치 화장실에서 중간에 끊고 나온 듯 찜찜한 한편, 멈춘 화면 속 벌거벗고 페니스를 쥔 채 엉거주춤하고 있는 그를 보니 불현듯 우스웠다. 그의 휴대폰 화면에 멈춰 있는 내 꼴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이게 다 무언가 싶은 허탈감과 민망함, 욕구를 미처 다 배설하지 못한 아쉬움이 뒤섞인 복잡 미묘한 심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고 다음엔 앱으로 서로 연동되는 자위 기구를 장만하기로 했다. 나는 딜도, 그는 자위용 컵을 나누어 갖고 앱에 연결하면 상대방 기구의 진동 세기나 무브먼트를 조종할 수 있다. 우리의 영상통화 섹스를 업그레이드해줄 최첨단 섹스 토이다. 물론 그 전에 통화가 끊어지지 않을 강력한 와이파이 공유기를 구해야겠지만 말이다. K_ 자영업자(30세)

섹드립이 도착했습니다

직장인인 남자친구가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난 지 반년이 되었다. 내가 가족과 같이 살고 있어 우리는 전화보다는 문자메시지로 주로 대화한다. 초반엔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주로 잡담을 나누다가 둘 중 한 명이 ‘지금 뭐 입었어?’ ‘혼자 있어?’ 하고 묻는 걸 신호로 더티 토크를 많이 했다. 롱디 연애를 시작한 후 단 하나 좋은 점은, 그의 성적 판타지를 전에 없이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는 거다. 함께 있을 땐 오히려 묻기를 게을리했다. 그런데 만날 수도, 함께 잘 수도 없는 먼 거리에 떨어지니 섹스 할 때 하고 싶은 자세, 장소, 역할극, 써보고 싶은 성인용품 등등 서로의 욕구를 소상히 밝히는 것으로 섹스를 대신하게 되었다. 남자친구는 ‘네 안 깊숙한 곳까지 다다라서 너를 완벽히 느끼고 싶어’ 같은 얌전한 버전부터 ‘네가 너무 좋아서 기절할 때까지 몇 번이고 계속해서 할 거야’ 같은 외설적인 버전까지 두루 섭렵했다. 이제는 입만 열면 섹드립이 솟구치는데,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저급한 농담이 은근히 나와 코드가 잘 맞는다. ‘오늘 날씨 진짜 후끈후끈해’라는 내 문자메시지에 ‘응. 네 거기도 진짜 후끈한데’로 응수하는 그. 그러니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혼자 피식거리다 달아오르곤 한다. 섹드립에 익숙해지니 조금 더 자극적인 것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사진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나만의 암묵적인 룰이 있다. 만에 하나 유출될 상황을 대비해 얼굴은 보이지 않게 클로즈업 샷 위주로, 혹시 주변 물건들로 알아보면 안 되니 최대한 심플한 배경에서. 그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나는 이제 자위를 할 때면 포르노 대신 남자친구가 운동 후에 찍은 복근이나 엉덩이 사진, 잔뜩 화가 난 페니스 사진을 본다. 요새는 일부러 업무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그에게 예고한 다음 저녁에 사진을 보내곤 하는데, 남자친구는 은근히 기대감이 생겨 하루가 빨리 간다며 꽤 좋아한다. 애정을 표현하고 체감 업무 시간도 단축되니 일석이조 아닌가. L_ 연구원(29세)

우리 지금 만나

그 어떤 문자메시지나 전화, 영상통화도 한 번 만나는 것만 못하다. 개인적으로 내겐 야한 사진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이 희망 고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좌절하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있는 미국 서부로 가는 비행기표를 질렀다. 돈을 버는 직장인이라는 사실은 내게 티켓 값을 치를 능력을 주었지만 동시에 마음 대로 떠날 수 없는 현실도 함께 주었다. 하지만 이미 그 생각에, 더 적나라하게는 그와 섹스 할 생각에 눈이 먼 나는 팀장님의 눈총을 뒤로하고 연차와 월차를 주말에 붙여 화요일까지 휴가를 냈다. 금요일, 퇴근 후 그대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그 와중에 10만원 더 싼 항공권을 끊겠다고 직항을 마다하고 경유 노선을 골랐다). 장장 15시간을 날아 미국에 도착했다. 시차 때문에 거긴 여전히 금요일 밤이었다. 출국 직전에야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남자친구는 놀라움과 설렘이 반씩 섞인 표정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48시간 동안 우리가 한 일이라곤 먹고 자고 섹스하고 껴안고 뒹군 것이 전부였다.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가서 나는 남들 다 구경한다는 항구 언저리도 못 가보았다. 월요일 오전, 눈물의 작별 인사를 거친 모닝 섹스로 대신한 뒤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이미 화요일 오후다. 다음 날 초췌한 몰골로 출근하니 다들 병가를 낸 거였느냐고 걱정스레 묻는다. 하지만 꿈을 이룬 듯, 마음만은 충만했다. 아, 격한 섹스는 우리에게 다양한 할퀸 상처를 주었는데, 계절이 바뀌고 흉터가 사라질 때까지 상처를 볼 때마다 함께 보낸 그 주말이 떠올라 둘 다 만족스러워했다. 할부로 긁은 비행기표 값 역시 한동안 꼬박꼬박 나의 3박 5일간의 일탈을 상기시켜주었지만, 개미처럼 일해 번 돈 어디다 쓰겠나. 후회는 없다. P_ 직장인(33세)